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영섭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AI(인공지능)가 세상의 모든 것을 바꾸고 있다. 우리 생활부터 산업, 경제, 사회, 국방, 안보 등 국가 전체의 미래를 송두리째 바꿀 전망이다. 기본적으로 우리 개개인부터 기업 등 모든 조직, 국가의 미래는 각각의 AI 역량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AI 기술혁신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총체적으로 이루어져 우리 실정에 맞는 현명한 국가 AI 전략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한 달이 멀다하고 신기술이 쏟아지며 AI 패권전쟁이 가속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3월 17~21일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5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GTC 2025는 엔비디아의 GPU(그래픽처리장치) 기술의 미래 방향을 제시하는 기술전시회이다. GPU가 핵심 AI 반도체로 부상하면서 CES(소비자전자쇼) 못지않게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올해 GTC 2025는 현장 2만5000여 명, 온라인 30만명이 참가하여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마이크론, 우리나라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LG전자 등이 참가하여 AI의 미래에 대한 각사의 방향을 제시했다.
GTC 2025에서도 단연 엔비디아 CEO 젠슨 황의 장장 두 시간에 걸친 기조연설이 하이라이트였다. 연초 CES 2025에서도 대형 컨벤션홀을 가득 메운 현장 관중 1만2000명과 온라인 관중 수십만 명을 상대로 인상적인 기조연설을 했던 젠슨 황은 딥시크 쇼크 이후 횡보를 거듭하며 탄력이 떨어진 주가를 의식한 듯 엔비디아가 미래 AI 분야를 석권하겠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다. CES 2025에서 AI 발전 단계를 인식 AI, 생성 AI, 에이전트 AI, 물리적 AI 등 네 단계로 나누고 현재 인식 AI 및 생성 AI에서의 압도적 주도권의 여세를 몰아 에이전트 AI와 물리적 AI도 석권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한 바 있다. 에이전트 AI란 마케팅, 설계, 구매, 생산 등 임무에 대해 스스로 의사 결정 및 집행을 할 수 있는 자율적 AI다. 물리적 AI란 로봇이나 자율주행차처럼 센서 및 액추에이터를 통해 실제 물리적 세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며 상호작용하는 지능형 시스템을 말한다. GTC 2025에서도 이 계획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하며 그 일환으로 올해 블랙웰, 블랙웰 울트라, 내년 루빈, 2027년 루빈 울트라, 2028년 파인만까지 GPU 기반 AI 반도체의 4년 로드맵을 한번에 발표하는 강수를 두었고 엔비디아는 반도체 칩 제조사가 아니라 모든 산업분야의 발전을 이끄는 AI 인프라 기업임을 선언하였다. CES 2025 연설이 AI 생태계 천하통일의 야심으로 해석된 데 따른 반작용 등을 고려하여 협력을 통한 동반 발전을 강조하고 딥시크 사태로 가속된 오픈소스 추세도 반영하는 등 이전 대비 내용적으로 진일보한 기조연설이었다.
미국과 중국의 사활을 건 AI 패권전쟁과 물량 공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살 길은 무엇인가? GPU 기반 AI 반도체 및 개발 생태계 등 AI 인프라의 지배력을 넘어 AI의 전 단계 석권을 통한 천하통일을 도모하는 엔비디아의 꿈이 이루어지면 대한민국에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엄청난 투자로 AI 모델 및 플랫폼을 지배하고 있는 오픈AI, 구글, 메타 등 대규모 언어모델(LLM) 기반의 초거대 AI 기업들이 파상공세를 전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생존할 수 있나? 이러한 많은 질문에 대해 우리 산학연관의 전문가들은 해답을 찾아야 한다. 그것도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하루빨리 찾아야 산다.
AI 및 AI 대전환(AX)의 세계적 동향과 우리의 강약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산업별 특화 에이전트 AI와 초저전력 AI 반도체 기반 물리적 AI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성공 가능성이 높은 전략으로 사료된다. 이 두 분야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면 대한민국이 AI 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는 승산이 높다.
먼저 급성장하고 있는 에이전트 AI 분야에서는 LLM 중심의 미국 및 중국 기업들과의 전면전을 피하고 버티컬 AI라 불리는 SLM(소형언어모델) 기반의 산업별·업종별 특화 AI로 차별화하는 전략이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보인다. 이순신 장군이 압도적 다수의 왜군을 맞이하여 넓은 대양이 아니라 좁은 울둘목에서 싸웠던 것과 같은 이치다. 산업별 특화 버티컬 AI는 AI 원천기술보다 해당 분야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승산이 있는 것이다. 최근 에이전트 AI 확산에 필수적인 MCP(Model Context Protocol) 등 개방형 프로토콜 표준화가 큰 진전을 보이며 AI 기술보다 데이터가 승부의 관건이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도메인 노하우를 포함하는 데이터 생태계 구축이 더욱 중요해지면서 최우선 순위의 국가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데이터 생태계란 데이터의 생성, 수집, 가공, 분석, 폐기 등을 망라하는 전 주기 생태계를 의미한다. 이는 데이터의 구조화 및 체계화와 함께 표준화가 중요하여 개별 기업 단위로는 불가능하고 정부와 민간이 함께 추진해야 가능하다. 그렇다고 무조건 데이터만 모으는 것보다 AI 활용의 대상이자 목적인 활용 사례(Use Case)를 민관 공동으로 발굴하여 이에 필요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방향이 효과적이다.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 측면에서 우리나라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제조업 분야에 대한 데이터 생태계 구축에 성공하면 세계를 주도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이 피나는 경쟁을 하고 있는 전략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로봇, 우주항공, 바이오 등 첨단 제조업의 AI 대전환(AX)에서 주도권을 갖게 되거나 주도자의 일원이 되면 대한민국의 글로벌 경쟁력과 지정학적 지위는 매우 공고해질 것이다. 이 전략에서도 글로벌 협력이 매우 중요하다. 유사한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독일과 협력하는 것도 훌륭한 전략으로 강력히 추천한다.
데이터 생태계 구축 및 선도와 함께 데이터 주권 확보 차원에서 국내 AI 클라우드 기업 육성도 중요하다. 우리의 소중한 산업 데이터를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에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네이버, LG, KT 등 국내 AI 클라우드 기업들은 국내는 물론 글로벌 산업 AX 시장 진출도 기대할 수 있다. AI 주권 확보를 위한 소위 소버린 AI 전략은 무모한 AI 원천 기술 및 기본모델 경쟁보다 데이터와 클라우드 중심으로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현명한 전략이다. 이 전략에서는 AI 인프라 기업을 추구하는 엔비디아와의 이해상충은 크지 않아 파트너로 함께 협력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물리적 AI 전략은 로봇, 자동차, 드론 등 첨단 제조업과 직결되는 물리적 시스템에 적용되기 때문에 우리 산업 전략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 정교한 필승 전략이 요구된다. 올해 1월 CES와 3월 GTC에서 제시한 엔비디아의 물리적 AI 전략은 기존 생태계와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나 결국 이 생태계의 지배자를 추구하고 있어 우리와 중대한 이해상충이 존재한다. 물리적 AI 시장이 현 GPU 시장처럼 사실상 엔비디아 독점 체제가 되는 것은 우리는 물론 엔비디아 외에 어느 누구에게도 이롭지 않다. 어떠한 경우에도 독점에 따른 종속을 회피할 수 있는 경쟁 체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PC 운영체제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에 대한 애플의 맥OS, 스마트폰 운영체제에서 애플의 IOS에 대한 안드로이드가 좋은 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만의 강점을 만들어야 함은 물론이다. 물리적 AI는 클라우드 중심의 에이전트 AI에 비해 전력 소모에 훨씬 더 민감하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로봇이 전력 소모가 많아 자주 충전해야 한다면 성능이 아무리 우수해도 상품성이 없어 시장을 주도할 수 없다. 엔비디아의 GPU는 구조적으로 전력 소모가 많아 물리적 AI 생태계를 지배하는 데 결정적 약점이 있다. 즉, 우리나라가 엔비디아 대비 초저전력 AI 반도체를 개발한다면 기존의 첨단 제조업 역량과 결합하여 물리적 AI 생태계를 주도할 수 있다. GPU 대비 우수한 저전력 특성을 보이고 있는 NPU(신경망 처리장치) 등 새로운 AI 반도체 기술 개발에 국력을 집중해야 한다. 리벨리온, 퓨리오사AI 등 국내 AI 반도체 기업들은 초저전력 NPU 개발 전략에 있어 이미 엔비디아 GPU가 선점하여 진입이 어려운 AI 데이터센터 시장보다 국가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물리적 AI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시장 진입 및 지배가 더 용이해 보인다. 이 전략도 이해관계가 유사한 기업 및 국가와의 글로벌 협력이 중요한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번 GTC 2025에서 나타난 엔비디아, AMD, TSMC, 폭스콘의 타이완팀에 대한 대응하기 위해서는 한편으로는 협력하되 다른 한편으로는 코리아팀을 넘어서는 글로벌팀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지레 겁먹어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강점을 살리는 전략을 찾으면 미·중 AI 패권전쟁에서도 우리의 살 길을 찾을 수 있다. 파이팅, 대한민국!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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