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수출 제재가 강화되면서 중국 밀수업자들이 국내 유통 그래픽카드(GPU)를 사재기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내 그래픽 카드 수요자들이 2배 이상의 돈을 내고 제품을 구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엔비디아의 신제품 RTX 5090과 RTX 4090을 중심으로 가격이 상승 중이다. RTX 4090은 신제품 출시에도 불구하고 중고 가격이 출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24일 국내 중고 그래픽카드(GPU)를 중국에 판매하는 업자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현재 중국 내 RTX 4090의 중고 거래가는 약 500만원에 육박한다.
국내에서 중국 밀매업자들이 중고 RTX 4090을 매입하는 가격은 400만원 수준이다. 1년 6개월 정도 사용한 RTX 4090 판매를 시도한 결과, 380만원에 매입하겠다는 답을 받았다. 2023년 RTX 4090 새 제품을 구매한 가격은 210만원이었다.
2022년 10월 12일 출시된 RTX 4090의 권장소비자가격은 1599달러(당시 환율 기준 약 200만원)였다. 같은 해 11월 오픈AI의 챗GPT가 공식 출시되고, 2023년 AI 붐이 일면서 RTX 4090의 중고 가격은 300만원까지 치솟았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RTX 4090 출시와 함께 대중국 반도체 수출을 제한하자, 중국 내에서 RTX 4090을 거래하는 암시장이 크게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중고 가격이 300만원까지 올랐던 RTX 4090은 올해 1월 미국 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2차 제재와 트럼프 정권 출범 등 현안으로 인해 100만원이 추가 인상됐다. 무엇보다 1월 딥시크의 ‘딥시크 R1’ 출시가 RTX 4090의 중국 내 수요를 더욱 끌어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중국은 AI 학습에 개당 5000만원 전후의 가격인 GPU H800을 사용해왔으나, RTX 4090이 개조를 통해 H800 수준의 학습용 AI 칩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수요가 폭등했다고 밀수업자들은 전한다.
딥시크 R1은 대규모 하드웨어 인프라 없이 소수의 RTX 4090만으로도 효율적인 AI 언어모델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며, 중국 암시장에서 GPU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엔비디아가 지난 1월 차세대 모델인 RTX 5090을 공개했음에도 구형 모델인 RTX 4090의 가격이 오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중국 밀수업자는 “RTX 4090, 5090 등 AI 칩으로 활용 가능한 모델은 중국 내에서 부르는 게 값”이라며 “엔비디아가 중국에 수출하지 않는 모델이기 때문에 주로 한국과 대만을 중심으로 밀수 시장이 크게 형성됐다”고 말했다.
RTX 5090의 가격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국내에서 출시가는 약 370만원로 책정됐지만, 공개 2개월이 지난 지금 RTX 5090 중급모델은 500만원 선에 거래되고 있다. 개선된 쿨링·전원 시스템을 제공하는 고급모델의 경우 용산 전자상가와 온라인몰 등에서 800만원 선에 판매 중이다. RTX 5090 역시 AI 칩으로 활용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중국 밀매가 많은 것으로 파악된다.
용산에서 컴퓨터 부품을 판매하는 A씨는 “RTX 5090의 국내 초기물량이 많지 않은 것도 있지만, 중국에서 워낙 비싼 가격에 사주니 국내 물량을 곧바로 중국에 넘긴 업자들도 많다”며 “아직 RTX 4090처럼 AI 칩으로 활용이 활발하지 않지만, 올해 하반기에는 중국 암시장 수요가 커지면서 가격도 크게 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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