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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칼럼] 혹 떼려다 혹 붙인 '핵무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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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2025-03-20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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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무장론'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가 필요하다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왕휘 아주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국 에너지부가 우리나라를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 국가 목록(SCL)’에 포함시켰다. 민감국가 목록에 포함됨으로써 에너지부가 담당하는 원자력 발전, 핵 비확산, 반도체, 인공지능(AI), 양자, 바이오테크 등에서 한·미 협력이 제한된다. 미국 연구기관이 한국 연구기관과 공동연구를 축소하거나 지연할 수 있으며 연구에 필요한 기계 장비의 수출도 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교부는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언론보도 이후 사실관계를 부랴부랴 확인하느라 허둥대고 있다. 이 목록에 이미 등재된 25개국 중 이스라엘을 제외한 대부분이 미국의 적대국이거나 테러지원국이라는 점에서 역대 최고의 한·미관계라는 윤석열 정부의 자화자찬이 무색해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왜 미국이 동맹국인 우리나라에 이렇게 조처했는가를 공식적으로 통보하지 않은 것은 물론 해명하지도 않았다는 데 있다.
미국 언론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유는 한국의 핵무장론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핵무장론이 여당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2023년 1월 윤석열 대통령은 “마음만 먹으면 1년 내에 핵무장을 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을 갖고 있다”고 발언하였다. 국민의힘의 중진인 오세훈 서울시장, 나경원 의원, 윤상현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은 미국과 거래를 통해 핵잠재력(우라늄 농축 및 핵연료 재처리)을 일본 수준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핵무장론의 근거는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하나는 북한 핵 능력의 고도화이다. 핵탄두 수가 2차공격을 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증가했으며 운반수단도 미국 본토를 타격할 정도로 진화하였다. 킬체인-한국형미사일방어-대량응징보복으로 구성된 한국형 3축 체계로는 이러한 위협을 막을 수가 없다.
다른 하나는 동맹 방기의 위험이다. 2023년 4월 한·미 워싱턴 선언을 통해 설립된 ‘한미 핵협의그룹’(NCG)은 작년 9월 워싱턴 DC에서 제1차 모의연습을 실시하였다. 그러나 지난 12월 비상계엄 사태로 4차 회의가 1월로 연기되면서 확장 억제에 대한 미국의 태도 변화가 감지되었다. 동맹을 중시하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 2기가 확장 억지를 축소하거나 폐기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우리나라도 자구책으로서 핵무기를 개발해야 한다는 여론이 고조되었다.
현재 논의되는 핵무장론은 여러 가지 제약이 있기 때문에 북한처럼 핵탄두를 당장 만들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가장 중요한 난관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지원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및 비확산조약(NPT)의 탈퇴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탈퇴를 일방적으로 선언하게 되면, 북한처럼 다양한 국제 제재를 피할 수 없다.
이런 한계 때문에 핵무장론자 대부분은 유사시를 대비해서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잠재적 역량을 확보하는 단계적 접근을 선호한다. 핵 잠재력의 핵심은 핵무기에 필요한 원료를 추출할 수 있어 핵 원료 재처리이다. 2015년 체결된 한미원자력협정은 우리나라가 사용이 끝난 핵연료를 재처리하는 가능성을 사실상 차단하였다. 따라서 핵 잠재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 협정의 개정을 통해 재처리 권한을 인정받아야 한다.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으로 핵무장은 고사하고 핵 잠재력도 언급하기 힘들어졌다. 미국의 관계와 학계에서 우리나라의 핵 개발에 대한 지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은 전혀 변화가 없다. 미국은 동맹국인 우리나라가 핵 개발로 1970년대 이후 유지되어온 NPT 체제가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 에너지부는 이번 조치는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핵무장은 물론 잠재력 증강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사전 경고를 의미한다. 따라서 한미원자력 협정을 통해 일본과 유사한 수준으로 핵 원료 재처리 권한을 증대시키겠다는 기대는 당분간 접어야 한다.
핵무장론이 한·미관계에 미치는 파장은 확장 억제에 미치고 있다. 엘브리지 콜비 국방차관이 우리나라의 독자적 핵무장을 지지한 이유는 미국의 군사적 부담을 절감하는 데 있다. 그는 작년에 “미국이 자국 도시들을 희생하면서까지 한국을 북한 핵 공격으로부터 보호하지 않을 것”이며 “한국이 핵무장에 나서도 미국이 제재해선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즉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는 데 집중해야 하기에, 대북 위협은 우리나라가 스스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핵 개발 용인은 주한미군의 감축― 궁극적으로는 철수 ―에 대한 대가이다.
우리나라의 핵무장이 주변국에 미칠 수 있는 영향도 간과될 수 없다. 아무리 대북 억제용이라고 주장해도 중국과 러시아는 우리나라의 핵 개발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 개발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에 아홉 번이나 찬성하였다. 만약 우리나라가 NPT를 탈퇴하게 되면, 양국은 우리나라에 북한과 비슷한 조치를 요구할 것이다. 더 나아가 북한과 군사동맹을 체결한 러시아는 우리나라를 핵 공격의 잠재적 표적으로 설정할 것이다. 미국의 사드 배치에 극렬하게 반발했던 중국도 가만히 지켜만 보지는 않을 것이다.
핵무장이 미치는 경제적 충격도 고려되어야 한다.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으로 우리나라는 미국 이외의 다른 국가와 원자력 협력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발전의 원료인 우라늄을 러시아, 영국·독일·네덜란드, 프랑스 등으로부터 전량 수입하고 있다. 이 중 어느 한 국가라도 우라늄의 수출을 통제하게 되면, 원자력 산업은 큰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또한 원자력 발전소 수출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UAE에 APR1400 4기를 건설했던 한국수력원자력은 러시아 ASE와 이집트 엘다바 원전 2차측 건설사업에 대한 계약을 체결했으며 체코에 우선협상자로 선정되었다. 우리나라에 대한 제재 가능성이 증가하면, 새로운 계약의 체결은 물론 이미 체결한 계약의 파기를 걱정해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을 핵무장으로 막으려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산업이 위기에 처하는 역설적 상황을 초래하였다. 미국을 안심시키고 한·미관계의 동요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와 정치권이 공식적으로 핵무장론과 과감하게 단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원전 수출은 물론 우라늄의 수입까지 어려워질 수 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핵무장론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가 필요하다.



이왕휘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외교학과 ▷런던정경대(LSE) 박사 ▷아주통일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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