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풍덩!’ 해맑은 웃음소리가 투명한 물속으로 번진다. 이중섭(1916~1956)의 ‘물놀이하는 아이들’(1941)은 색과 선, 몸과 물결이 서로를 스미듯 품는다. 검정 펜과 연한 하늘색 수채 물감이 만나, 아이들의 손발이 물속에서 일렁인다.
같은 색만 찾는 양극단의 시대. 파랑과 노랑이 만나 아무렇지 않은듯 초록으로 어울리는 수채화는 낯설다. 물을 머금은 검정과 파랑이 종이에 퍼지듯,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깨끗한 물줄기가 서로를 감싼다. 편견도 경계도 없이 함께 헤엄치는, 맑게 빛나는 아이들의 마음은 수채화와 닮았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정재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개인화된 오늘날, ‘이해’의 가치를 다시 깨닫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기획의 글’을 통해서도 자연을 얘기했다. “마치 항상 옆에서 나를 감싸주는 어머니 자연이 그러하듯 다치지 않도록, 천천히 조금씩 스며드는 방식이면 충분합니다. 너와 내가 자연스럽게 습윤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포용하고 감싸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비롯해 ‘토끼풀과 새가 있는 바닷가’, ‘달과 말을 탄 사람들’, ‘연꽃과 아이’, ‘나뭇잎을 따는 사람’, ‘꽃 나무와 아이들’ 등 이중섭 작품 여러 점을 볼 수 있다. 이들 작품은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것이다.
이중섭에게 ‘물’은 곧 ‘수채 물감’이었다. 정 학예연구사는 말했다. “그는 항상 바다나 폭포, 물 등 물 자체를 보여줄 때 늘 수채 물감을 사용해서 표현했어요. 아마도 이 작품(물놀이하는 아이들)도 수채 물감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그렸겠죠. 수채는 어떤 부분은 비어있고, 어떤 부분은 미숙하게 덜 그린 것처럼 보일 수 있어요. 여백이 갖는 순수함과 투명성이 있죠.”

수채화는 그간 외면받았다. ‘수채: 물을 그리다’는 국립현대미술관 최초로 수채화를 단독 장르로 조명한 전시다. 수채화는 습작 또는 드로잉과 같이 유화 작품을 위한 전 단계, 숙련되지 않은 시기의 창작물로 여겨졌다. 하물며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한 전체 회화 작품 가운데 수채화의 비중조차 현재로서는 파악하기 힘든 실정이다. 1990년대 이후 작가들이 혼합매체 등으로 구분한 경우가 많아서 수채화 여부를 밝혀내는 데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과거 가난한 화가들은 수채 물감 덕에 붓을 들 수 있었다. 1931년 5월 29일자 조선일보는 이렇게 전한다. “고가의 유채를 살만한 자력이 없는 조선에서는 미술 청년들의 제일착이 수채화로 되어있다.”
정 학예연구사는 이번 기획전에 단 한 번도 외부에 선보인 적 없는 작품들이 다수 포함됐다고 말했다. “이인성은 대표적인 수채화 작가이지만, 전시에 안 나온 작품들이 있어요. ‘수채화라는 이유로 전시를 못 했나?’ 이런 생각마저 들었죠. 97점 중 23점이 첫 전시예요. 이번 기회를 통해 그 가치가 재발견되길 바라요.”

전시는 1부 색의 발현, 2부 환상적 서사, 3부 실험적 추상 등 총 세 부분이다. 1부에서는 구본웅, 김수명, 박수근, 이인성, 이중섭, 장욱진 등 근대기 최초 서양화를 도입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2부에서는 전상수, 류인, 김명숙, 김종하 등 내적 성찰과 정신적 상태를 표현하는 형식으로 수채화 매체를 사용한 작가들의 표현 방식을 살펴볼 수 있다. 3부는 장발, 김정자, 곽인식, 박서보 등 단색화 경향의 작품들이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동양화 지필묵 전통과 맞닿은 연속성을 갖고 수채화는 이어져 왔다”며 “이번 전시는 오랫동안 미술의 가장 기본적인 재료를 다 해온 수채화에 대한 새 인식과 감상에 대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청주서 9월 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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