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경제·산업안보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을 민감국가 목록의 하나인 ‘기타 지정 국가’에 포함하여 그 충격파가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를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으로 관리한다. 한국은 바이든 정권 말기인 2025년 1월 ‘기타 지정국가’로 지정되었으며 이 조치는 4월 15일 발효될 예정이다. 미국 에너지부가 동맹국인 우리나라를 목록에 포함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수출통제 대상인 중요 정보의 취급에서 보안상 문제가 있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 최근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사례는 미국이 자국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정보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본은 2024년 5월 10일 '중요경제안보정보보호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률은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물론 야당인 입헌민주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도 모두 찬성하여 통과시켰다. 법률의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법률은 무언가 경제안보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보호’한다는 것은 통상 ‘비밀’로 한다는 것이며 정부는 이를 빌미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정부에 의한 정보의 독점은 민주주의 원리와는 상충하며 정부의 실패나 부정을 은폐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여야 다수의 찬성으로 위 법률을 통과시켰다. 왜일까?
그 이유를 논하기 전에 이 법률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첫째, 이 법률은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지정하도록 한다. 중요경제안보정보란 중요경제기반(예: 중요한 인프라, 물자의 공급망)에 관한 정보로서 공개되지 않은 것 중, 그 유출로 인해 국가의 안전보장에 지장이 초래될 우려가 있어서 특별히 비밀로 할 필요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사이버 공격이나 사이버 대책에 관한 정보, 공급망 상 취약한 부분(choke point)에 관한 정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정의 유효기간은 5년이고 연장이 가능하며 최대 30년을 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둘째,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취급할 수 있는 취급자의 범위를 제한하는 ‘적성평가제도’(Security Clearance)를 도입한다. 중요경제안보정보의 취급 업무는 적성평가에서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유출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된 자만으로 제한하도록 한다. 행정기관의 장은 평가대상 본인의 동의를 얻고 정보 유출의 우려가 없는지 적성평가를 실시한다. 조사 내용은 중요경제기반 훼손활동과의 관계, 범죄 및 징계 경력, 정보 취급에 관한 비위 경력, 약물남용, 정신질환, 음주, 신용상태 및 기타 경제적 상황 등 다양하다. 조사내용이 상당히 사적인 영역에까지 파고들 우려가 엿보인다. 적성평가 대상자는 행정기관 이외에 민간사업자도 포함된다. 중요경제기반 취약성 해소에 기여하고 경제안전보장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민간사업자는 ‘적합사업자’가 되며 행정기관은 적합사업자와의 계약을 통해 중요경제안보정보의 공유가 가능하다. 이때 적합사업자의 직원으로서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취급할 수 있는 자는 상기 적성평가를 통과한 자여야 한다.
셋째, 중요경제안보정보는 적성평가를 통과한 취급자 간에 원활히 공유될 수 있도록 한다. 행정기관의 장은 타 행정기관이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 중요경제안보정보를 타 행정기관에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한 때 국회와 법원에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적합사업자의 경우 민간사업자라 하더라도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취급자의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동시에 적성평가를 통과한 취급자 간에는 정보가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하여 효율성을 높이도록 하였다.
일본에는 이미 기밀정보를 규제하는 법률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특정비밀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이다. 특정비밀보호법은 외교, 국방 등 4개 분야에 한정되어 있으며 위반 시 벌칙이 훨씬 강력하다. 중요경제안보정보보호법은 특정비밀보호법을 경제안보분야로 확대한 법률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법률이며 이 법률을 통해서도 경제안보상 민감한 정보의 유출을 규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중요경제안보정보보호법을 새롭게 제정한 데에는 미국에 대해 일본이 이렇게 열심히 정보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자국의 중요 정보가 타국에 흘러갔을 때 타국이 이를 잘 지켜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국가 신용도의 문제이다. 특히 첨단과학기술분야에서의 국제협력에서 이 문제는 더욱 첨예해진다. 미국은 중국과 과학기술 분야에서 사활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타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와 협력할 수는 없다. 믿을 수 있는 국가, 기관, 연구자가 필요하다. 이 신용은 무엇으로 확보되는가? 오랜 교류의 역사, 경험, 인적 네트워크 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 여기에 중요한 정보를 유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국가가 보증하는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추가한다면 어떨까? 일본은 특정비밀보호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과 같은 기존의 법률을 통해 이를 보증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대방이 이를 얼마나 신뢰할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새롭게 법을 만들어서 이러한 보증 시스템을 도입하면 될 일이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추론한다.
다만 이 제도의 도입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첫째는 정부의 자의적 운용 가능성이다. 자기 멋대로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지정하고 또 자기 멋대로 적격사업자를 지정하며 그 사업자 직원 중 자의적으로 정보 취급자를 선정할 수 없도록 점검하고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부가 특정 사업자에게 이익과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자의성을 가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특정 직원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회사에서 인사상 손해를 끼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현재 제도는 이러한 우려가 불식되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운용 규칙의 도입과 시행이 필요한 이유이다. 둘째는 중국과의 관계이다. 이 제도가 엄연히 미국과의 안보협력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중관계에 민감한 국가에서는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은 어차피 안보상 미국과 일심동체를 이루는 전략이기 때문에 이 제도의 도입에서 중국 요인은 그리 크게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입장이 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이 제도는 수단이다. 중요 정보를 철저히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며 수단이다. 중국을 배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중국과의 협력을 촉진하는 장치로서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국가안보나 경제안보 상 중요 정보를 얼마나 잘 보호하고 있는가?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정보보호 능력에 대해 국제사회는 우리나라를 얼마나 신뢰하고 있는가?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 사태는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위치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지 않을까? 정보의 독점은 인권과 자유라는 가치와는 대립한다. 안보라는 이유로 정부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보의 독점보다 알 권리를 더 선호한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은 우리에게 타협을 요구한다. 부작용을 통제하면서 중요 정보를 보호할 수 있는 섬세한 제도 설계가 필요한 이유이다. 2025년 5월이면 일본에서도 이 제도가 시행된다. 일본이 정보보호의 효율성과 국제사회에서의 신뢰도 제고라는 효과를 누리면서 사생활 침해와 정부의 자의적인 제도 운용이라는 부정적 효과를 얼마나 억제할 수 있을 것인지 주의 깊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을 민감국가 목록의 하나인 ‘기타 지정 국가’에 포함하여 그 충격파가 일파만파 퍼지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미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국가를 ‘민감국가 및 기타 지정국가’ 목록으로 관리한다. 한국은 바이든 정권 말기인 2025년 1월 ‘기타 지정국가’로 지정되었으며 이 조치는 4월 15일 발효될 예정이다. 미국 에너지부가 동맹국인 우리나라를 목록에 포함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에너지부 산하 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수출통제 대상인 중요 정보의 취급에서 보안상 문제가 있는 행동을 했다는 것이 최근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 사례는 미국이 자국의 안보에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정보에 대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일본은 2024년 5월 10일 '중요경제안보정보보호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률은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물론 야당인 입헌민주당, 일본유신회, 국민민주당도 모두 찬성하여 통과시켰다. 법률의 명칭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법률은 무언가 경제안보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정보의 ‘보호’를 목적으로 한다. ‘보호’한다는 것은 통상 ‘비밀’로 한다는 것이며 정부는 이를 빌미로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정부에 의한 정보의 독점은 민주주의 원리와는 상충하며 정부의 실패나 부정을 은폐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여야 다수의 찬성으로 위 법률을 통과시켰다. 왜일까?
그 이유를 논하기 전에 이 법률의 내용을 먼저 살펴보자. 첫째, 이 법률은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지정하도록 한다. 중요경제안보정보란 중요경제기반(예: 중요한 인프라, 물자의 공급망)에 관한 정보로서 공개되지 않은 것 중, 그 유출로 인해 국가의 안전보장에 지장이 초래될 우려가 있어서 특별히 비밀로 할 필요가 있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사이버 공격이나 사이버 대책에 관한 정보, 공급망 상 취약한 부분(choke point)에 관한 정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지정의 유효기간은 5년이고 연장이 가능하며 최대 30년을 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둘째,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취급할 수 있는 취급자의 범위를 제한하는 ‘적성평가제도’(Security Clearance)를 도입한다. 중요경제안보정보의 취급 업무는 적성평가에서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유출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된 자만으로 제한하도록 한다. 행정기관의 장은 평가대상 본인의 동의를 얻고 정보 유출의 우려가 없는지 적성평가를 실시한다. 조사 내용은 중요경제기반 훼손활동과의 관계, 범죄 및 징계 경력, 정보 취급에 관한 비위 경력, 약물남용, 정신질환, 음주, 신용상태 및 기타 경제적 상황 등 다양하다. 조사내용이 상당히 사적인 영역에까지 파고들 우려가 엿보인다. 적성평가 대상자는 행정기관 이외에 민간사업자도 포함된다. 중요경제기반 취약성 해소에 기여하고 경제안전보장에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민간사업자는 ‘적합사업자’가 되며 행정기관은 적합사업자와의 계약을 통해 중요경제안보정보의 공유가 가능하다. 이때 적합사업자의 직원으로서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취급할 수 있는 자는 상기 적성평가를 통과한 자여야 한다.
셋째, 중요경제안보정보는 적성평가를 통과한 취급자 간에 원활히 공유될 수 있도록 한다. 행정기관의 장은 타 행정기관이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 중요경제안보정보를 타 행정기관에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없다고 인정한 때 국회와 법원에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적합사업자의 경우 민간사업자라 하더라도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한다. 이처럼 취급자의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동시에 적성평가를 통과한 취급자 간에는 정보가 원활하게 유통될 수 있도록 하여 효율성을 높이도록 하였다.
일본에는 이미 기밀정보를 규제하는 법률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특정비밀보호법’과 ‘부정경쟁방지법’이다. 특정비밀보호법은 외교, 국방 등 4개 분야에 한정되어 있으며 위반 시 벌칙이 훨씬 강력하다. 중요경제안보정보보호법은 특정비밀보호법을 경제안보분야로 확대한 법률이라고 볼 수 있다. 부정경쟁방지법은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법률이며 이 법률을 통해서도 경제안보상 민감한 정보의 유출을 규제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중요경제안보정보보호법을 새롭게 제정한 데에는 미국에 대해 일본이 이렇게 열심히 정보관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이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즉 자국의 중요 정보가 타국에 흘러갔을 때 타국이 이를 잘 지켜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국가 신용도의 문제이다. 특히 첨단과학기술분야에서의 국제협력에서 이 문제는 더욱 첨예해진다. 미국은 중국과 과학기술 분야에서 사활을 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타국과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와 협력할 수는 없다. 믿을 수 있는 국가, 기관, 연구자가 필요하다. 이 신용은 무엇으로 확보되는가? 오랜 교류의 역사, 경험, 인적 네트워크 등 다양한 요소가 있다. 여기에 중요한 정보를 유출하지 않을 것이라고 국가가 보증하는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추가한다면 어떨까? 일본은 특정비밀보호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과 같은 기존의 법률을 통해 이를 보증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상대방이 이를 얼마나 신뢰할지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새롭게 법을 만들어서 이러한 보증 시스템을 도입하면 될 일이다. 이러한 배경이 있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추론한다.
다만 이 제도의 도입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이 따른다. 첫째는 정부의 자의적 운용 가능성이다. 자기 멋대로 중요경제안보정보를 지정하고 또 자기 멋대로 적격사업자를 지정하며 그 사업자 직원 중 자의적으로 정보 취급자를 선정할 수 없도록 점검하고 견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정부가 특정 사업자에게 이익과 손해를 끼칠 수 있는 자의성을 가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정부가 특정 직원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회사에서 인사상 손해를 끼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현재 제도는 이러한 우려가 불식되지 않고 있다. 구체적인 운용 규칙의 도입과 시행이 필요한 이유이다. 둘째는 중국과의 관계이다. 이 제도가 엄연히 미국과의 안보협력의 일환으로 도입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대중관계에 민감한 국가에서는 중국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 될 수도 있다. 일본은 어차피 안보상 미국과 일심동체를 이루는 전략이기 때문에 이 제도의 도입에서 중국 요인은 그리 크게 고려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입장이 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 이 제도는 수단이다. 중요 정보를 철저히 보호하기 위한 장치이며 수단이다. 중국을 배제하는 수단이 아니라 중국과의 협력을 촉진하는 장치로서 활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히토쓰바시대학(一橋大學) 경제학연구과 경제학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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