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러·우 전쟁의 '30일 휴진'을 추진하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계가 종전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오랜 전쟁으로 그동안 억눌렸던 자동차 수요가 폭발할 조짐을 보이자 현대자동차를 비롯해 KGM, 일본 도요타, 프랑스 르노 등 관련 업체들이 러시아 시장 선제 진입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 계열사들은 최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및 세트로레츠크에서 근무할 인력 재정비에 나섰다. 기아는 기술 컨설턴트 및 딜러 마케팅 분야를, 현대모비스도 품질관리, 공장 운영자, 행정, 회계 등 다양한 영역의 채용을 시작했다. 현대오토에버와 현대위아 등도 러시아 엔지니어 채용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2007년 러시아 법인을 설립하고 처음 진출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을 준공해 솔라리스(현대차), 크레타(현대차), 리오(기아) 등을 성공시키면서 현지에서 탄탄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연간 생산능력은 약 24만대로, 2021년에는 러시아 브랜드인 '라다'를 제치고 시장 점유율 27.5%를 돌파하며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산되자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이후 전쟁이 1년넘게 이어지면서 2023년 12월 러시아 업체 아트파이낸스에 공장을 포함한 러시아 지분 100%를 2년 안에 되살 수 있는 바이백 조건을 달아 1만루블(약 14만원)에 매각했다. 당시 장부에 기록된 공장의 가치는 2783억원 정도다. 바이백 조항 만기가 9개월 앞으로 다가온 만큼 사업 재개가 임박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다만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지 채용은 남아있는 상표권 관리와 법인의 인력 결원에 따른 것일 뿐 아직 러시아 사업 재개를 논의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바이백 조항 옵션 만기일까지도 아직 시간이 충분하기 때문에 종전 협상 분위기를 좀 더 지켜본 뒤 사업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현대차 뿐 아니라 KG모빌리티(이하 KGM)도 러시아 시장 재진출을 위한 사전 작업을 마쳤다. 최근 러시아 판매 인증(OTTC)을 획득하고, 주력 모델인 코란도·토레스·티볼리·렉스턴 등 4개 모델도 이달 내 출시한다. KGM의 현지 유통업체인 REX모터스는 연내 70개 딜러 센터를 확보해, 2만대를 판매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KGM은 쌍용자동차 당시 2005년 러시아에 진출해 2015년까지 17만5000대가량의 차량을 판매한 바 있다.
도요타자동차도 최근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러시아 딜러사 관계자들과 비밀 회동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도요타자동차는 2005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공장을 설립해 6세대 캠리, 라브4 등을 양산하면서 자리잡았다. 그러다 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산되면서 2022년 9월 공장 폐쇄를 결정했다. 러시아 한 언론은 "도요타 경영진과 러시아 딜러사들이 지난달 두바이에서 러시아 재진출을 논의했다"면서 "이달 안에 이들이 2차 미팅을 갖고 계획을 구체화할 것"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밖에 프랑스 르노 역시 러시아 재진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지난해 러시아 신차 판매량은 전년대비 49% 증가한 157만1000대로, 올해도 비슷한 수준이 예상된다.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차지하는 규모는 2% 정도로 크진 않지만 미국의 관세장벽에 대항할 유럽의 새로운 전략적 요충지로 부상하고 있다. 러우 전쟁 직전인 2021년에는 기아와 현대차가 각각 시장 점유율 1,2위를 기록했지만 지금은 중국 브랜드가 득세하면서 현재 상위권 10개 브랜드 가운데 톱 9개가 중국 기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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