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사진=AFP·연합뉴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중재로 흑해에서의 휴전과 에너지 인프라 공격 중단에 전격 합의했다. 다만 우크라이나는 부분 휴전안의 즉시 발효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합의 전제 조건으로 대(對)러 제재 해제를 내걸어 실제 휴전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미 백악관은 25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지난 23일부터 이날까지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와 각각 나눈 고위급 실무 회담 결과를 발표했다. 백악관은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우크라이나는 흑해에서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고 무력 사용을 배제하며 군사 목적으로 상업 선박을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전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도 같은 내용의 성명을 냈다. 러시아 크렘린궁은 “흑해 협정 이행을 보장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역시 X(옛 트위터)를 통해 “모든 당사국은 흑해에서의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고 무력 사용을 배제하며 상선이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자는 데 동의했다”고 알렸다.
또 백악관은 미·러 양국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에 대한 상호 공격을 30일간 중단하기로 한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근 합의를 이행하기 위한 조치를 마련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에 크렘린궁과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같은 입장을 내놨다. 크렘린궁은 추가로 발표한 성명에서 공격을 유예하는 시설에는 정유공장, 석유 저장 시설, 석유·가스관 시설, 발전소와 변전소 등 전력 생산·송전 시설, 원자력 발전소와 수력발전소 등이 포함된다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 기간이 지난 18일부터 30일간으로 합의됐으며, 추가 합의로 기간이 연장될 수 있지만 한쪽이 공격 중단을 위반하면 다른 쪽은 합의를 철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백악관과 크렘린궁은 에너지 및 해양 분야에서의 이 같은 합의 이행을 도울 제3국의 중재를 환영한다고 밝혔고, 우크라이나 국방부도 동일한 입장을 냈다.
미국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모두 큰 틀에서 유사한 입장을 발표했지만 합의 발효 시점을 두고는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부분 휴전은 즉시 발효되는 것”이라며 “러시아가 합의를 어기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무기와 제재를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발효 시기를 두고 러시아가 이견을 드러낸 점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크렘린궁은 “러시아산 농산물·비료 수출을 가로막은 각종 제약이 풀려야 합의가 이행될 것”이라며 ‘제재 해제’를 전제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러시아 국영 농업은행(로셀호스)과 러시아 선적 선박, 러시아 식품 생산·수출업자 등에 대한 제재가 해제되고 식품·비료 관련 금융기관이 국제 결제 시스템에 다시 연결돼야만 합의 결과를 이행할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2022년 2월 전쟁이 발발한 이래 서방은 러시아의 농산물 자체를 제재하지 않았지만 결제시스템 차단 등 금융 제재를 통해 실질적인 거래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러시아는 흑해 휴전 발효를 조건으로 농업 관련 금융 제재 해제를 요구했고, 미국이 이에 협력하기로 하면서 합의가 성사됐다.
백악관은 “러시아의 농업(농산물) 및 비료 수출을 위한 세계 시장 접근을 복원하고, 해상 보험 비용을 낮추며, 이러한 거래를 위한 항구 및 결제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흑해 휴전합의로 미·유럽 잠재적 대립 예고”
이와 관련해 유럽에서는 반발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전쟁 이후 지속해 온 대러 제재 효과가 약화될 수 있어서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리는 이것이 제재의 약화라고 생각한다”며 불만을 표시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합의로 미국과 유럽 동맹국 간의 잠재적인 대립이 예고된다”며 “해당 제재 중 일부는 유럽 국가들이 부과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러시아가 이번 합의를 지렛대로 삼아 추가적인 제재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컬럼비아 대학 선임 연구원이자 전 미국 제재 담당 고위 관료인 에드워드 피시먼은 WSJ에 “푸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해 러시아 은행과 에너지 기업에 대한 제재를 해제하도록 유도함으로써 외화 확보를 시도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어 그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는 입장 차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러시아 측 발표는 제재 해제와 관련해 미국 발표보다 훨씬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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