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준 강원대 문화인류학과교수]
불가사의한 '바다 울타리'
인도네시아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지만 현지 뉴스를 접하다 보면 놀라운 내용을 자주 마주하게 된다. 신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 발표를 불과 세 시간 앞두고 신태용 감독에게 경질 사실을 통보했다는 뉴스는 황당함을 느끼게 한다. 우리의 설과 같은 명절에 해당하는 금식월이 끝난 후 이루어지는 대규모 귀향을 앞두고 양방향 고속도로를 일방통행으로 전환하겠다는 경찰청의 발표는 ‘신박'하다. 25만명에 달하는 신규 공무원 임용일을 갑작스레 반년 이상 미루면서 그 이유로 신정부 출범 이전에 임용일이 정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사실에서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외부인의 눈에 특이하게 비친다고 해서 현지인에게도 그러한 것은 아니다. 이전의 사례와 다소 차이를 보일 뿐이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도네시아 사람에게도 낯설고 황당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올해 초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은 사건이 그 예이다. 기존의 틀로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인해 이 사건을 설명하면서 ‘기묘한’이라는 표현이 자주 사용되었다.
이 불가사의한 사건은 올해 초 자카르타와 인접한 탕그랑(Tangerang)에서 벌어졌다. 이 지역 해안가에서 수백 m 떨어진 바다에 대나무를 엮어 만든 말뚝 형태의 구조물이 세워진 사실이 알려진 것이다. 일부 말뚝 위에는 나무판이 깔려 있어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기까지 했다. 이후 ‘바다 울타리’로 불리게 된 이 구조물은 길이가 무려 30㎞에 달할 정도로 거대했지만 누가 어떤 목적으로 설치했는지 불분명했다. 장기간에 걸쳐 울타리가 건설되었고 누구나 쉽게 식별할 수 있었지만 그 존재가 외부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 또한 기묘함을 배가했다.
바다 울타리의 존재가 공개되고 미디어의 관심이 집중되자 그 정체가 조금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2024년 중반 작업이 시작된 후 그 규모가 꾸준히 확장했으며, 인근 해안가 주민이 건설 작업을 맡아 수행했다. 그들에게 임금을 지급하고 건설비를 제공한 인물은 지역의 면장이었다. 면장을 포함한 관계자들은 이 구조물이 해안 침식을 막기 위한 것이며 설치 비용은 자발적 모금으로 충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약 150억 루피아(약 13억원)에 달하는 건설비를 주민이 모았다는 주장이나 대나무 울타리로 침식을 막으려 했다는 설명 모두 설득력이 떨어졌다. 이후 해양수산부와 경찰의 조사, 그리고 언론 보도를 통해 사건의 실체가 드러났다.
바다에 건축권이 허가된 배경을 두고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 지역이 2024년 국가전략사업으로 지정되어 대규모 개발이 확정된 해안과 인접해 있으며, 해당 사업을 맡은 기업 역시 아궁 스다유 그룹이라는 사실이 주목받게 되었다.
이러한 정황을 종합하면, 개발 예정지 인근 지역을 선점하기 위해 아궁 스다유 그룹이 면장을 회유하여 허위 건축권을 발급받고, 바다에 울타리를 만들어 그 구역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려 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해진다. 확정된 개발 사업이 완료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므로 장기간 설치되어 있게 될 이 구조물을 그 구역에 대한 관습권의 근거로 활용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깔려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이런 해석이 설득력이 있었기에 이 사건은 초대형 부패 스캔들로 규정될 수 있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짐에 따라 정부가 개입했다. 해양수산부와 국토부는 허위 건축권 발급을 확인한 후 이를 곧바로 취소했으며, 경찰은 면장을 비롯한 관련 인물을 체포했다. 구조물 해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프라보워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군을 동원해 울타리를 철거하도록 명령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전개되자 관심은 자연스레 배후 세력으로 옮겨갔다.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아궁 스다유 그룹이 사건의 중심에 있음이 분명했다.
배후를 밝혀야 한다는 요구가 거세지던 중 사건의 향방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사건이 발생했다. 대통령이 주재한 경제인 간담회에 아궁 스다유 그룹의 총수가 초대되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의 등장은 대통령이 더 이상의 논란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이후 사건 처리 과정도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진행되었다. 해양수산부는 면장의 배후를 밝힐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조사를 종결했고, 경찰 역시 면장과 면사무소 직원 몇 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했다. 언론 또한 이러한 기류에 맞추어 관련 보도를 점차 줄여나가서 3월이 되자 바다 울타리에 관한 기사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초대형 스캔들은 점차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바다 울타리 사건의 전개 과정은 인도네시아 사회의 부패 양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바다를 대상으로 허위 건축권을 획득하여 30㎞에 달하는 구조물을 설치하고도 그 책임을 말단 공무원의 일탈로 축소할 수 있음은 정치권력과의 유착이 지닌 엄청난 위력을 실감하게 했다.
부패는 인도네시아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고질적인 문제이다. 독일의 민간단체인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를 통해서도 이러한 현실이 드러난다. 전 세계 180여 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도네시아는 높은 청렴도 순으로 100위권에 머물러 매우 부패한 국가로 분류되었다. 부패에서 벗어났다고 보기 어려운 우리나라조차 30위권에 자리 잡고 있음을 감안하면 인도네시아의 부패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지 가늠할 수 있다.
일상에서 부정부패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상황은 그것이 사회에 만연했음을 실감하도록 한다. 관공서에서 서류를 발급받거나 민원을 신청할 때, 거리에서 경찰을 마주칠 때 많은 인도네시아 사람은 자연스럽게 ‘급행료’를 떠올릴 것이다. 취업 과정 역시 예외가 아니다. 공무원이나 경찰, 민간업체를 불문하고 취업을 위해서는 추가적 비용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많은 현지인이 공감할 것이다. 2020년 국제부패척도(GCB) 조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응답자의 30%가 지난 1년간 공무원에게 뇌물을 건넨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이는 부패가 권력층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의 전반에서 ‘윤활유’처럼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의 부패를 논할 때 주목해야 할 측면은 민주화가 본격화된 2000년대 초 부패방지위원회(KPK)가 설립되어 다수의 정치인과 고위공직자를 처벌했다는 점이다. 위원회의 활동이 활성화될수록 권력자들의 위기감은 커졌고 이들은 위원회를 약화시키기 위한 시도를 지속했다. 결국 2019년에는 위원회의 지위가 독립기관에서 정부 산하기관으로 전환되었고, 위원회를 감시할 외부 감독기구가 설치되었으며, 위원회 활동을 제한하는 규정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압력에 굴하지 않은 위원회는 조코위 정부에서만 7명의 장관을 부패 혐의로 처벌할 수 있었다.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위원회 활동이 사회 전반의 부패 수준을 낮추는 데 기여했는지는 의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위원회의 성공적 활동이 오히려 긍정적이지 못한 결과를 초래한 측면이 있다. 부패 척결에 있어 위원회가 중심 기관으로 자리 잡게 되자 다른 사법 기관이 이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게 되었고, 위원회가 감당할 범위를 넘어선 부패 사건이 방치되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위원회의 수사 대상이 고위공직자와 정치인에게 집중되면서 중하위 공직자 사이에서는 운이 매우 나쁘지 않는 한 적발되지 않으리라는 인식이 유지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위원회의 활약은 부패에 대한 경각심을 공직사회 전반에 확산시키는 데 한계를 지녔다.
부패가 사라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뇌물이 가져오는 효과 때문이다. 뇌물을 통해 민원을 더 빠르고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음을 일반인이 인지함으로써 부패의 일상화에 일조하게 된다. 나 역시 그런 경우가 있었다. 비자 연장을 위해 필요한 서류를 모두 준비하지 못한 상황에서 소정의 비용을 추가하자 열 개가 넘는 서류가 두 개로 줄어드는 신비로운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한 번의 사례이지만 이러한 편리함을 경험한 내가 뇌물을 효과적 일처리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여기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대다수의 부패 공직자가 처벌받지 않는 현실, 그리고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 신속한 일처리가 가능하다는 인식은 뇌물이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수용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다 울타리 사건이 발생하게 되었다. 이 사건이 공론화되었다는 점에서 기존 관행과 차별적인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해결 과정에서는 다시 익숙한 패턴이 반복되었다. 면장이 뚜렷한 이유 없이 서류를 위조하고 거액을 들여 울타리를 설치했다는 식으로 사건이 축소되었으며 추가 폭로가 없다면 면장이 모든 책임을 지는 선에서 마무리될 개연성이 크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궁 스다유 그룹은 예정된 개발 사업을 그대로 진행하게 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인류학과(학사·석사 수료) ▷호주국립대학(박사) ▷강원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전 강원대 사회과학원 원장 ▷전 한국동남아학회 회장 ▷인도네시아 팟자드자란 대학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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