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도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논설고문]
미국이 중국 멕시코 캐나다 EU 등 전 세계를 상대로 무차별 관세전쟁을 벌이고 있다. 상대국들은 보복조치와 같은 적극적인 대응을 시사하며 해결에 골몰하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글로벌 무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들어왔다. 과거 통상협상이 주로 업종별 시장개방과 관련된 어젠다를 다루었다면, 이제 미국은 정치·외교·방위·군사 이슈를 관세 등 국내경제 이슈와 연결하여 전 세계에 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목표는 자국 내 시장보호가 아니라 미국 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기업투자를 전제하고 있다. 국가간 동맹이나 무역규범도 당장 중요치 않다. 미국의 이익만이 가장 중요한 협상기준이다.
필자는 1990년대 이후 한국과 미국의 수많은 통상협상에 참여하였다. 1990년대 철강, 전자제품, 반도체, 자동차, 지식재산권, 2000년대 FTA협상 등 한국의 산업이 글로벌시장에서 성장함에 따라 미국 국내 시장 보호와 한국 시장 개방을 위한 양국간 협상은 계속되어 왔다. 미국 국내 시장 보호협상은 미국 기업의 반덤핑·상계관세 등 제소를 시작으로 미국 정부와 한국 기업 간의 협의를 기본으로 하되, 한국 정부는 조사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불공정을 당하지 않도록 미국 정부에 요구한다. 한국 시장개방 협상은 반도체, 자동차 등 품목별로 정부간 협상을 기본으로 해왔다.
과거 한·미 간의 통상 협상은 오늘날의 한국 산업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어, 1990년대의 반도체와 자동차 분야에서의 협상은 한국이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해당 산업 성장의 전환점이 되었다. 반도체 협상은 미국이 한국의 반도체 산업의 미국 시장진입을 견제하기 위해 고율의 덤핑 관세를 부과하려는 시도에 맞서, 수출물량 자율제한을 약속하는 '공급자협정(SA)'을 체결함으로써 미국시장 진출을 계속 확대해 나갈 수 있었다. 자동차 협상 역시 미국의 한국시장 개방요구에 대응하면서도 기술 및 관세이슈를 지킴으로써, 한국 자동차 산업이 현재 수준의 고품질과 경쟁력을 높이는 기회로 삼았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협상은 일단 관세부과라는 카드를 던지면서 시작한다. 이는 큰 시장을 갖고 있는 강대국의 이점을 활용한 선제적 공격이다. 물론, 관세부과 과정이 길어지면 미국 내 수요자의 반발, 원가 상승 등의 부정적 효과가 수반될 수밖에 없다. 관세부과 대상이 되는 업종에 해당하는 민간기업의 투자 약속이 당장 단기간에 이루어지기도 쉽지 않다. 그전에 정부가 어떤 형태로든 협상 대안을 만들어 제시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우리의 협상 카드를 미리 준비해서 적절하게 통상협상에 활용해야 한다. 협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협상 결과는 어느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결정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 원하는 반대급부를 면밀히 분석하고, 그에 맞는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범부처 종합적인 통상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 모든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협상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전방위적이고 전략적인 대응 전략이 필요하다. 협상 어젠다로서 조선 분야 협력, 쇄빙선 협력, 알래스카 가스관사업 참여, LNG 도입과 같이 양국 간 상호 이익이 되면서 다양한 카드를 패키지로 연계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국방 협력과도 연계시켜야 한다. 여타 미국이 원하는 카드 없이 미국으로부터 단순히 관세를 낮추거나 면제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보복조치도 우리와 같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나라가 꺼내 들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둘째, 정부와 기업, 경제단체가 긴밀하게 조율하여 '원팀 코리아'로 대응해야 한다. 미국의 요구와 전략에 대해 면밀하게 분석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대응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기업 등 각 주체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구분하고 각자의 대응책을 전략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모든 주체들 간에 원활한 소통을 통해 대미 아웃리치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현지 정부 및 수요 업계와의 네트워킹을 강화하여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 협상 과정에서는 자국 내 국내 정치의 변수가 협상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특히 현지 수요 업계 등 이해관계자의 의견은 정부의 협상 전략에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다행히 트럼프 내각의 출범과 함께, 우리나라도 정부의 통상 당국자는 물론, 민간의 통상 전문가들이 방미하여 현지와의 네트워크를 잘 활용하고 있다.
넷째, 국내 산업정책과 통상무역정책의 연계를 통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이를 위해 R&D투자 확대, 기술혁신 지원, 인재양성 등 산업기반을 강화하는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뒷받침될 때, 협상에서 얻은 이익을 미래의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연결할 수 있다.
다섯째, 장기적으로 한국의 경제와 산업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에 대한 비전과 전략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공급망 변화에 대한 대응, 신흥시장 개척전략, 지속 가능한 산업성장모델 등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이번 협상은 우리에게 도전이자 기회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적이고 종합적인 대응을 통해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안덕근 장관,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국내 최고의 통상전문가이다. 우리 정부는 한·미 간 상호 윈윈할 수 있는 협상을 끌어낼 능력과 카드가 있다. 정부와 기업, 모든 이해관계자가 협력하여 상호 이익이 되는 협상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학도 필자 주요 이력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학 정치경제학박사 △현 한국협업진흥협회 회장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실장 △전 중소벤처기업부 차관 △전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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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관님께서 세계 유수의 나라들과 FTA 협상체결 등 수많은 현장경험에서 우러나온 값진 말씀입니다. 협상체결 하나하나가 사실 피말리는 총성없는 전쟁터 일텐데 세계 각지에서 많은 업적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나라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어 도약의 발판으로 만드는 DNA 가 있는만큼 트럼프2기에서도 잘 극복해 나가리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김차관님의 더 큰 역할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