
맥락 있는 컬렉션
미술박물관에 가면 정말 놀라운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것을 보면, 많은 이들은 어떻게 미술박물관은 이렇게 좋은 작품을 많이 소장할 수 있었을지 궁금해하지만, 뛰어난 미술박물관의 컬렉션은 단순히 유명한 한두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전시한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최고의 미술박물관을 만드는 조건은 건물이나 전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소장품(Collection)의 질과 양이 결정한다”는 원칙이다. 물론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훌륭한 소장품을 만들어가는 일은 미술박물관의 가장 중요한 임무이자 사명이다. 그리고 좋은 소장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돈과 시간 그리고 인내심과 결단력이 필요하다. 최고의 컬렉션은 최상의 미술박물관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술박물관은 개관 이전부터 개관 이후 존속하는 한 계속해서 좋은 컬렉션의 완성을 향해 끝없는 길을 가야 한다.최상의 컬렉션이 되려면 미술 자체에 대한 더 넓고 깊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특정 시기와 문화를 대표하는 많은 이야기와 정서를 담은 미술 작품을 수집해 미술사를 형성하는 다종다양한 작품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하나의 복잡하고 아름다운 컬렉션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따라서 작품 수집은 미술박물관의 사명(Mission)과 임무(Duty)에 부합하는 독특한 관점과 원칙을 갖고 각각의 작품을 더 큰 서사(Narrative)로 연결하는 주제별 또는 연대기적 판단이나 결정을 위한 개념적 틀(Conceptual Framework)을 바탕으로 수집해야 한다. 특히 컬렉션을 하나로 묶는 중심 주제 또는 개념이 있어야 하며 이때 주제는 역사적, 양식적, 사회적 또는 장르나 매체 등 여러 요인 중 하나 또는 둘을 기반으로 할 수 있다.
컬렉션은 다양한 작품과 작품이 만들어내는 더 넓은 작품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예술적 서사 즉 맥락(Context)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맥락은 작품이 단순하게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고 상호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작품들이 모여서 어떻게 전체적인 이야기를 형성하고, 관람객에게 더 깊은 이해와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를 바탕으로 한다. 즉 각각의 단어가 모여 하나의 문장을 만들어 가는 것과 같다. 따라서 미술박물관에서 미술품을 구입하는 과정은 여러 단계로 구분되며, 미술박물관의 임무와 수집 목표에 맞는 작품을 확보하기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팀이 이를 전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미술박물관의 작품 수집은 관의 미션과 비전에 따라 어떤 맥락에서 어떤 작품을 수집할 것인가에 대한 5년 또는 10년 주기의 중장기 ‘작품수집계획’을 세우고 이에 따라 2~3년마다 갱신되는 단기작품 수집계획을 바탕으로 작품을 수집하도록 박물관학에서는 정하고 있다. 이는 작품수집에 필요한 모든 방향 특히 예산확보와 작품수집을 위한 발굴과 추천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중장기는 물론 단기작품수집계획을 세워서 작품 수집을 하는 미술박물관 박물관은 거의 없다. 이는 마치 집을 지을 때 설계도 없이 집을 짓는 것과 같다.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작품 수집
소장품의 다양성을 위해 외부 전문가들의 제안이나 추천도 중요하다. 하지만, 외부 인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특정 작품을 추천할 수 있고, 미술박물관의 장기적인 수집 전략과 배치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특히 전문가들이 개인적 연고나 관계를 바탕으로 추천하는 경우, 객관적이고 공정한 수집이 어려우며 일관성이 부족할 수 있다. 또한 미술박물관은 장기적 전략 목표 아래 작품을 수집하지만, 외부 추천인들의 제안이 이런 목표와 상치될 경우도 있다. 외부 인사들의 예산을 고려하지 않은 작품추천은 예산을 초과해 재정적 부담을 초래할 수도 있으며 비효율적인 작품 수집은 다른 중요 활동에 대한 투자를 줄일 수 있다. 외부 인사들이 추천하는 작품이 위작 또는 불법일 경우 미술박물관의 명성과 신뢰가 저해될 위험이 있다. 따라서 내부 학예연구원들을 작품수집제안 또는 추천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도입한 외부인사추천제도가 되려 수집 과정에서 투명성 문제를 야기해 미술박물관의 신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은 심각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사실 우리 박물관과 미술박물관의 작품수집제도에서 가장 시급하게 시정되어야 할 것은 '작품수집공고'제다. 관행처럼 통하는 이 제도는 미술박물관의 컬렉션과 수집전략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어 더 신뢰할 수 있는 내부 인력에 대한 불신과 관내 학예연구원들의 책임을 분산 또는 회피하려는 속성과 결합한 나쁜 제도로 이는 전문기관과 인력의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공모 또는 외부 추천제도는 책임을 분산시켜 작품 수집 과정에서 명확한 책임 소재를 가리기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에서 제도 자체에 대한 폐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학예연구원이나 외부 인사들로부터 제안 또는 추천된 작품은 내부의 심의위원회를 통해 반드시 수집여부를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나마 미술관이 작품수집과정에서 자신의 정책을 반영할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내외부 수집 제안 또는 추천, 공모를 통해 취합된 작품 관련 자료는 미술박물관 내부의 수집위원회 검토를 거쳐 최종 대상작을 결정하면 이후 이들 작품의 운명은 이후 전적으로 외부 인사들의 몫이다. 물론 국립현대미술박물관의 경우 수집작품 제안 이후 학예연구관 이상으로 구성된 ‘작품가치평가위원회’를 통해 가치평가를 한 후 외부전문가 3인 이상으로 구성된 ‘작품가격평가위원회’를 거쳐 최종적으로 관장, 작품수집관리담당관 그리고 외부전문가 3인 이상으로 구성된 ‘작품수집심의위원회’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외의 미술박물관은 거의 전적으로 외부인사들이 작품의 제안과 추천 그리고 작품수집대상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평가하고 가격을 평가하는 등의 작품수집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 이는 내부인력에 대한 불신과 광역지방자치단체는 물론 중소 규모의 군립, 시립미술박물관의 인적구성 특히 작품수집을 위한 발굴과 제안, 추천해야 할 학예연구원의 숫자가 국립현대 65인, 서울시립 25인, 부산시립 14인, 광주시립 11인, 울산시립 12인을 제외하고는 모두 10인 미만으로 1관당 평균 4~5명, 2명에 불과해 작품 수집은커녕 전시기획이나 교육 등 미술박물관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정도다. 여기에 작품수집이란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하기에는 학예원 숫자는 물론, 작품수집을 위한 평가와 진위, 법률적 하자 등을 가려낼 수 있는 경험부족, 작품의 컨디션 체크(Condition Check)를 위한 작품수복보존가(Conservator)조차 없는 상황에서 작품수집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은 사실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런 상황이 전적으로 미술박물관이 작품수집을 주도할 수 없는 이유다. 여기에 매우 부족한 작품구입예산 그리고 기증이나 기탁과 민간기금의 부재 등 적극적인 작품수집 제도가 공식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것도 미술박물관이 소장품 없는 전시에 치중하는 쿤스트할레(Kunst Halle)나 아트 갤러리(Art Gallery)같은 기관으로 전락하는 중요한 이유다.

전문 미술관과 작품수집
우리나라의 미술박물관이나 박물관 특히 전문박물관에 이르기까지 작품수집은 등록을 위한 100점 이상의 작품을 수장한 이후에는 하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기관의 존재 이유는 지속적인 소장품 수집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미술박물관이나 박물관들이 지역별로 난립하면서 대부분 종합적인 박물관, 미술박물관을 표방하며 매우 다양한 분야의 모든 것을 수집하고 있다. 미술박물관의 경우 규모와 상관없이 부족한 예산과 인력에도 불구하고 시각 예술(Visual Arts) 전반 즉 회화(유화, 수묵채색화), 소묘, 판화, 조소, 공예, 사진, 건축은 물론 비디오, 영화, 만화, 디자인까지 망라함으로써 오히려 작품수집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스스로 미술박물관의 역량을 평가해 전문미술박물관을 지향하는 것도 방법이다. 판화미술박물관, 건축미술박물관, 디자인미술박물관, 도자미술박물관, 섬유미술박물관, 사진미술박물관 등등 그 장르는 넓고도 많다. 이런 특정 분야 시각예술을 선택해 집중한다면 어느 미술박물관보다 독창적이고 특별한 미술박물관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발 미술박물관들이 선발미술박물관의 뒤를 쫓으면서 경쟁하는 것은 모두에게 손해다. 특히 다양한 미술박물관을 통한 경험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또한 작품수집을 위한 인적자원과 예산확보가 어렵다면 차제에 아예 작품수집이 필요 없는 즉 소장품없이 ‘전시’만 하는 전시관(Kunst Halle) 또는 기획전시관(Special Exhibition Hall)으로 전환하는 것이 차라리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게다가 다양한 작품 수집을 외부에 의존해 수집대상작품의 발굴과 추천 그리고 평가와 최종 작품수집여부까지 결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는 점은 큰 문제다. 따라서 이렇게 다양한 분야의 수집심의를 위한 인력을 구하는 일도 만만치 않고 이를 운영하는 비용도 적지 않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이들은 작품수집에 관한 한 거의 전적인 권한을 행사하지만, 책임은 없다는 점이다.
이런 총체적 난국의 극복을 위해 작품수집정책에 따라 필요한 작품을 발굴하고 이를 외부 미술품 전문 평가기관에 의뢰해 작품 수집에 필요한 미술사적, 예술적 평가와 함께 작품의 상태보고서(Condition Report), 수복보존처리가 필요한 경우 필요경비 산출, 작품의 진위와 판매자의 법적소유권 등 제반 전문적인 조사를 의뢰해 이 보고서를 토대로 내부 학예원과 필요하다면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최종 소장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은 한시적으로 운용하면서 전문인력이 확보되고 경험이 쌓이면 미술박물관이 독자적으로 수집업무를 전담하는 방향으로 가는 과도기적인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때 최종 작품수집위원회 구성비는 내부인력 3, 외부인사 2 정도로 구성해 미술박물관이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실기를 전공한 화가나 조각가가 아닌 미술사, 미술비평, 큐레이터 중에서 선발해야 한다. 왜냐하면 작품수집이 미술사적인 관점과 예술적 평가에 대한 전문적인 책임이 뒤따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작품수집, 소비가 아닌 투자
우리도 세계의 거의 모든 미술박물관이 보편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작품수집시 제안과 추천, 최종적인 작품의 예술적 재화적가치, 상태, 미술박물관의 사명과 임무에 부합하는가를 평가하는 내부 큐레이터와 레지스트라, 컨서베이터, 컬렉션매니저 그리고 필요에 따라 외부인사들이 참여하는 수집심의위원회(Collections Review Committee) 그리고 인수 위원회(Acquisitions Committee) 그리고 실재적으로 작품 수집에 필요한 자금을 부담하는 수집가위원회(Collector’s committee)제도 도입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들은 소장품 수집을 위한 검토 및 승인 그리고 컬렉션 형성, 조직의 다양한 부서 간 협력 유도, 작품수집을 위한 이론, 실제 및 윤리에 대해 논의 그리고 신소장품 실견, 작가 방문 등의 기회를 얻는 대신 재정적인 의무를 진다. 특히 연간 기부금(Annual donations)외에 특별위원회 예를 들면 특정 작품이나 시대의 작품을 수집하는 데 따른 재정적으로 기여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국립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은 최소 2인이 2만 달러를,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의 경우 등급별로 1만7500달러, 3만5000달러, 7만5000달러 등의 연간 기부금을 내야 자격이 유지되는 자선적 헌신이 필요하다.
물론 제도의 도입을 위해서는 우리 미술박물관이나 박물관, 도서관 등이 법인화 또는 비부처공공기관으로 전환이 전제되지만 수집 제안권을 행사하는 것은 권한을 갖기 위해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우리도 도입할 방법을 모색해 볼만하다. 사실 이 시스템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자본주의 국가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식이라고 평가받는다. 부유한 이들은 자신의 사회적 역할과 관대함을 보여주면서 문화예술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미술박물관은 새로운 작품을 획득해 문화적 자산을 확대하고, 사회구성원은 보다 깊고 넓은 문화적 향수 기회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일거삼득의 효과를 지닌다.
또한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 전환도 중요하다. 대개의 국가 예산은 사용하고 나면 사라지지만 미술박물관의 작품 수집에 투입되는 예산은 소비가 아니라 국가의 자산을 늘려나가는 ‘투자’라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테헤란 동시대미술관(TMoCA,Tehran Museum of Contemporary Art)은 개관을 위해 1977년부터 79년까지 약 2년간 약 3000 점의 작품을 구입했다. 이때 지출한 돈이 1억 달러(약 1400억원) 미만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2021년 소장품의 가치는 최대 30억 달러(약 4조 3000억원)에 달할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토리노 동시대미술관(Castello di Rivoli Museo d'Arte Contemporanea)를 지원하는 이탈리아의 '근대 및 동시대 미술의 지원을 위한 CRT 재단(Fondazione per l’Arte Moderna e Contemporanea CRT)'도 2000년부터 지금까지 약 4000만 유로(약 595억 원)의 가치를 지닌 870여 점의 국제적인 동시대 미술품을 수집해 오늘날 1조~1조2000억원에 이르는 가치를 지닌 컬렉션을 마련했다. 따라서 미술박물관에 작품을 기증할 시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것을 세수가 줄어든다는 면에서 볼 것 아니라 새로운 부의 창출 그리고 국가의 자산을 늘려나가는 일이란 점에서 그리고 부의 재분배와 사유재인 문화예술적 자산을 공공재로 사회에 환원한다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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