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북 남원에서 ‘춘향이’만 떠올렸다면, 아직 이곳의 진짜 매력을 만나지 못한 것. 남원은 단순한 ‘춘향전의 무대’가 아니다. 오랜 역사와 멋을 간직한 광한루, 고즈넉한 멋이 흐르는 한옥 몽심재, 시간 여행을 떠난 듯한 서도역까지, 걸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다.
남원에서 ‘남원추어탕’만 맛봤다면? 역시 남원의 미식 세계를 다 알지 못한 것! 추어탕은 기본이고, 향긋한 더덕과 고소한 장어가 어우러진 ‘더덕장어구이’, 깊은 풍미를 자랑하는 지리산 흑돼지 샤퀴테리까지, 이곳은 맛까지 특별한 도시다.
올봄엔 눈이 즐겁고, 입이 행복한 남원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남원'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 조선 전기 조성된 정원 ‘광한루’다. 명승 제33호인 광한루는 조선시대 별서(別墅) 정원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달빛이 비치는 호수와 고풍스러운 정자가 어우러진 곳이다.
한국 4대 누각 중 하나이기도 한 광한루는 그 우아한 자태가 남원의 낭만을 상징한다. 남원역 근처의 시내에 춘향과 이도령이 만났다는 광한루가 있고, 그 광한루가 있는 정원을 통칭하여 광한루원이라고 한다.

연못 위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 정자에 오르면, 사방으로 펼쳐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원 안에는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도 재현되어 있어, 전설 속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오작교를 걸으며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도 있다. 광한루 주변에는 한복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 전통 한복을 입고 정원을 거닐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하는 것도 추천한다.

◆‘겸손한 미술관’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간결하면서도 섬세하고,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선이 느껴지는 건축물. 언덕 위에 빼꼼 바라보고 있는 김병종미술관은 세계적인 화가이자 문인인 김병종 화백이 기증한 작품을 바탕으로 2018년 개관한 미술관이다.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미술을 통해 남원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미술관은 자연 속에 자리 잡아, 작품뿐만 아니라 주변 풍경도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진다. 완주 ‘아원고택’으로 유명한 전해갑 건축가가 디렉팅한 건축물로, 미술관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다. 미술관 건축 당시 김병종 작가는 “미술관이 자연의 아름다움에 잘 녹아들면서, 납작 엎드린 듯한 모양의 ‘겸손한 미술관’이 되길 바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전시 공간은 개방감이 뛰어나며, 곳곳에 배치된 작품들이 사색의 시간을 선물한다. 특히 김병종 화백의 대표작인 ‘화첩기행’ 시리즈와 ‘생명의 노래’ 연작을 직접 감상할 수 있어 예술을 사랑하는 여행자들에게 지나칠 수 없는 명소다. 게다가 무료 입장이 가능해 방문을 망설일 이유가 없다.
미술관 주변에는 남원의 자연이 펼쳐져 있어 전시 관람 후 여유롭게 산책하기에도 좋다. 본관 1층에 있는 ‘미안커피’는 ‘너무 맛있어서 미안’이라는 뜻과 ‘미술관 안에 있는 카페’라는 뜻이 담겨 있다. 이곳에서도 김병종 화백의 작품과 다양한 저서들을 만날 수 있다.

◆기차가 서지 않는 역에서, 봄을 기다린다
남원의 작은 마을을 지나 도착한 서도역. 한때 기차가 오가던 이곳은 이제 더 이상 열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이 되었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더욱 특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구 서도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폐역으로 2002년 전라선 기차역이 옮겨 가면서 영상촬영장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1930년대 옛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는 철도 관련 근대문화유산으로, 고즈넉한 분위기의 서도역은 각종 드라마와 영화 촬영 장소가 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지역의 명소가 되고 있다.

최명희 소설 ‘혼불’의 배경이자 2018년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촬영 장소로 유명하다. 역사(驛舍)는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고, 철길 위로는 잡초가 자라나 세월의 흔적을 보여준다. 플랫폼에 서서 기차가 다니던 시절을 떠올리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여행자들은 철길을 따라 걸으며 한적한 풍경을 사진으로 담고, 역 앞에 놓인 벤치에 앉아 바람과 함께 흘러가는 순간을 즐긴다.
서도역의 매력은 단순히 옛날 간이역의 분위기만이 아니다. 역 주변을 천천히 걸으면 남원의 자연이 선사하는 고요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아직 봄이 오기 전이라 높게 솟은 나무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뿐이지만,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에 서도역을 찾으면 푸릇한 새싹과 흩날리는 꽃잎을 만날 수 있다.

◆춘향이도 울고 갈 미식여행
여행의 목적 중에서도 식도락은 빠질 수 없는 ‘여행의 묘미’다. 백두대간 호남 정맥이 둘러있는 남원은 요천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청정 지대로, 흑돼지, 미꾸라지, 갖은 나물까지 먹거리가 가득하기로 유명하다.
산세 좋고 물 좋은 남원 청정 자원을 활용한 음식을 맛보지 않고 가면 섭섭하다. 교통이 좋은 데다 과거 행정 중심지였던 남원은 한양에서 내려온 권력자가 있으니 자연스레 식문화가 발전했다. 덕분에 남원은 ‘미식의 고장’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남원에 왔다면 꼭 맛봐야 하는 ‘남원추어탕’은 너도나도 ‘원조집’을 자처한다. 가장 오래된 집이 ‘진짜 원조집’이겠지만, 오늘은 현지인이 즐겨 찾는 남원추어탕집으로 향해본다.
토종 미꾸리를 갈아 지리산에서 말린 시래기를 넣고 푹 끓여낸 남원추어탕은 늦겨울에서 초봄의 여독을 날려보내기 제격이다. 보기에는 서울의 맛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남원추어탕 한 그릇이면 겨울을 지나느라 지쳤던 몸에 활력을 넣어준다.


지리산 자락 운봉면 동편제 마을에 가면 남원의 지리산 흑돼지로 만든 ‘샤퀴테리’에 와인 한잔을 곁들일 수 있다. 2012년 문을 연 ‘더 찹 샵’은 영국 품종 버크셔를 개량해 키운 ‘버크셔K’를 염장해 만든 프리미엄 샤퀴테리를 만날 수 있다.
해발 500m의 농장에서 자란 지리산 흑돼지 버크셔K는 불포화지방산인 올레인산이 많아 촉촉한 식감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하몽, 프로슈토, 살라미, 잠봉 등 3년 이상 숙성한 하몽과 다양한 염장육은 별미 중 별미다.


간 해독 성분이 있어 해장에 좋은 ‘다슬기탕’은 아침 식사로 제격이다. 소금 간에 부추만 넣고 끓이거나 달걀물을 입혀 된장국을 끓이는 등 다양한 지역별 요리법이 있지만, 통통한 국내산 다슬기를 맑게 끓여내는 방식은 남원식이다.
남원시내 금동에 위치한 ‘맑은뜰’에 가면 특별한 다슬기 요리를 만날 수 있다. 무를 넣고 맑게 끓인 다슬기탕과 된장을 풀어 아욱을 넣은 해장국, 다슬기전, 장조림도 만날 수 있고 닭백숙과 오리전골에도 다슬기가 들어간다.

◆ 봄을 준비하는 고택 ‘몽심재’
몽심재는 남원시 수지면 호곡리에 있는 고택이다. 이곳은 조선 후기 전북 지방 상류 가정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를 잘 보전하고 있어 당시 전북 상류층 살림집 양식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의 아름다운 민가 정원인 몽심재 고택은 여러 채의 건물이 산자락 급한 경사면을 따라 앞뒤로 자리하고 있어 건물마다 높이가 제각각이다.
박인기의 7대 조인 죽산 박씨 박동식(1753~1830)이 세웠다고 알려진 몽심재는 인심이 후한 집으로 소문이 무성했다. 그래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과객들이 반드시 들렀다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사랑채는 매우 호화롭게 지어져 방이 일곱 개에 모두 팔각기둥을 사용했다. 특이한 점은 아랫사람들이 거주하는 문간채 동쪽에 대청 한 칸을 두었는데, 이는 다른 상류 가옥에서는 볼 수 없는 하층민에 대한 특별한 배려라고 볼 수 있다.
건물들이 높이 솟아 있음에도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고풍스러운 멋과 그윽한 정취를 자아낸다. 현재 몽심재 고택은 원불교 소유이며,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낭만 가득한 ‘남원의 밤’
남원의 밤 풍경을 제대로 만끽하고 싶다면 승월교를 추천한다. 승월교는 요천을 가로질러 광한루와 남원 노암동을 잇는 도보 교량이다.
옛날 남원 사람들은 요천으로 나와 승월대에 달이 떠오르는 걸 보며 소원을 빌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승월교는 ‘소원의 다리’라고도 불린다.
춘향이와 이도령이 만나 애틋하게 손을 맞잡았을 법한 ‘승월교’ 위로는 화려한 청사초롱이 빛을 내뿜는다. 빨주노초 무지갯빛으로 수놓인 불빛이 다리 너머 길게 이어지는 길은 남원의 밤을 더욱 낭만적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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