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지금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그리고 일본은 가짜뉴스나 음모론에 의해 민주주의가 위기에 놓여 있는 것 같다. 또한 SNS를 포함해 다양한 매체에서 쏟아지는 무분별한 정보는 때로 폭력과 차별을 야기해 누군가의 존재 자체를 위협하기도 한다.
지난해부터 일본에서는 사이토 모토히코(斎藤元彦) 효고(兵庫)현 지사가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이토 지사에 대한 고발 문서가 그 발단이었는데, 부하 직원들에 대한 갑질과 거래처와 얽힌 비리 문제를 고발하는 문서가 현청의 한 직원에 의해 작성되어 여러 곳에 배포된 것이다. 그런데 사건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 본래 '공익 통보자'로서 보호받아야 할 해당 직원이 사이토 지사의 지시에 의해 신원이 밝혀져 처분을 받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언론 인터뷰에서 사이토 지사는 '공무원으로서 있을 수 없는 행위' 등 표현을 쓰며 해당 직원을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궁지에 몰린 직원은 죽음을 택하고 말았다.
언론은 연일 이 사건을 다루었고, 효고현 의회는 사이토 지사에 대한 불신임안을 가결했다. 이에 사이토 지사는 자진 사직하고 지사 선거를 다시 실시하여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현의회의 조사 결과 사이토 지사의 갑질 행위가 일부 사실로 확인되었고, 공익 통보자를 궁지로 몰았던 사이토 지사의 대처에도 분명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토 지사는 재선거에서 승리해 지사직에 복귀했다. 사이토 지사의 재당선이라는 결과를 두고 언론에서는 SNS의 영향을 지적한다. 그가 지사직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여러 의혹은 “모두 거짓말”이며 “사이토는 언론과 현의회에 의해 함정에 빠진 것”이라는 가짜뉴스가 유튜브를 중심으로 퍼진 것이다. 그의 지지자 중에는 “기존 언론(legacy media)은 믿을 수 없다. 유튜브에서 진실이 이야기되고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사이토를 기득권에 맞서는 용사처럼 보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효고현 지사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유튜브 채널이 다치바나 다카시(立花孝志)라는 정치인의 것이었다는 것도 화제가 되었다.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한국 사회가 최근 비상계엄 사태에서 겪어온 것과 같이 '가짜뉴스 시대' 'SNS 시대'라고 불리는 현대사회에 등장한 새로운 문제이다. 누군가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다른 이들에게는 그것이야말로 '진실'일 경우가 있고, 자신에게는 '진실'이어도 타인에게는 '거짓말'일 수도 있는 시대인 것이다. 그런데 명백한 거짓말이고 반드시 규탄받아야 할 가짜뉴스가 있다. 열광적인 주목을 받는 것도 아니고 직접적인 공격을 가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사회를 붕괴시키는 가짜뉴스가 바로 차별의 폭력이다. 어느 사회에나 존재하지만 인류가 부단한 노력으로 몰아내야 하는 것이 차별이다. 이 차별이 SNS 등을 통해 확산돼 실제적인 폭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지금 사이타마(埼玉)현의 한 지역이 위태롭다. 차별 발언 등 눈길을 끄는 행동과 얼굴을 하얗게 칠한 조커의 모습으로 유명해진 가와이 유스케(河合悠祐)가 지난 1월 사이타마현 도다(戸田)시 시의원 선거에서 득표수 1위로 당선됐다. 지난해 도쿄도 지사 선거에도 출마해 거의 알몸의 여성 사진을 선거 벽보에 붙이는 등 일각에서 '조커 의원'으로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이었던 그는 이번 선거에서는 조커 분장은 하지 않고 외국인 배척만을 호소해 득표수 1위로 당선되었다.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서 '불법 이민자 모두 강제송환' '일본 퍼스트(최우선주의)' 등을 주장한 그는 일본에 사는 쿠르드족(Kurd)들의 봄 축제 '네우로즈(Newroz)'에 방해하러 방문했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어떤 쿠르드족 시민은 “그들이 우리 사진을 찍으려는 게 마치 총을 겨누는 것처럼 공포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했다(한겨레 2025.2.18). 일부 차별주의자(racist)들은 쿠르드족의 모습을 무단으로 촬영한 동영상이나 사진을 '불법체류자' '범죄자' 등 근거 없는 설명을 붙여 SNS 등 온라인상에 올린다. 영향을 받은 이들이 '쿠르드족을 내쫓아라' '왜 쿠르드족에게 세금을 쓰는가'라고 항의를 하며 동사무소에 전화를 거는 일도 발생했다. 심지어 어린이들까지 차별의 '표적'이 된다. 쇼핑하는 쿠르드족 어린이 사진에 '물건을 훔치고 있다'는 거짓 정보를 붙여 SNS로 확산시키기도 한다.
'혐오발언(hate speech)'으로 불리는 차별 행동은 재일코리안을 향한 일본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차별 문제로 과거 한국 언론에서도 많이 보도하였다. 차별에 맞서 열심히 투쟁해온 당사자와 시민들의 노력 끝에 2016년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이 제정된 것은 일본에서 획기적인 일이었으나, 해소법은 벌칙 규정을 갖추지 않아서 실효성이 제한적이다. 또한 일본 정부는 식민지 지배의 연장선상에서 광복 이후에도 거의 일관되게 한반도 출신자들의 민족교육을 탄압해왔다. 현재 고교 무상화 제도에서 다른 외국인 학교와 달리 조선학교를 배제하는 것도 분명한 차별 정책이고, 유엔에서 시정 권고를 받았음에도 게을리 대응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차별을 공인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정부나 언론과 함께 정치인들의 발언도 큰 영향력을 갖는다. 야당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玉木雄一郎) 대표가 방송에 출연해 국민건강보험제도의 재원 부족 문제를 논의하면서 마치 외국인들이 제도를 악용하기 때문에 의료보험 재정이 압박되고 있는 것처럼 발언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도 통계도 전혀 존재하지 않고, 외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의료보험제도하에서 보험료를 지불하고 보험의 적용을 받는 것이지 '외국인'을 끌어들여 논의하거나 설명할 필요는 전혀 없는 주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뜻 보면 발생할 법한 일'처럼 들리는, 사람들의 잠재적 차별의식을 자극하고 배외주의 선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안이한 발언은 매우 위험하다. 관련 시민단체의 지적을 받고서도 다마키는 자신의 발언과 주장을 정정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는데, 이는 무책임한 자세다.
포퓰리즘을 이용한 정치인의 발언 중 왕왕 외국인의 존재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타당성 있게 보이려는 언설이 나온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부 유튜버, 자칭 종교인을 비롯해 선정적인 주장이나 발언으로 여론에 호소하려는 사람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추세이기도 하다. 수적으로도 소수자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 입지도 약한 마이너리티(minority)인 외국인들은 부당하게 비난하더라도 발언자에게 비난이나 피해가 돌아올 가능성이 낮은, 그야말로 때리기 쉬운 대상인 것이다. 이는 비열한 차별이자 배외주의이다.
트럼프가 다시 대통령이 된 미국에서도 잠재적인 차별의식 조장이 우려된다. 지난 1월 말 미국 내에서 벌어진 항공기 사고 직후 그 원인을 '다양성 중시 때문'이라고 간주하는 듯한 주장을 한 트럼프 대통령에게 많은 사람이 경악했다. 지난 바이든 행정부를 비판하기 위한 발언에 불과했는지는 몰라도 외국인뿐만 아니라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차별을 조장할 우려가 있는 발언이었다. 한국에서도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헌재 심판이 계속되는 현시점에 일각에서 혐중 감정을 선동하는 듯한 움직임이 보여 매우 우려스럽다.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면서 동시에 외국인 차별을 선동한다면 그것은 모순이고 자기분열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최근 일본에서도 우려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올여름에 있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 비례대표 후보에 차별주의자로 알려져 있는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전 국회의원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스기타는 2016년 유엔 회의에 참가했을 때 '치마저고리나 아이누의 민족 의상 코스프레 아줌마까지 등장' '같은 공기를 마시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진다' 등 한반도 출신자들이나 일본의 소수 민족인 아이누를 조롱하는 기사를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그 기사는 일본 법무부 등이 '인권 침해'로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은 “이미 끝난 문제”라고 강변하며 반성이나 입장의 변화가 있는 것 같지 않다.
스기타는 원래 유엔 등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부정하는 활동을 해온 극우 정치인으로,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눈에 들어 국회의원이 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인종차별 발언뿐만 아니라 한 월간지에 동성 커플에 대해 “‘생산성’이 없다” 등 '우생사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내용을 기고해 해당 월간지가 많은 비판을 받고 휴간하게 된 사건도 있었다. 또한 평소에도 성범죄 등과 관련해 “여성은 얼마든지 거짓말을 한다” 등 성폭력 피해자나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을 온라인상에 올리기도 했다.
아베 전 총리 사망 이후 비자금 문제로 지난 중의원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못했던 그가 다시 여당 후보자로 국회에 돌아오려는 것이다. 원래 선거구 선출 의원이 아니라 비례구 선출 의원이며 자민당 내 극우세력 지지에 의해 국회 자리를 얻게 된 인물이지만 여당 자민당이 그런 스기타를 다시 불러들이려고 한다. 그의 발언으로 인해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나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인을 비롯해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사람들의 말은 때로 폭력을 조장하기도 하고, 그 자체가 폭력이 되기도 한다. 동시에 차별과 폭력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규범을 제시할 수 있는 것도, 그런 규범을 사회가 견지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정치인을 비롯한 책임 있는 자들의 말이기도 하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 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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