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 전 세계은행 총재는 14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제7회 글로벌지속가능발전포럼(GEEF 2025)에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를 보니 마크 카니 캐나다 신임 총리가 떠올랐다며 카니 총리의 영란은행(BOE) 총재 시절 연설문을 소개했다.
카니 총리는 런던 로이드에서 '지평의 비극을 깨다'라는 주제로 기후 변화와 금융 안정을 논했는데 통화정책 수장이 이례적으로 기후변화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깊 파고들었단 점에 감명을 받은 듯했다. 카니 총리는 정치 6개월짜리 신인이지만 경제전문가로서 '트럼프 관세 리스크' 최적의 대항마로 꼽히며 압도적인 지지로 캐나다 국가 수반이 된 인물로 14일(현지시간) 취임했다.
김 전 총재의 말처럼 카니 총리의 중앙은행 총재 시절 모습을 살펴보면 이 총재와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있다.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박사 학위를 받은 카니는 정통 경제학자 출신의 세계적 경제금융 전문가다. 그는 캐나다 중앙은행과 영란은행 총재를 모두 역임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당시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왜 중앙은행장이 전문 분야가 아닌 기후변화 문제를 들먹이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이젤 로슨 전 영국 재무장관은 "영란은행이 본연의 임무인 금융 분야의 현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기후변화와 같은 시류에 편승한 분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외국인 돌봄 노동자 도입, 입시제도 개편 등 수많은 구조개혁 이슈를 내던지며 '미스터 오지랖' 별명이 붙은 이 총재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 총재는 이날도 "통화정책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자주 의견을 밝히다 보니 때때로 '한국은행 총재가 오지랖이 넓다'는 농담 섞인 말을 듣기도 한다"며 저출산·고령화와 기후변화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 합계출산율인 0.75명이 지속된다면 한국 인구는 현재 5100만 명에서 50년 후 3000만 명 수준으로 급감할 것"이라며 "이 경우 2050년대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저출산 문제를 방치하면 국가 재정도 악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그는 "갈등을 줄이기 위해 인기 영합적인 복지 정책이나 현금 지원과 같은 재정 정책을 추진하려는 유혹이 강해질 수 있다"며 현 수준의 합계출산율이 이어질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2023년 46.9%에서 50년 뒤 182%까지 치솟을 것으로 봤다.

나아가 이 총재는 민감한 정치 이슈도 꺼냈다.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리더십 육성과 관련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건 관료보다는 정치의 역할"이라며 "정치가 갈등을 증폭시키는 쪽으로 가면 나라가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힘센 독재자라도 이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기에 이해관계에 있는 많은 갈등을 정치적으로 융합하고 풀어줄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국민들은 그런 인재를 뽑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거대 양당이 조기 대선을 물밑에서 준비하는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이날 카니를 소개한 김 전 총재는 "한은 총재가 이런(구조개혁 이슈) 이야기를 다룰 필요 없다는 비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만약 이창용 총재가 그저 관료로서 맡은 임무에만 충실했다면 우린 너무 늦은 시점에 (기후위기와 같은) 끔찍한 재앙이 발생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며 "우리 모두 이 총재의 말을 새겨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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