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우 전 국회의원]
2024년 1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하고, 3월에는 트럼프가 '비트코인 전략적 비축(Strategic Bitcoin Reserve)'을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다만, 해당 행정명령에는 정부가 새로운 자금을 투입해 비트코인을 추가 구매하는 내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트럼프는 2024년 대선 과정에서 암호화폐 산업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며, 미국을 '암호화폐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한 공약의 일환이다. 우리 금융당국도 가상자산에 대한 소극적 입장에서 법인 계좌 개설을 검토하는 등 제도권 편입에 대한 입장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특히 조기 대선 가능성에 여야 모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 제도권 편입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6월 30일 국회에서 가상자산 보유자의 자산 보호와 불공정 거래 방지를 목표로 한 가상자산법(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어 제도권 편입의 법적 토대가 마련되었다. 가상자산거래소는 고객 자산과 고유 자산을 분리 보관하고, 예치금에 대해 사용료를 지급할 의무를 지닌다. 이는 증권회사가 고객 자산과 고유 자산을 분리하여 지급 불능으로 인한 사용자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또한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의심스러운 거래는 당국에 보고하고 불공정 거래로 이익을 얻은 경우 최소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불법 이익의 3~5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정무위 심의 과정에서 규제와 산업 진흥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일부 의원들은 산업 진흥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 필자는 규제 체계의 우선적 확립을 강조하였다. 법 제정 당시 1단계로 사용자 자산 보호와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법안을 우선 통과시키고 ICO 허용, 진입 규제, 스테이블 코인 등 산업 진흥 방안은 규제 체계 정비 이후 논의하기로 정리되었다.
이 결과 가상자산의 글로벌 동향에 맞추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하고, 금융당국은 그 근거가 되는 입법을 기다리는 입장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이런 금융당국의 자세가 오히려 가상자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고 현행 법체계에서도 충분히 글로벌 동향에 발맞출 수 있다고 본다.
문제는 시장을 보는 금융당국의 태도다.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투명하고 예측 가능한 규제체계다. 당국이 금융을 산업으로 보고 진흥·육성해야 한다는 태도는 이 규제의 명확성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온다. 2015년 당국이 사모펀드 육성을 위해 규제를 완화한 결과는 라임, 옵티머스를 비롯한 엄청난 금융소비자 피해를 초래하였다. P2P 활성화를 위해 금융위원장이 직접 가입한 상품이 1년 후에 부실상품이 되기도 하였다. 당국의 임무는 시장 질서를 위한 규제 체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며, 인위적인 진흥이나 육성의 생각은 버려야 한다. 정책 목표가 어느 분야의 육성이 되면 그 부문 성장을 위해 규제를 느슨하게 적용하고 인위적으로 시장에 간섭하는 유인이 생긴다. 규제는 심판이 적용하는 규칙인데 심판이 선수의 행동에 간섭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공모펀드는 다수의 금융소비자에게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품의 성격에 대한 공시, 불완전 판매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설명의무 등 높은 규제가 따른다. 반면 사모펀드는 50인 미만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래하는 것으로 공모펀드와 달리 규제가 거의 없다. 왜냐하면 개인들의 자유로운 계약이기 때문에 이런 거래에 당국이 개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문제가 된 사모펀드는 사실상 공모펀드였음에도 불구하고 은행 창구에서 판매되었는데, 이는 공모펀드를 49인 이하의 사모펀드 시리즈로 쪼개 공모 규제를 회피하는 것을 당국이 묵인했기 때문이다. 육성하고 달성 목표가 있으므로 이런 우회로를 눈감아 주어 엄청난 금융소비자 피해가 생겼다.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규제의 본질적 목표가 육성이라는 상충되는 목표에 가려진 것이다.
당국이 규칙을 명확하고 예측 가능하게 만들면 시장 참여자는 그 규제 안에서 수익을 올리기 위해 새로운 방식을 찾고 이 과정에서 혁신이 일어난다. 당국이 혁신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개발연대에나 있는 일이다.
가상자산에 대해 제도권의 틀에서 규제하는 방식에 대해 글로벌한 논의가 진행 중인데 그 핵심은 해당 가상자산이 '증권성'을 갖는지 여부다. 가상자산이 증권성을 가지면 유가증권으로 보고 규제하는 것이고, 아니면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다. 증권성 판별 기준은 그 계약 당사자 간 권리·의무 관계다. 기업이 발행한 유가증권 중 채권은 발행자인 회사가 채권자에게 원리금을 줄 의무가 있다는 것, 주식은 회사 자산 중 모든 채무를 다 상환한 후 남은 자산에 대한 청구권, 즉 잔여재산청구권이 있다. 즉 권리·의무 관계를 보여주는 증서다. 반면 가상자산은 발행자인 재단(foundation)이 보유자에 대한 권리·의무가 명확하지 않다. 이는 출자와 출연의 차이와 같다. 예를 들어 A가 100억원을 B재단에 출연하더라도 A는 B재단의 자산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떤 맛집을 다녀 왔다는 인증카드를 예로 들어 보자. 여러 사람들이 그 집을 다녀 온 인증샷을 찍는 것이 유행이 되어 인증샷을 거래하여 가격이 형성된다고 할지라도 인증샷은 유가증권이 아니다. 인증샷을 판매한 사람과 산 사람의 권리·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만일 이 인증샷을 그 맛집에서 찍어주고 그것을 가져온 사람에게 맛집에서 추가적인 메뉴를 제공하기로 하였다면 유가증권이 된다.

비트코인 현물 ETF의 SEC 승인은 Howey Test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비트코인의 증권성 여부보다는 ETF 발행 주체와 투자자 간의 권리·의무 관계가 중요하다. ETF 발행 주체는 자산운용사로 그 권리·의무 관계는 발행자인 자산운용사와 투자자 사이에 발생한다. 기초자산 편입 여부는 자산운용사가 결정하고 그 책임도 자산운용사가 지는 것이다. 비트코인 선물ETF가 먼저 허용된 것은 그 선물이 시카고 상품거래소(CME·Chicago Mechantile Exchange)에서 거래되는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ETF는 기초자산인 비트코인의 간접적인 투자 수단으로, ETF 발행인(자산운용사)과 ETF 보유자(투자자) 간 권리·의무 관계는 전통적인 ETF와 동일한 것이다.
권리·의무 관계가 성립하는지 여부는 가상자산을 발행한 재단이 발행하는 백서(white paper)를 분석하면 된다. 이를 위해서는 가상자산거래소는 그들이 거래하는 가상자산의 백서를 공시하고 그것을 분석하여 증권성이 있는지 여부를 밝히면 된다. 당국은 2023년 제정된 가상자산법에 근거하여 가상자산거래소에 공시 의무를 명확히 해야 한다. 비트코인ETF와 같은 경우는 자산운용사와 투자자 간의 권리·의무 관계로, 당국의 판단이 필요하지 않다. ETF는 자산운용사와 투자자 사이의 권리·의무 관계이다. 이런 의미에서 당국이 2단계 입법을 기다린다는 자세를 갖는 것은 직무유기가 될 수 있다. 자본시장법 제4조에 증권의 정의 규정에 투자계약증권이 포함된다. 필요한 것은 이 투자계약증권을 판별하는 기준을 시행령을 통해 권리·의무 관계의 명확성 등을 제시하는 것이다.
가상자산은 국가의 화폐 발행 독점에 반대하고, 모든 참여자가 공유하는 정신에서 시작되어 제도권 밖에서 출발한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금세탁방지(AML·Anti Money Laudering)다. 범죄, 테러자금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거래 상대방을 확인하고 불법자금의 유통경로로 활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최근 업비트가 고객확인의무(KYC)를 위반하고 해외 미신고 가상자산 거래자와 거래한 사실이 적발되어 일부 영업정지 조치를 통보하였다. 당국은 가상자산거래소의 투명성과 책임을 명확히 하여 시장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
한편 당국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법인계좌 허용을 검토 중이다. 동일한 가상자산에 대해서도 거래소마다 가격이 다르게 책정되어 일물일가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법인 계좌를 허용할 경우 그 법인이 보유한 가상자산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즉 매입원가로 할 것인지, 아니면 시가로 할 것인지 등 기준 정립이 중요하다. 당국은 이 기준을 제시하면 된다.
가상자산의 제도권 편입이 가속화되는 과정에서 우리 금융당국은 이를 진흥해야 한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명확한 규제 체계가 마련되면 시장 참여자는 그 안에서 혁신적인 방법을 찾아 나갈 것이다. 시장은 항상 변화하고 참여자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 나가는 존재이다. 당국이 이 방향을 알고 법규를 통해 제시하겠다는 자세를 버리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가상자산 2단계 입법을 서두를 필요는 없다. 정부가 할 일, 즉 명확하고 예측 가능한 규제를 마련하는 것과 시장 참여자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우선이다. 제도가 명확하면 시장에서 혁신이 일어나는 것이다. 일일이 간여하는 것이 관치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용우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 박사 ▷제21대 국회의원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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