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 그랜드볼룸에서 '트럼프 2기(Second Presidency of Trump) 글로벌 분극화 시대, 금융의 위기와 기회'라는 주제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금융포럼(2025 APFF)'에서 모리스 옵스펠드 UC버클리대 교수와 김진일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가 대담을 하고 있다.[사진=AJP 한준구 기자]
모리스 옵스펠드 UC버클리대 경제학 교수는 한국 경제가 생존을 넘어 성장하기 위해선 근본적 구조개혁을 위한 중장기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재의 저출산 현상과 임금 불평등, 가계부채 문제로는 격동하는 세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
옵스펠드 교수는 26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5 아시아·태평양 금융포럼(APFF)'에서 "불평등은 한국의 가장 큰 문제이며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요인"이라며 "한국 경제를 회복시키고 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인구는 약 5200만명을 정점으로, 이후 빠르게 감소하고 사회는 빠르게 고령화 되고 있다"며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로 인한 노동력 감소와 경제 성장 둔화는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4년 기준 0.75명으로, 전년(0.72명) 대비 소폭 개선됐으나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국은행은 현 수준의 출산율이 지속되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2040년대 후반에는 0%대까지 하락하고 2050년대 이후에는 역성장을 피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저출산을 해결하기 위해선 주택 가격 상승과 이와 맞물린 가계 부채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고 봤다. 그는 "서울과 주요 대도시에서의 높은 부동산 가격, 급증하는 가계 부채가 사회적 긴장뿐 아니라 지역 간 경제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며 "주택 가격이 소폭 안정화 됐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고, 이는 젊은 층이 가정을 꾸리는데 큰 장벽으로 작용해 한국의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하면서 한국의 인구 통계와 관련한 논문을 작성했던 경험도 공유했다. 그는 "한국 정부는 육아 인프라 개선을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하고 있는데, 이는 노동력 참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며 "이제 막 가족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더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옵스펠드 교수는 기조강연 이후 이어진 김진일 고려대 교수와의 대담에서도 한국의 가계부채 문제를 언급했다. 김 교수가 한국 가계부채와 관련해 우려되는 점을 묻자 옵스펠드 교수는 "가계빚이 너무 많으면 국가 경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주택담보대출 급증 이후 부동산 가격이 하락해 경제가 타격을 받은 경험이 있다"며 "주택가격 상승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증가를 특히 경계해야 한다"고 답했다.
단순히 규모뿐 아니라 가계부채의 분포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드러냈다. 빚이 저소득 가구에 집중되면 전체 가계부채 규모가 똑같더라도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가계부채를 적절한 수준으로 조절하기 위해 정책금리를 결정하는 게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중립금리를 찾기 위한 계산이 절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중립금리란 물가상승 또는 하락 압력이 없이 잠재성장률 수준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이론적인 금리 수준이다. 옵스펠드 교수는 "궁극적으로 각 중앙은행은 각종 데이터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지 아닐지 등을 충분히 검토해 정책금리를 적절히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전후로 격화한 통상전쟁과 미국의 강달러 현상에 대한 논의도 이어졌다. 앞서 지난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관세 등 통상 정책이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면서 달러 강세 현상이 심화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10년물 미국 국채 거래량이 감소하면서 달러 가치도 다소 안정을 찾아가는 모양새다.
옵스펠드 교수는 "달러 가치는 지난 1월 13일 정점을 찍은 이후 내림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는 시장에서 미국 경제에 대해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 물가상승)이 발생할 것이란 우려가 커져 10년물 미국 국채 거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강달러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무역적자에서 기인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관세가 미국의 무역적자를 부분적으로 완화할 수는 있겠지만 전체 무역적자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봤다. 옵스펠드 교수는 미국 무역수지에 영향을 미칠 결정적인 요인으로 '미국의 경기침체'를 꼽았다. 경기침체가 미국 내 지출 감소로 이어진 후에야 무역적자가 완화될 것이란 시각이다.
옵스펠드 교수와 김 교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을 중심으로 한 지정학적인 위기에 대한 대화도 나눴다. 옵스펠드 교수는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량을 줄였지만, 여전히 무역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과거 소련과는 다르게 중국은 미국과 여전히 긴밀하게 연결돼 있어 미·중 갈등이 여러 측면에서 냉전 시대보다 더 불안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이 국내 경제와 국제 안보 측면의 도전으로부터 생존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관세 정책 변화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대비하는 한편, 다자간 협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내용도 강조됐다.
옵스펠드 교수는 "한국은 현재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에 속해 있지만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이 결성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인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을 고려해야 한다"며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을 적극 활용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하고 무역 갈등의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아세안+3 국가들과의 협력으로 경제적 충격을 완화해야 한다"며 "한국과 유럽연합(EU) 사이 상당한 무역 교류가 있는 만큼 EU는 한국에게 매우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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