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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의 중동워치] 중동의 포성 …키루스의 유산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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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입력 2025-03-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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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전의 물꼬를 트고 있는 상황과는 달리 중동에서는 참혹한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저항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더욱 거세진 공격으로 속수무책이고, 무차별 폭격과 구호품 반입 금지로 가자 여성들과 아이들의 고통이 극에 달했다는 3월 13일 공개된 유엔조사위원회 보고서는 우리의 말문을 닫게 한다. 한동안 휴전이 지속되는가 싶더니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재개되면서 하루에도 몇십명씩 무고한 민간인이 또다시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바샤르 아사드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새 정권이 들어선 시리아에서도 주변국들의 이권 다툼이 본격화 되면서 민생을 위한 민주적 정권의 출현은 요원해 보인다. 혼란을 틈타 이스라엘은 시리아 남부를 점령하였고, 러시아도 군사기지를 계속 존속시키기 위해 이스라엘의 침략 행위에 눈감고 있는 상황이다. 이웃 튀르키예와 이탈리아도 벌써부터 시리아 전후복구 사업에 참여하기 위한 협력을 논의 중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자마자 미국은 노골적인 친이스라엘 행보로 전환하면서, ‘악의 축’의 핵심으로 지목해 온 이란의 확장력 차단과 내부 궤멸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국제사회의 일관된 요구와 종전협정을 주도해 온 주변 아랍 국가들의 중재를 무위로 돌리고 전쟁 지속을 선택한 이스라엘의 일방적인 공격의 이면에는 이란이라는 강력한 위협 세력이 꺾이면서 생겨난 힘의 공백 때문이다. 이란이 지금까지 공동 방어축으로 지원과 협력을 아끼지 않았던 레바논의 헤즈볼라, 시리아 아사드 정권, 이라크 친이란 민병대, 팔레스타인 하마스, 예멘 후티 반군 등과의 연결고리가 차단되고, 이들 세력이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최대의 압박 공격을 당하면서 이란의 입지가 완전히 고립되고 말았다. 이제 자연히 다음 순서는 팔다리가 꺾인 이란 차례일 것이다. 이스라엘과 미국의 이란에 대한 직접적인 군사공격 시나리오는 현재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낮지만, 이란 신정정권을 압박하는 유효한 위협수단으로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할 것이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삼각관계의 결정 변수는 역시 핵 프로그램 파기 문제다. 어떤 경우에도 이란 핵시설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강경한 입장에 이란이 쓸 수 있는 카드는 많지 않다. 지난 3월 15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서는 이란이 60% 농축 우라늄을 274.8㎏ 보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아직까지는 사찰에 충실히 임하고 있지만, 핵무기로의 전환 가능성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란은 일관되게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 기준을 지키고 있으며, 국제사회가 합의한 핵협정인 포괄적공동행동계획(JCPOA)을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미국의 가혹한 경제제재를 푼다면 핵 문제는 유연하게 협상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와서 이란 압박을 더욱 강화하면서 선 핵프로그램 파기, 후 경제제재 카드를 굽히지 않으면서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져 있다. 이란이 끝까지 거부하면 이스라엘을 통한 군사공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인 전망이기는 하지만, 지난 40년간 경제제재를 버텨온 이란의 맷집도 만만치 않아 아무리 국내여건이 힘들어도 이란의 일방적인 항복으로 이어지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이럴 경우 미국은 45년 이상 집권해온 이란의 신정정권을 끝내고 새로운 정권 창출을 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시아파 성직자가 주도하는 특이한 정치체제를 유지시켜 준 든든한 자양분이 바로 적대적 공생 관계를 유지하면서 국익 극대화를 꾀했던 미국 자신이라는 점을 상기한다면 이 또한 실현 가능성이 낮은 시나리오다. 복잡한 국제정치의 역학관계를 통한 해법이 난관에 봉착할 때면 인류 역사로부터 교훈과 혜안을 얻는 방법은 물론 전쟁과 폭력이 아닌 평화를 위해 자신을 던지는 영웅들을 떠올리곤 한다. 인문학적 평화 해법이다.
 
세계적인 지휘자인 이스라엘의 다니엘 바렌보임은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여러 국가의 무슬림 음악가들과 함께 평화의 오케스트라를 결성했다. 1999년 중동 평화를 염원하며 창단한 ‘웨스트-이스턴 디반 오케스트라’는 유대인인 바렌보임과 팔레스타인 출신 문명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가 주역이다. 지금도 단원의 40%는 이스라엘, 40%는 아랍, 20%는 유럽 음악인이다. 이처럼 바렌보임은 폭력의 악순환이 멈추지 않는 중동 지역에서 음악을 통해서 공존을 모색하는 실천적 음악가로 존경을 받았다. 그는 2005년 팔레스타인 서안 지구의 수도 라말라에서 콘서트를 열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처참한 폐허가 된 가자지구의 고고학 박물관에서 2011년 5월 '가자를 위한 관현악단' 이라는 공연을 개최했다.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베를린 필과 베를린 국립관현악단, 빈 필, 파리 오케스트라, 라 스칼라 오페라 관현악단의 단원들이 모두 모여 감동의 올스타 공연을 한 것이다. 이스라엘 국민으로 팔레스타인 명예 시민권을 가진 이 위대한 평화 지휘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화해와 공존을 주창하면서 이스라엘 평화운동가들과 함께 팔레스타인을 위한 평화 시위를 벌이고 정착촌 건설에 반대하는 용기있는 행보를 계속해 왔다. 이스라엘 국회에 의해 한때 기피 인물로 규정당하는 불이익을 받았지만 바렌보임은 굴하지 않았고, 결국 그의 평화주의는 2004년 이스라엘 국회가 수여하는 예술계의 노벨상인 울프상을 수상하면서 이스라엘 내부의 존경까지도 이끌어냈다. 2016년 이 오케스트라는 유엔 평화 대사로 지명됐다.
 
또 다른 예는 이스라엘 영화감독 에란 리클리스다. 그의 작품은 주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다루며, 인간적인 시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으로 유명한데, ‘레몬트리’ ‘시리아 신부’ ‘댄싱 아랍’ 같은 영화가 대표적이다. 영화를 통해 리클리스 감독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나 두 민족 간의 갈등이나 사랑을 예술적으로 풀어냄으로써 평화와 공존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레몬트리’는 이스라엘 국방장관의 집과 팔레스타인 여성의 레몬 밭을 둘러싼 갈등을 통해,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정치적 상황에 어떻게 영향을 받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복잡성과 그로 인한 고통을 현실적으로 묘사한다. 일찍 남편을 잃고, 아이들도 모두 집을 떠난 상황에서 한 팔레스타인 여인에게 가해지는 이스라엘의 강제와 폭력을 고발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이웃으로 함께 살아야 할 절박한 가치를 호소한다. 무엇보다 에란 리클리스 감독의 영화들은 단순히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인간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갈등 해결을 위한 대화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강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공존을 약속했던 ‘오슬로 평화협정’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면서 이스라엘의 양심으로 불렸던 작가 아모스 오즈도 빼놓을 수 없다. 대문호로서 그의 문학적 업적은 페미나상, 런던 윙게이트상, 토리노 국제도서전상, 괴테 문화상, 프랑스 드뇌르 훈장, 이스라엘 문화상 등을 수상하였고, 2018년 작고 직전인 2016년에는 박경리 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아모스 오즈는 두 국가 공존을 위해 헌신했으며, 서안지구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에도 강하게 반대했다. 나아가 팔레스타인 지도자들과도 교분을 유지하며 핍박받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고통을 함께 했던 진정한 평화주의자였다. 오즈는 이스라엘의 대표적인 평화 운동 시민단체로 348명의 이스라엘 예비역 군인들이 창립한 '피스 나우(Peace Now)'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스라엘의 폭력성에 비판을 가하면서 팔레스타인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활동에 앞장섰다.
 
한편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화해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이스라엘과 이란의 평화와 공존을 위해서는 이란 아케메네스 페르시아 제국의 창건자 키루스(기원전 559~530) 대왕을 소환하면 어떨까. 미국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나 이스라엘 초대 총리 다비드 벤구리온이 가장 존경했던 인물은 다름 아닌 키루스 대왕이었다. 세 대륙에 걸쳐 28개의 군소국가들을 거느린 진정한 의미의 세계 최초의 대제국을 건설한 키루스의 통치 기본은 종교적 관용과 종족적 융합이었다. 피정복 민족들을 페르시아인들과 동등하게 대우했으며 엘람어, 바빌론어, 페르시아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여 모든 공문서를 세 언어로 작성하게 했다. 제국 내 소통의 원활함을 위해 수백명의 전문 통역사를 체계적으로 양성하였다. 승자의 언어와 종교를 타민족에게 강요하지 않았던 키루스의 통치는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리더십이었다.
 
그런 자유 정신은 결국 인류 최초의 인권선언문 공표로 이어졌다. 흔히 ‘키루스의 원통’이라 불리는 인권선언문에는 놀랍게도 노예제도 폐지와 노동자의 임금 지급, 여성인권의 신장 같은 혁명적인 조항이 들어있다. 원본은 대영박물관에, 그 사본은 유엔본부에 걸려있다. 키루스 특유의 관용 통치는 바빌론 유수에서 최고의 빛을 발했다. 바빌론 왕 네부카드네자르에게 포로로 잡혀 혹독한 노예생활을 하고 있던 유대인을 해방시켜 예루살렘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밀린 월급을 지불하고 귀환 길의 안전을 확보해 주었으며, 그리하여 신성한 예루살렘 성전을 짓도록 허락했다. 그리스 역사학자 크세노폰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란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복속민들에게도 ‘Father(아버지)’였고 ‘빼앗는 자가 아닌 베푸는 자’로 칭송받고 기억되었다. 영국 역사학자 찰스 프리먼조차도 키루스는 업적과 인품 모든 면에서 알렉산드로스를 훨씬 능가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평가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 초기 지도자들이 존경했고, 유대인들을 고통에서 해방시켜준 페르시아의 키루스 왕의 후예들인 이란인들이 이스라엘에 손을 내밀고, 역사적 은인인 이란인에게 감사를 표하는 이스라엘을 고대하는 것은 다만 환상일까.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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