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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의 미술마을 正舌] 밥은 여성의 몫이란 시대착오

기자정보, 기사등록일
정준모 미술품 감정/ 문화정책/ 미술비평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1996~2006)
입력 2025-03-24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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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화예술기관장의 할 일

  • 딜레마, 예술전문가와 예술 행정, 경영자?

  • 문화예술기관의 독립과 자율

  • 밥 잘하는 남자들

1996년 개관한 국악관현악 악가무 종합극 소리극 등을 공연하는 658여석 규모의 국립국악원 예악당 사진 국악원 누리집
1996년 개관한 국악관현악, 악가무 종합극, 소리극 등을 공연하는 658여석 규모의 국립국악원 예악당 사진 국악원 누리집.
 
문화예술기관장의 할 일
5년 전 일이다.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 관장과 국립국악원장의 직급이 관리관 또는 차관보급이라고 하는 1급으로 상향 조정되었다. 이는 1950년 국립국악원 설치령이 공포되고 1951년 국립국악원이 발족한 이래 국립국악원장이 소위 2급 공무원인 이사관급에서 70년 만에 처음으로 ‘3년 임기제 고위공무원 가급’으로 승격한 것이다. 

그런데 국립국악원장의 직급 상향 조정은 실은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직위가 상향 조정되면서 함께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국립국악원장의 직위가 상향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나, 국악계가 나서서 이를 강하게 주장하거나 여론화한 적은 없었다. 이에 반해 미술계는 국립현대미술관이 1986년 과천으로 이전한 뒤 매우 적극적으로 꾸준하게 국립현대미술관장 직급의 상향조정을 요구해 왔다. 국립국악원장은 70년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장 직급은 1969년 설립 이후 51년 동안 일반직 2급 이사관급으로 요지부동이었다. 그 이유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이나 국립국악원장이 자신의 직급을 상향 조정해달라는 말을 스스로 차마 하지 못한 것도 원인이지만 기관의 위상과 관련 해 기관장의 직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는 행정과 조직의 생리를 모르는 관련예술분야 인사들이 기관장을 맡았던 것이 더 큰 이유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또는 각종 공연장이나 공연단체장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며 다양하고 범위도 넓지만, 그중 중차대한 책임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기관의 비전과 사명, 전략적 목표를 개발하고 실행하며, 기관이 문화적, 사회적, 교육적 목적에 부합하는지를 끊임없이 살피는 전략적 리더 십이다. 공연장은 공연의 무결성과 우수성을 유지하면서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특히 예술가와 협력해서 프로덕션을 조직의 정체성에 맞도록 유지 조정하는 일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기금의 모금 및 재정을 감독하는 일이다. 국가나 지방 자체 단체에서 나오는 보조금, 후원, 모금 및 티켓 판매로 자금을 확보해 예산을 관리하고 기관의 재정적 안정성을 구축해야 한다. 특히 재정적 자원을 신중하게 관리하고 장기적 안정성을 위한 계획은 중요하다. 이와 함께 다양한 관객, 청중의 참여를 위해 관객 개발과 이벤트 개최 등의 프로그래밍은 물론 관련 예술가, 교육자, 커뮤니티 단체와의 파트너십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는 향후 지역과 주민, 동호회를 통해 후원 등의 재정적 협력을 끌어내는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정책 입안자, 이해관계자, 사회를 대상으로 공연 예술의 가치를 대변하는 한편 관내의 조직관리 즉 큐레이터, 공연기획자 등 직원, 자원봉사자를 이끌고 지원하는 효과적인 리더십을 통해 긍정적인 조직문화를 유지하며, 포용적인 업무 환경을 조성하고, 윤리적 관행을 보장하며 법률, 안전 및 운영 규정을 준수해 위험을 관리할 의무가 있다. 또 대중은 물론 언론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다. 하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재정적 또는 평판 위험으로부터 조직을 보호하는 일이다. 미술관, 박물관장의 경우 미술품이나 유물의 수집, 보존, 전시를 감독하며 컬렉션의 정합성을 유지하고 적절한 문서화를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국가기관으로 소속 부처 장관의 지휘 감독을 실질적으로 해당 부처 담당 사무관의 지시를 받는 행정부에 속한 문화예술기관장으로 ‘경영’이라는 재정적 임무와 인사, 재무, 노무 외에 조직관리 등 예산 관리, 직제 구성 등의 행정적 책무를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기관의 직제를 설계하고, 각 부서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며, 전문 인력을 확보하고, 직원들의 역량 개발을 지원한다. 특히 조직의 전문적이며 예술적인 활동을 위해 공무원 조직에는 없는 희소 직렬과 직위의 전문 인력을 채용하고 업무를 조율해, 효율적인 조직 구조를 유지한다. 그러나 필수 전문 인력 확보는 공무원 정원 확대가 필요하다. 따라서 기획재정부는 물론 행정안전부 또는 인사혁신처와 일일이 협의해 정원을 확보해야 한다. 사실 문화예술기관에서 정말 필요한 희소 전문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고려가무 동동을 공연하는 모습 사진 국립국악원 제공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고려가무 동동을 공연하는 모습 사진 국립국악원 제공.
 
딜레마, 예술전문가와 예술 행정, 경영자?
1945년 12월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인수해 ‘국립박물관’으로 출범해 올해로 개관 80년을 맞는 국립중앙박물관이나 50여 년이 훌쩍 지난 국립현대미술관조차 작품 수집과 관리에 필수인 ‘작품등록담당자 (Registrar)’가 없고, 두 기관 모두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지만, 이를 전담할 박물관, 미술관 ‘교육사(Educator)’는 물론 작가와 작품 관련 기록과 자료를 전문으로 다루는 ‘아키비스트(Archivist)’도 직제에 없어 인력 확보를 못 한 채 자료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문화예술전문기관들은 특정 전문직을 두기보다 기존 학예사들이 작품등록, 관리, 교육은 물론 자료관리 업무를 겸임하거나 외부 전문가에게 위탁해 임시방편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지방 공립박물관과 미술관은 작품의 건강을 확인하고 처치하는 ‘수복보존가(Conservator)’는 아예 없다. 

이런 상황은 공연장도 마찬가지로 전문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는 거의 필수희소인력, 직종의 인력을 확보하지 못하고 돌려막기로 버티는 것이 현실이다. 그간 미술관 박물관 관장이나 공연기관 단체의 장을 소위 전문성과 행정 경험을 두루 갖춘 해당 분야 전문가로 임명했다고 하지만 이들이 수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동시에 능력 밖의 일로 이런 중요한 일에 관심을 둔 역대 기관장은 거의 없었던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이런 불합리한 일이 지금까지 존속되어 온 것이다.
 
정부 규정상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려면 매년 행정안전부가 통보해 주는 정부 조직의 관리 및 운영 방침에 따라 기구 개편안 및 소요 정원 안 작성 기준에 따라 기구 개편안, 소요 인력 및 근거 자료를 작성해 ‘직제개정요구’를 하면 행정안전부는 제출된 문건을 심사해 적정 기구 및 인력을 산정한다. 이후 기획재정부와 예산협의를 통해 기구 신설 및 인력 증원에 필요한 협의를 완료한다. 이후 직제 개정령안을 법제처에 보내 법령안 심사를 받아 차관회의와 국무회의에서 심의, 의결된 안을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관보에 게재해 공표한 후 인력을 채용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문을 연 지 수십 년이 지난 문화예술전문기관들 조차 운영에 필요한 필수인력을 직렬과 직제를 확보하지 못하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공연모습 사진 민속악단 FACEBOOK 발췌
국립국악원 민속악단의 공연모습 사진 민속악단 FACEBOOK 발췌.


기본적으로 문화예술기관은 기부와 후원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것이 기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중앙 또는 지방정부 소속 문화예술기관의 경우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와 그 소속 기관·공무원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자·출연해 설립된 법인·단체는 기부금품을 모집할 수 없다'는 조항 때문에 어떤 기부금도 모금할 수 없다. 따라서 경영자로서 기관 또는 단체 장의 문화예술기관을 위한 재정적 기여 방법은 정부예산을 확보하는 것이 유일하다. 

따라서 모든 기관과 단체는 연간 사업계획을 수립해 필요한 예산 항목과 금액을 산출해 이를 바탕으로 사업의 목적, 세부 내용, 소요 예산, 기대 효과 등이 포함된 예산 요구안을 작성해 소관 부처 즉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하면 문화부는 이를 검토하고 조정 해 기획재정부와 협의를 거쳐 사업의 타당성과 우선순위를 평가해 예산안을 조정한다. 이후 기획재정부에서 확정된 정부 예산안은 국회에 제출, 심의를 받아 통과되면 해당 기관의 예산이 최종 확정된다. 이후 확정예산은 해당 기관으로 배정되며, 기관은 이를 바탕으로 사업을 실행한다. 

이렇듯 국가 소속 문화예술기관장의 역할은 전문성과 문화예술경영과는 거리가 먼 ‘극한 직업 공무원’의 역할을 해야 한다. 간혹 우리나라에서 문화예술기관장으로 전문경영인을 발탁할 때도 있지만, 이는 명분일 뿐 제아무리 재주 있는 전문예술인이라도 일반행정공무원으로서 경험이 없으면 실제로 할 일이 별로 없는 ‘장’이란 직함에 만족해야 하는 자리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해당 분야 전문가 즉 예술가나 그 분야 이론가들을 ‘장’으로 임명해 왔다. 그러나 해당 분야의 전문성에 기반한 명망에도 불구하고 관장이나 단장, 원장으로서 크게 성과를 낸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는 정부예산회계법이나 인사관련 법령과 제도를 모르기 때문에 기관을 대표하는 얼굴 역할을 했을 뿐 ‘장’으로서 할 일을 못 했고 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때로는 특정 학교나 특정 정파 사람이 무늬만의 ‘공모제’를 통해 '떨어진 사람조차 재시험 기회를 부여해' 임용하는 등 화이트리스트를 충실하게 실천에 옮기는 '실력보다 내 편' 챙기는 자리로 쓰이면서 일종의 전리품처럼 활용되었기 때문이다. 또 자신의 예술적 성취에 부족함을 느끼는 일부 예술인들이 기관의 장이란 자리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예술적 성과를 대신하려는 욕심 때문에 정치권에 줄을 대면서, 예술의 정치 예속화를 불러오는 오점이 되기도 했다.
 
국립국악원 우면당 1988년 개관한 이후 각종 상설 공연장으로 사용 2017년 전면 개·보수 사진 국악원누리집
국립국악원 우면당 1988년 개관한 이후 각종 상설 공연장으로 사용. 2017년 전면 개·보수 사진 국악원누리집.
문화예술기관의 독립과 자율
뜻있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정부로부터 독립해 간섭과 규제를 피하면서 예산을 국고에서 지원해 예술의 자율성과 기관의 독립성을 유지하는 ‘팔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실천하는 영국의 ‘비정부공공기관(NDPB, Non Departmental Public Bodies)’이나 프랑스의 ‘공공기관(Établissement public)’과 같은 문화예술기관 거버넌스(Governance)의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이런 불합리한 구조에서 해방되자는 이유에서이다. 이 시스템은 철저하게 재정적 기여를 통해 책임과 권한을 함께 갖는 이사들로 구성된 이사회에서 경영자 즉 문화예술경영인을 관장이나 원장 또는 단체장으로 선임한다. 따라서 경영과 관리 그리고 예술적 성과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다. 관장과 학예실장 또는 단장이나 원장과 예술감독은 서로 기관의 경영과 예술적 성과를 나누어 책임지며, 기관 장은 철저하게 예술감독과 소속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뒷바라지를 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재 정부 산하의 문화예술기관 형태로는 이런 시스템 도입이 절대 불가능하다. 50여 년, 80여년 동안 필요한 필수인력조차 확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관장이나 단장, 원장과 예술감독이 양립하는 직제를 만든다는 것은 요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우리는 선진적이며 독립성과 자율성이 보장되는 프랑스의 공공기관이나 영국의 비부처공공기관과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이 제도는 ‘법인’과는 다른 정부 정책과 연계하면서도 운영 및 의사 결정에서 독립적인 기관이다. 이런 독립성은 문화예술 분야에서 창의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물론 전문적인 경영과 운영을 가능하게 하며, 일반 행정 구조와 차별화된 방식을 통해 더 효과적인 문화예술 정책 실행을 지원할 수 있다. 

또 독립적인 거버넌스 모델은 정부의 과도한 간섭을 배제하면서도 명확한 목표와 성과 기준을 설정해 책임을 강화하는 투명한 구조를 제공한다. 특히 독립적인 법적 지위를 통해 기관의 자원 배분과 재정 관리에서 더 많은 재량권을 갖게 되어, 변화하는 문화예술 시장의 요구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물론 이런 구조 전환은 정부와 기관 간의 역할 분담, 법적 책임 범위, 효율성 및 공공성 간의 균형 유지 등과 같은 과제를 동반하지만, 문화예술계가 열망하는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장치란 점에서 많은 선진 국가에서 실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국립국악원 우면당 무대 사진 국악원 누리집
국립국악원 우면당 무대 사진 국악원 누리집.
이를 위한 전단계로 문화예술기관의 장을 전문예술가는 물론 행정전문가에게도 개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전문성을 지니고 경영 능력을 갖춘 이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전문성이 없다는 이유로 관장이나 원장에 취임할 수 없다면 이는 모순이다. 특히 경영능력과 행정, 정책관련 경력이 풍부하다면 이 또한 문화예술단체의 장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기관이나 단체의 시스템을 이원화해서 ‘살림’은 ‘단장’ 또는 ‘대표’에게 맡기고 예술‘은 ‘예술감독’에게 전적으로 맡기면 될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 예술전문가 관장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관의 경영과 운영이란 업무가 서툴고 생소해 피하다 보니 관장이 해야 할 일은 피하면서, 자신이 아는 예술 분야, 예를 들면 미술관장은 전시나 작품 수집 등 학예업무에 개입하고, 간섭해 학예실장이나 학예연구원들과 불화를 낳는다. 고전음악전문의 연주자 출신 원장이 궁중무용을 하는 무용단의 안무에 개입해 예술감독과 단원 간 갈등이 일어 난 경우도 있었다. 또 관장이나 원장의 출신학교 졸업자를 선발에 우대하거나, 특정 악기전공자를 특별 배려해 문제가 많았다. 따라서 관련예술 전문성이 원장의 자격요건에 필수적이란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세계 최고의 소프트웨어 회사인 마이크로소프트사를 설립한 빌 게이츠(Bill Gates,1955~)도 하버드대학 법학과를 중퇴한 컴퓨터와는 거리가 먼 이란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독립성과 예술성 그리고 자율성 확보를 위해 많은 법적, 행정적 과정을 거쳐야 할 문화예술기관의 거버넌스를 바꾸는 일은 대행정부, 대국회와의 이해와 협조가 필수적이란 점에서 ‘예술가’보다는 행정업무에 밝은 ‘행정정문가’가 적격이다. 향후 국립국악원의 지방원 설립을 위해 조직과 예산을 확보하고, 지방자치단체와 협업해야 할 행정적 정책적 소양도 중요하다. 또 국립국악원과 국립극장 간 역할 정리도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 국립국악원의 ‘정악단’과 ‘민속악단’, ‘무용단’과 ‘창작악단’등 산하단체와 국립극장의 ‘국립 창극단’, ‘국립 무용단’, ‘국립 국악 관현악단’의 중복된 기능과 역할에 대한 교통 정리도 필요하다. 이런 중차대한 업무를 평생 예술 활동만 해 온 예술인이 과연 수행해 낼 수 있을까.
 
전문성이란 독식을 위한 수단
이처럼 문화예술기관과 단체장 선임을 예술인들로 한정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사실 '전통예술전반에 깊이있는 전문성을 갖춘 인사'라고 하지만 국립국악원에는 뿌리는 같지만 각기 다른 독창적이며 독립적인 ‘정악단’과 ‘민속악단’, ‘무용단’과 ‘창작악단’이 있다. 따라서 아무리 국악에 정통하다 해도 다양한 모든 국악장르에 정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만 이중 어느 특정 국악분야에 정통할 뿐이다. 이는 전통수묵채색화가 즉 한국화 전공자가 서양화가에게 조언하는 것이나, 국악 전공자가 전통 무용가의 안무를 지도하는 일과 다를 바 없다.     

대한민국의 개발도상국가형 문화예술시스템을 자율과 독립, 예술성을 담보해 낼 선진국형 거버넌스로 바꾸려는 시도에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될 것이다. 블랙리스트의 폐해를 주장하는 이들이 팔길이 원칙의 기반인 ‘비정부공공기관(NDPB, Non Departmental Public Bodies)’이나 ‘공공기관(Établissement public)’같은 제도 도입을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특히 이런 획기적인 혁신적 변화로 가는 길에 특정학교 특정학과 출신들이 그간 독점해 오면서 ‘자기자리’라고 여겨왔던 원장직을 내놓지 않으려는 집단 이기주의에서 기인한 것이라면 이는 더더욱 안 될 말이다. 사실 국립국악원 탄생 이후 역대 원장들의 출신학교를 살펴보면 이런 걱정이 기우나 오해가 아니라 사실이란 점을 알 수 있다.
 
역대 국립국악원장 명단
역대 국립국악원장 명단.

위 표를 보면 국립국악원 초기에는 이왕직아악부의 아악부원양성소 출신의 이주환, 성경린, 김기수 그리고 김성진이 약 27년간 원장 또는 원장 직무대리를 맡아 국립국악원의 기틀을 다진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4대 송방송 원장부터 서울대학교 국악과 출신원장이 부임하기 시작해 문화부 출신의 공무원이 임용된 것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천영조(5대), 김영삼 대통령때의 김광락(8대), 이웅호(9대)등 3인이 5년간 원장을 맡았던 것을 빼면 국립국악원 74년 역사 중 42년, 그것도 1995년 이후에는 지금까지 30년 동안 서울대 국악과 출신이 원장 자리를 독식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국립국악고를 마치고 서울대 국악과를 졸업한 이가 엘리트 국악인이란 점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이 문화예술기관을 경영하고 관리할 능력까지 겸비했다고는 할 수 없다. 이는 지금까지 역대원장의 성과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타 전공자 또는 문화 예술경영전문가, 문화행정가, 문화정책을 30년 이상 수행해 온 이의 원장 공모까지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은 과하다. 

어느 국립학교는 이미 2005년 일반대학의 국악과와 비슷한 한국예술학과에 전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영문학 전공자로 문화이론과 비평을 세부 전공한 이를 국악의 현대적 수용을 위해 교수로 임용했다. 이는 국악의 폭과 타 예술과의 융합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이미 20여 년 전 일이다. 따라서 지금 국악 전공자만 국립국악원장을 맡을 수 있다는 주장은 이런 시도와 상반된 것으로 시대착오적이다. 이번 공모의 폭을 확대한 것도 필자가 보기에는 선진국에 진입한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를 혁신해 진정한 선진형 문화국가로 가려는 시도인 동시에, 세상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는 이때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관행적으로 이루어져 온 세습의 벽을 타파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를 반대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은 넓어지고 문화예술 환경도 지속적으로 변모하는 마당에 국립국악원장을 특정 예술 분야 또는 특정학교, 특정학과 출신들의 입신양명을 위한 대물림의 자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그리고 이런 새로운 시도, 변화를 위한 혁신적 조치를 반대하는 이들은 특정 기관의 40년 넘는 세습 체제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간 여야를 막론한 국회의 질타와 언론과 세간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이루어진 대물림에 대해서는 왜 입을 닫고 있는지, 이번 공모를 통해 내정되었다고 주장하는 인사혁신처에서 선발한 3인 중 행정직 공무원을 제외한 2인 중 서울대학교 국악과 출신이 있는 지 궁금하다. 만약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내정’일 텐데 나머지 2인의 출신과 전공에 대해서는 왜 함구하는지 궁금하다. 한통속은 아니겠지만 늘 입에 정의와 공정을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의 작금의 태도는 정말 이해가 안 간다.
 
국립극장소속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모습 사진 재국립극장진흥재단 누리집 갈무리
국립극장소속 국립국악관현악단 공연모습 사진 (재)국립극장진흥재단 누리집 갈무리.
 
밥 잘하는 남자들
특정 분야의 예술에는 문외한 또는 전공을 하지 않았지만, 문화예술경영 또는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장을 맡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일은 수없이 많다. 때로는 비전공자들의 거리낌 없는 예술에 대한 태도와 입장 그리고 학연과 지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 때문에 성공적으로 문화예술 기관을 이끌어 갈 수 있고, 예술적인 부분은 전적으로 예술감독의 몫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는 대개 대표(Executive Director 또는 President) 와 예술감독(Artistic Director)의 이원체제를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표는 주로 행정, 재정, 조직 운영 등 관리를 담당하고, 예술감독은 예술적 비전과 창작 활동을 주도해 분야별 전문성을 극대화한다. 행정과 예술적 결정이 분리되면, 분야별로 신속하고 전문적인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 또 대표와 예술감독이 각자의 역할에 집중함으로써 업무 부담을 나누고, 기관 운영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예술감독은 창의적인 방향성을 제시, 대표는 이를 뒷받침하는 자원과 환경을 조성해 균형 있는 운영을 돕는다. 특히 두 리더가 협력하면 다양한 관점과 아이디어를 반영할 수 있어, 더 풍부하고 혁신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큐레이터로서 두드러진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미술관 대표 즉 관장으로 임명되어 경영과 관리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룬 사례는 많다. 이들은 종종 경영 능력과 혁신적인 접근 방식을 통해 기관의 성장을 끌어냈다. 원래 영어영문학, 장식미술을 전공한 토마스 P. 캠벨(Thomas P. Campbell,1962~)은 큐레이터 경력은 상대적으로 짧았지만,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9~ 2017)과 현재 샌프란시스코 미술관(Fine Arts Museums of San Francisco, 2018~)의 관장 겸 최고경영자(Director & CEO)로 기관의 디지털 혁신과 50% 이상의 관람객 확대에 성공했으며 양 기관의 컬렉션을 획기적으로 증가시켰다. 또 많은 괄목할 만한 전시가 가능하도록 큐레이터를 지원했다. 그의 리더십은 전통적인 미술관 운영 방식을 현대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을 세계적인 문화 기관으로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닐 맥그리거(Neil MacGregor,1946~)도 큐레이터 경력보다는 경영자로서 역량이 탁월하다. 원래 철학과 법학, 그후 미술사를 공부한 그는 박물관의 500만 파운드(약 9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해소하면서 영국박물관의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대중화하고,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 기관의 위상을 높였다. 미술관의 국제적인 분관이라는 새로운 시스템을 고안한 토마스 크렌스 (Thomas Krens,1946~)는 구겐하임미술관(Guggenheim Museum)의 관장(1998~2008)으로 20년간 재직하며 구겐하임의 글로벌 확장을 이끌었다. 정치학을 전공하고 석사과정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그는 스페인 빌바오, 독일 베를린, 아부다비 등에 분관을 설립해 미술관의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 또한 세일즈맨쉽을 발휘해 <예술로서의 오토바이(The Art of the Motorcycle, 1998)과 같은 독창적인 전시로 대중의 관심을 끌어냈고 미술관 기금을 2000만 달러(약 290억원)에서 1억 1800만 달러(약 1700억 원)로 끌어올렸다. 또한 과감하게 구겐하임의 오래된 칸딘스키, 샤갈, 모딜리아니 등의 핵심 컬렉션을 판매해 판자 컬렉션의 1960 ~70년대 미니멀리즘 작품을 구입 해 미술관 체질을 개선한 것으로 유명하다.
 
닐 맥그리거는 큐레이터보다 박물관 경영자로서 역량을 발휘해 영국박물관을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사진 영국박물관 누리집
닐 맥그리거는 큐레이터보다 박물관 경영자로서 역량을 발휘해 영국박물관을 세계적인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사진 영국박물관 누리집.

글렌 로리(Glenn Lowry, 1954~)는 1995년부터 시작해 2025년 9월 은퇴 예정인 그는 지금까지 30년 동안 뉴욕 현대미술관(MoMA) 관장으로 재직하며 두 차례의 대규모 건축 프로젝트를 통해 MoMA의 전시 공간을 두 배 이상 확장했다. 원래 동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동양미술 큐레이터로 일했던 그는 미술관 경영에 확실한 자질을 보여주었다. 그는 MoMA에 미디어와 퍼포먼스 아트를 포함한 새로운 학예부서를 설립하고, MoMA의 디지털 플랫폼을 강화해 연간 방문객 수를 3백만 명 이상 증가시켰다. 또 PS1 현대미술센터와 합병해 미술관이 다루는 미술의 범위를 확장했다. 테이트 모던의 초대 관장으로, 런던의 폐 화력발전소를 세계적인 현대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킨 니콜라스 세로타(Nicholas Serota, 1946~)는 테이트 모던 관장(1988~2017)으로 29년간 재직하면서 테이트 모던을 통해 현대미술의 대중화를 이끌었으며, 이를 통해 런던을 세계적인 예술 중심지로 자리매김시켰다. 경제학을 전공하다 미술사학과로 전과한 그는 특히 국제교류 활성화와 미술관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며 미술관을 전시나 교육의 장을 넘어 열린 논의와 토론의 장으로 기능하도록 했다. 

음악계에서도 작곡가나 연주자로 크게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공연장이나 연주단체의 장으로서 탁월한 경영 능력을 발휘한 이도 많다. 대학에서 음악사와 피아노를 전공하고, 클래식 FM 방송국을 경영했던 헨리 포겔(Henry Fogel,1942~)은 연주자 경력은 없지만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Chicago Symphony Orchestra)의 CEO(1985~2003)로 재직하면서 뛰어난 경영 능력을 발휘해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오케스트라를 안정시키고, 관객을 크게 늘렸다. 특히 그는 세계적인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Daniel Barenboim,1942~)를 음악 감독으로 초빙해 시카고 심포니의 국제적 명성을 높였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음악을 부전공 한, 마이클 카이저(Michael Kaiser,1953~)는 경영학 석사를 취득해 연주자나 작곡가로서의 경력이 일절 없었다. 하지만 워싱턴 D.C.의 케네디 센터(Kennedy Center, 2001~2014 재직)와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Royal Opera House, 1998~2001), 캔자스시티 발레(Kansas City Ballet), 앨빈 에일리 아메리칸 댄스씨어터(Alvin Ailey American Dance Theater), 2006년 미국 의회로부터 “미국 국립 발레단”으로 인정받은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merican Ballet Theatre) 등 여러 기관을 거치면서 예술경영자로 탁월한 성과를 냈다. 그는 '전환의 왕' 또는 '예술계의 구조조정 전문가'로 재정적 위기에 처한 예술 단체들을 성공적으로 회복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지휘자 에드워드 가드너(Edward Gardner,1974~)도 영국의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English National Opera)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며 조직의 운영과 예술적 방향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미국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The Metropolitan Opera)의 총괄 매니저(General Manager)로 2006년부터 일하고 있는 예술행정가(Arts Administrator) 피터 겔브(Peter Gelb,1953~)는 고교 시절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안내원으로 시작해 음반 프로듀서로도 일했다. 그는 매니저에 취임하자 오페라 공연의 HD 라이브 중계를 도입해 전 세계 관객이 오페라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해 오페라에 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또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작곡가나 연주자로서의 배경이 없지만 강력한 리더십과 혁신적인 경영으로 공연 예술 단체의 성공에 크게 했다.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세종문화회관 공연모습 국립극장의 국립 국악 관현악단과 기능과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사진 세종문화재단j
국립국악원 창작악단의 세종문화회관 공연모습, 국립극장의 국립 국악 관현악단과 기능과 역할분담이 필요하다. 사진 세종문화재단.


문화예술기관이나 단체의 장이 꼭 관련 전공자여야 한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란 것은 이런 사실을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다. 문화예술기관 운영은 예산 관리, 마케팅, 인적 자원 관리 등 복잡한 조직 운영 능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이런 경영 능력과 리더십은 해당 기관의 예술적 배경보다 중요한 경우가 많다. 외부의 리더는 새로운 관점과 전략을 도입해 혁신을 촉진하며 특히 기존의 예술계 관점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접근 방식의 도입과 시도가 가능하다. 성공적인 문화예술기관은 다양한 전문가들의 협업이 중요하다. 대표 또는 관리자는 예술감독이나 큐레이터와 같은 예술전문가와 협력해 비전을 실현하는 이원적 구조가 효율적이다. 또한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은 사람들은 다양한 네트워크와 자원의 개발, 유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새로운 투자처나 후원, 협찬의 증대는 물론 관객 확보에 유리하다. 

사실 예술 분야의 전문지식은 이미 기관이나 단체 내에 충분하게 많이 있다. 예술감독, 큐레이터, 학예연구원 등 전문인들이 그들이다. 따라서 대표 또는 리더는 이를 종합적으로 조정하고 지원하는 데 집중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문화예술계, 경제계, 정관계에 다양한 인연과 경험을 지녔다면 이는 더더욱 기관의 성공을 위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또 다른 분야의 전문가에게 기회를 주고 실적을 기다려보자.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아픔이 있더라도 이번에는 제대로 된 개혁, 혁신을 한번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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