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선아'를 그려내지만, 그 시선의 중심에는 언제나 '진우'가 있다. 떫고, 달고, 씁쓸했던 소년의 풋사랑을 따라가며 관객은 어느새 '진우'의 눈으로 '선아'를 사랑하게 되고, 그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깨닫게 된다. 이 이야기는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소녀'이자, 동시에 '그 시절 우리가 닮고 싶었던 소년'에 관한 것이라는 걸.
배우 진영은 이 청춘의 한 페이지를 완성한다. 그동안 다양한 장르와 캐릭터를 거치며 섬세한 감정선을 쌓아온 진영은 '진우'를 통해 첫사랑의 풋풋함과 청춘의 순간을 고스란히 관객에게 건넨다.
"'진우'가 첫사랑의 이미지를 가질 거로 생각지 못했어요. 저는 '첫사랑' 중인 학생이라고 생각해서, 실제 저의 첫사랑을 떠올려봤어요. 처음엔 솔직히 '진우' 행동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아니, 왜 말을 안 해! 좀 하지!' 하면서요. 하하."

앞서 영화는 2011년 개봉한 동명의 대만 영화를 원작으로 한다. 진영은 원작의 열렬한 팬이라고 밝히면서도, 리메이크작을 위해 원작을 참고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연기 할 때) 제 기억 속 첫사랑을 더 많이 떠올리려고 했어요. 리메이크 작품이긴 하지만, 원작 속 그 인물이나 분위기를 그대로 따라가는 건 모방밖에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진우'라는 인물 안에 저를 좀 더 녹여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실제로 저랑 비슷한 점도 있어요. 저도 좀 장난기 많고 허당기도 있고요. 학창 시절에 좋아하는 친구 앞에서 괜히 말도 못 하고, 장난만 치고 그랬던 기억이 있어서 그런 부분은 진짜 많이 공감됐어요. 결국은 저라는 사람을 진우 안에 솔직하게 녹여낸 것 같아요."
진영이 실제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 극 중 '진우'에게 반영하였다는 이야기에 그의 옛 기억이 궁금해졌다. 진영은 영화 속 배경인 2002년도는 실제 자신이 첫사랑을 했던 시기였다며 즐거워했다.
"실제로 제 2002년은 첫사랑의 시기였어요. 초등학교 6학년이었는데, 그래서 더 몰입됐던 것 같아요. 그때 기억을 꺼내보니까 공감 가는 장면이 많더라고요. 진우가 갑자기 고백하잖아요. 처음엔 '왜 저래?' 싶었어요. 좋아한다고 얘기를 한 번도 안 하다가, 갑자기 그 상황에서 처음 말하는 거잖아요. 그때가 수능 망치고 울고 있는데, 거기서 대번에 차여버리잖아요. 저도 보면서 너무 당황스러웠어요. 근데 생각해 보면, 진우도 좋은 말을 해주고 싶었을 텐데, 그럴 수 있는 '데이터'가 없는 거예요. 그냥,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이 그거밖에 없었던 거죠. '내가 널 좋아해.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울지 마.' 타이밍이 안 맞았던 거고… 좀 더 성숙했다면, 다음에 더 좋은 기회가 있었을 수도 있었겠죠."

관객들이 극 중 '진우'에게 몰입할 수 있는 건, 그가 느끼는 감정들이 세밀하게 전달되어 오기 때문이다. 진영이 보여준 감정 연기, 시선 처리 등이 그의 연기를 더욱 밀도 있게 느끼도록 만들었다.
"저는 표정이나 시선 처리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릴 땐 잘 못 쳐다보잖아요. '내가 지금 괜찮은가?' 눈이라도 마주치면 괜히 혼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죠. 진우가 선아를 처음 좋아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 그게 기마자세 장면이에요. 선아는 좀 FM 같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친구처럼 보였는데, 그 순간에는 자기를 희생하면서 배려하잖아요. 진우는 그런 모습을 보고 놀란 거죠. 그 장면에서 친구들은 대사를 하고, 선아는 울면서 웃고 있는데 진우는 말없이 몰래 바라봐요. 저는 그 장면이 되게 중요했어요. 말은 없지만, 표정 하나로 진우의 감정이 드러나야 했거든요. 그게 진짜 '찐 표정'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극 중 '선아' 역을 맡은 다현과의 연기 호흡도 궁금했다. 진영은 이번 영화로 첫 연기에 도전한 다현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고 말했다.
"다현 씨를 보며 부러운 게 많았어요. 사실 촬영할 땐 저도 제 것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연기 준비를 했는지도 잘 몰랐는데, 다현 씨는 처음 연기하는 건데도 준비가 정말 잘 되어 있었고,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더라고요. 해석도 잘해오고, 우는 장면도 처음부터 몰입이 확 돼 있어서 범접할 수 없는 느낌이 있었어요. 좀 못 다가가겠다는 느낌? 제가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어요. 다현 씨가 오열하고 제가 리액션을 해야 하는 장면이었어요. 근데 너무 몰입해서 오열을 하는 바람에 제가 대사를 해야 하는데, 그 타이밍이 안 오는 거예요. 근데 그게 너무 자연스럽더라고요. 저도 진짜 당황했는데, 그 당황함이 그대로 연기에 녹아들어서 결과적으로 정말 자연스럽게 흘러갔어요. 결국 그 장면은 첫 테이크로 그냥 쓴 것 같더라고요. 촬영이 끝나도 감성이 추슬러지지 않아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봤는데 오히려 그 점이 부럽게 느껴졌어요. 그렇게 몰입할 수 있다는 게 엄청난 장점인데… 저는 처음 연기할 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었나 싶고, 지금도 자신이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부러웠어요."

진영과 다현이 공동 작업한 OST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두 사람은 직접 작사, 작곡, 가창에 나서 관객들의 몰입도를 끌어올리고 깊은 여운을 남겼다.
"다현 씨가 작사는 예전부터 해봤는데, 작곡은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작품을 할 때, 주인공들이 직접 서사나 감정을 담아 OST를 만드는 게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주인공이 그 감정을 가장 잘 아니까, 곡에 녹였을 때 훨씬 진심이 전달되잖아요. 예전에 '수상한 그녀' 때부터 '구르미 그린 달빛', '경찰수업'까지 OST 작업을 계속해 왔던 것도 그런 이유였고요. 다현 씨도 작곡에 관심이 많았는데, 이번에 같이 해보자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작사, 작곡을 함께했는데 정말 열정적이었고, 아이디어도 많이 내줬어요. '선아라면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하면서 디테일한 감정까지 신경 쓰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진짜 캐릭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죠."
진영은 유명 원작의 영화를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연기한 것이 큰 도전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런데도 같이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냈고, 우리만의 스타일로 만들어보자고 도전했어요. 그 도전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저에겐 큰 성과예요.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 봤을 때, 이런 엄청난 도전을 해봤다는 건 분명 의미 있는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를 보신 분들께서 (연기에 대한) 많은 칭찬을 해주셨는데, 감동적이면서 생각이 많아지네요."
진영의 차기작은 대만 현지 영화 '1977년, 그해 그 사진'이다.
"대만 올 로케이션으로 찍은 영화예요. 그 작품도 굉장히 훌륭하니까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늘 어떤 역이든 다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전작을 완전히 지우는 것, 그게 저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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