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윤 (사)남북물류포럼 대표]
러·우 전쟁 종식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는 확실하다. 다음 몇 가지 점을 주목할 수 있다. 첫째, 미국은 자국 안보의 실존적 위협이 없는 상태에서 엄청난 비용만 들어가는 러·우 전쟁에서 발을 빼겠다는 것이다. 차라리 러시아와 경제 협력을 하는 것이 미국을 위한 더 나은 대안이자 중국을 견제하는 데도 더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이제부터는 아예 그동안 우크라이나를 지원한 데 대한 보상까지도 받아낼 심산이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체결하려는 광물협정 규모는 지난 3년간 지원한 금액의 5배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둘째,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빌미로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을 미국이 수용하려 하고 있다. 2014년 시작된 러·우 전쟁은 2022년 전면전으로 확대됐다. 러·우 전쟁 3년(2025년 3월 24일)을 맞아 발표한 G7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의 침공'이 아닌 '우크라이나 분쟁'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에 반대하는 것은 물론 '우크라이나 분쟁'이라는 표현이 담긴 자체 결의안까지 만들었다. 전쟁 종결을 위해 대러시아 친화적인 입장을 미국이 견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전쟁 당사자인 우크라이나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러시아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돈바스 등지의 부존자원을 고려하면 미국의 처사는 러시아와 광물자원을 나눠 갖기 위한 포석이라는 인식도 가능하다.
셋째,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가 당면한 현실적 어려움을 간파하고 이것이 전쟁 종결의 발판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러시아는 현재 극심한 재정 문제에 봉착해 있다. 외환보유액의 절반이 서방에 의해 동결된 상태다. 매년 400억 달러에 달하는 예산상의 적자가 발생하나 해외에서 돈을 빌릴 수도 없는 처지다. 2022년 이후 혹독한 국제 제재에 직면해 있으며, 전쟁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방위산업의 원자재, 노동력, 부품 등도 모두 부족한 실정이다. 병력 또한 부족하다. 러·우 전쟁으로 러시아군 12만명이 전사하고 18만명이 부상한 것으로 알려지며, 2022년 한 해 동안 해외로 떠난 러시아인만 해도 100만여 명에 달한다.
러·우 전쟁은 어떤 형식으로 종결될 것인가? 전쟁에 참여하고 있는 국가의 이해관계와 유럽의 안보 구도에 따라 복잡한 양상을 띨 것이 분명하다. 종결에 이르는 과정 또한 그리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 두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확실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먼저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 가입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러시아의 이와 같은 요구에 부응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그다음으로 우크라이나가 2014년 이전의 영토로 복귀하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침공해 점령해 온 사실에 대한 인정을 의미한다. 그 외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과 관련된 문제, 예를 들어 중립국화나 유럽 국가의 파병 등은 제3국에서 개최되고 있거나 개최될 당사국들의 협상에서 크게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 한 가지 언급할 점은 러·우 전쟁 종결과 관련해 우크라이나의 입지가 아주 좁다는 점이다. 미국의 지원이 없이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의 장기전에서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것이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협상 중재안을 수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만약 이 과정에서 유럽이 반기를 들어 우크라이나를 군사·경제적으로 지원하려고 한다면 미국은 이 문제를 철저히 유럽의 문제로 가져가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우 정상회담(2025년 2월 28일) 이후 유럽 국가들은 실제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확대를 결의(2025년 3월 .6일)한 바 있다. 그러나 유럽이 과연 우크라이나를 도와 러시아와 항구적인 전쟁을 치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유럽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고 해도 미국의 실질적 참여 없이는 제 역할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제한과 함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제안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의 핵심 요구 사항을 충족한다는 점에서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우크라이나로서는 가장 피해야 할 방안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의 대미 협력에 따라 미국이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보증하는 방안이 모색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국은 러·우 전쟁 종결에 어떻게 대응하며 국익을 펼쳐가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한·러 관계의 복원이 가장 중요하다. 한·러 관계는 한국이 러시아의 비우호적 리스트에 포함된 이래 계속 악화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달라져야 할 것이다. 러시아에 대한 관계 개선의 기회로 가져가야 한다.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북방 진출의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먼저 상호 비우호국으로 지정된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협의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한·러 직항 노선을 재개하고 비자 면제 협정을 재도입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 기업의 대러시아 진출 및 활동을 독려하고, 금융 교류를 재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러시아를 통한 남북 관계의 개선을 도모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대미 외교를 강화해 현재 북한이 설정하고 있는 적대적 두 국가 관계를 대화와 협력의 관계로 바꿀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이 과정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전략자산 전개에 따른 비용을 청구하거나 주한미군 감축 문제 등을 거론할 경우 이를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보다는 미국이 원하는 한국 조선업과의 협력을 협상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북방 진출을 위한 세부 계획을 마련하고 필요한 외교 통로를 가동할 채비를 하루빨리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필진 주요 이력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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