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과학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고 있다. 대학 진학 과정에서 과학 분야 인재들이 불리한 위치에 놓이고, 미래가 불확실한 과학보다는 안정적인 소득과 사회적 지위가 보장된 의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다. 특히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국내 과학 영재들에게 사실상 의대 진학을 권장하는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한국 과학 분야가 직면한 가장 큰 숙제는 ‘인력’이다. 과학에 관심을 가졌던 학생들도 대학 입시를 앞두고 결국 의대를 선택하게 만드는 구조적 문제와 더불어, 국제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수상해도 대입에서 별다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교육 제도가 국가 인재 육성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주경제는 2024년 국제 생물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국가대표 차무겸 학생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기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입학을 앞둔 2024년 국제 생물올림피아드 국가대표 차무겸이다. 어려서부터 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과학 경진대회 등에 여러 번 출전했었고, 고등학교 1학년부터는 국제 생물 올림피아드를 준비했다.
다행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고, 해외 대학 등 여러 선택지에서 서울대에서도 화학생물공학 분야를 공부하고 싶어서 국내 대학 진학을 선택하게 됐다”
-국제 생물 올림피아드에 대해 설명해달라.
“각국에서 선출된 학생들이 최대 4명까지 출전을 하게 되고, 80여 개 국가가 참가한다. 여기서 생명과학 관련 이론, 실험 등 평가를 진행해서 메달을 수여하는 대회다. 국가대표로 발탁되기 위해서는 1차, 2차, 3차 선발고사를 치른 후, 대학교수와의 이론 강의, 실험교육 과정을 거친다. 일주일 정도 합숙도 하면서 글로벌 과학 대회를 준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는 않을 거 같다
“국가대표로 선발되면 국제대회 준비를 하게 되는데, 동시에 대학 진학을 위한 내신을 별도로 챙겨야 한다. 학교 시험과 올림피아드 준비를 병행하면서 크게 부담이 있었다. 특히 생물 올림피아드 기간이랑 기말고사 기간이 겹치면서 큰 스트레스가 됐다. 금메달이라는 좋은 성적을 가져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국제 올림피아드가 대입 등에 도움은 되는가?
“가장 아쉬운 부분이다. 올림피아드 준비하면서 회의감도 들었다. 우선 올림피아드 성적은 대입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한 정부 방침도 있고, 고등학교 내신에도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 주변에도 과학에 특출난 친구들이 있고, 올림피아드 나가면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는 학생들이 많지만 내신을 챙기고, 대입을 준비해야 하니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올림피아드 준비로 대입 시험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그나마 카이스트 같은 경우는 특별전형이 있지만 대부분의 대학은 올림피아드를 대입 성적에 반영하지 않고 있다”
-해외 과학 인재들과의 교류는 어땠나?
“국가나 대륙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왔던 친구들은 대회 성적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북유럽 출신 학생들은 성적보다는 교류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 중국 학생들은 수준이 매우 높았다. 애매한 문제들도 이미 알고 있었고, 올림피아드 자체를 쉽게 생각하는 거 같다. 실력 차이도 느끼면서 시야도 넓어지는 계기였다”
-해외 인재들의 교육에 대해서도 들었을 거 같다.
“올림피아드 준비 과정에 대해서 서로 공유했는데 일단 미국, 중국 학생들은 올림피아드 성적이 대입에도 쓸 수 있으니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되게 경쟁이 치열하다고 들었다. 내부 선발 과정 자체도 굉장히 길고, 선발 후에도 집중적인 교육을 받는다고 한다”
-한국과 비교하면 어떤가?
“교육 과정만 보면 사실 한국이 미국, 중국과 비교해 딱히 뒤쳐진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특히 영재교육 분야에서는 다양한 지원이 있고, 관심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쌓도록 도와준다. 이런 경험이 제가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딸 수 있게 했다.
다만 내신에 대한 부담 자체가 학생들이 과학 분야 공부를 포기하게 하는 것 같다”
-대학 진학 후 목표는 무엇인가?
“일단은 좋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수준 높은 수업을 들으면서 제 적성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될 것 같다. 이후 창업과 연구 쪽을 두고 고민할 예정이다.
다만 개인적인 경험을 위해 졸업 이후 해외 연구소를 염두하고 있다. 국내 연구소보다 수평적인 조직문화와 다양한 교류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만 종국에는 한국으로 돌아와 일하고 싶다”
-차무겸 학생과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의대에 몰리고 있다.
“뭔가 학생들 사이에서 무의식적으로 의대가 공대보다 좋다는 인식이 박혀있다. 소득적인 부분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다양한 분야에 가능성을 가진 극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를 선택하는 것으로 보면 안타깝기도 하다.
공대 쪽도 소득이나 여러 부분에서 의대보다 고점이 높은 것 같지만 유인이 부족한 것 같다. 분명 교육제도는 잘 돼 있는데 올림피아드 등을 보면 작동이 제대로 못하는 것 같다. 연구나 국제 대회에서 성과를 올리면 입시에 반영되는 등 학생들이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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