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재혁 칼럼니스트]
정치가 블랙홀처럼 모든 걸 빨아들이는 시국이다 보니 고사성어를 통해 세상을 읽는 지혜를 찾고자 하는 본고도 정치적 이슈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글감을 고르기가 수월치 않다. 인간이 본디 정치적 동물인지라 정치와 무관한 세상사가 얼마나 있겠냐만. 나라 돌아가는 형편이 여전히 한겨울이니 봄도 더디 오는 것 같다. 3월 중순에 폭설이 내리는가 하면 4월을 코앞에 두고도 봄을 시샘하는 추위가 겨울 못지않다. 허나 봄을 이기는 겨울이 있으랴. 막바지 꽃샘추위가 곧 물러가면 이제 꽃들의 계절. 지금은 양지바른 곳에서나 수줍은 듯 핀 꽃들이 경쟁하듯 앞다퉈 화사한 자태를 뽐내기 시작할 터, 모처럼 꽃과 관련된 성어를 재료로 삼았다.
며칠 뒤면 청명(清明)이다.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는 청명은 24절기 중 다섯번째 절기로, 한식과 날짜가 겹치거나 하루 차이다. 그래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말이 생겼다. 우리는 청명을 그냥저냥 보내지만 중국인들에게 청명절은 4대 명절 중의 하나다. 여기 꽃피는 청명절에 우연히 만난 여인을 연모하였으나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어 아름다운 시 한 수를 남긴 사내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당나라 때 이야기다. 허베이성에 사는 최호(崔護)라는 젊은이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수도 장안에 왔다. 때는 바야흐로 청명절.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장안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남쪽 마을 어딘가 복사꽃이 만발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갈증이 나 집 대문을 두드리니 복사꽃처럼 어여쁜 낭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물 한잔 줄 수 있겠냐는 최호에게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기를 권한 후 정성스레 물 한 대접을 가져다 주었다. 낭자를 마음에 새겨 두고 있던 최호는 이듬해 청명절에 다시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복사꽃은 예전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있건만 집 대문은 굳게 잠겼고 낭자의 행적은 묘연하였다. 최호는 안타까운 마음을 시 한 수에 담아 집 대문 한쪽에 적어 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지난해 오늘 이 집 대문 안에서 그대 얼굴 복사꽃처럼 붉었네. 그대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알 길 없지만 복사꽃은 그때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구나."
훗날 영남절도사를 지내는 최호가 젊은 시절 첫눈에 반하여 마음에 두고 있던 낭자를 다시 볼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쓴 '제도성남장(題都城南莊, 도성 남쪽집에 쓰다)'이란 시다. 이 시에서 '인면도화(人面桃花)'라는 성어가 유래하였다. '인면도화'는 '복사꽃처럼 어여쁜 여인의 모습'을 형용하다가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 경우' 또는 '경치는 예전과 같지만 그 경치를 함께 하던 연인은 곁에 없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최호의 사연은 세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최호가 복사꽃 만발한 집 낭자를 연모한 건 짝사랑에 불과할지 모른다. 다시 만나지 못해 애를 태운 것 역시 일방적인 가슴앓이일 수도 있다. 자신을 연모하는 최호의 마음을 그 낭자가 몰랐을 가능성이 더 크니 서로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픔에 비할 바 못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6ㆍ25 때 헤어진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다. 휴전선에 가로막혀 서로 만나지 못한 채 70여 년 세월이 흐른 이산가족 문제는 20세기 냉전 체제가 낳은 현대사 최대의 비극이다. 비단 그들뿐인가. 60년대 이후 강제로 납북되어 가족, 친지와 생이별한 어부와 여객기 승무원들도 있다. 남북 분단에 북한 정권의 잔혹성이 더해져 빚어진 이산의 아픔은 비단 한민족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사도 모른 채 북한에 두고 온 남편을 기다리는 한 루마니아 할머니의 사연이 기막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북한은 전쟁고아 오천 명을 동구권 다섯 나라로 '위탁교육' 보냈다. 20대의 북한 청년 조정호는 인솔교사의 신분으로 아이들과 함께 루마니아로 왔다. 북한 아이들이 생활하고 배우는 부쿠레슈티 외곽 기숙학교에 루마니아 여성 제오르제타 미르초유가 미술 교사로 부임하며 조정호와 만나게 되었다. 두 젊은 남녀는 사랑에 빠졌고 1957년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가혹했다.
김일성을 권좌에서 축출하려 한 '8월 종파 사건'으로 권력 투쟁이 표면화되고 헝가리에서 반소 봉기가 일어나는 등 체제가 불안정해지자 1956년부터 북한은 전쟁고아들을 송환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자유의 맛을 본 아이들로 인해 변혁의 바람이 불까봐 우려한 것이다. 송환된 아이들은 북한 전역 각지로 분산 배치되었다. 조정호도 마침내 1962년 소환 명령을 받았다. 남편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가 홀로 루마니아로 돌아온 미르초유는 그후 두번 다시 남편을 만날 수 없었다. 행복했던 결혼생활 5년의 대가는 컸다. 편지 왕래도 이내 끊겼고 기약없는 기다림의 세월은 6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살아 있다면 백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을 조정호와 제오르제타 미르초유. 두 사람의 사연은 이승만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의 또 다른 작품 '김일성의 아이들'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보수 논객 조갑제는 이 영화를 "다큐로 만든 '닥터 지바고'"라고 평했다.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진 후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한 지바고와 라라, 그 슬픈 사랑의 현실판이 조정호와 미르초유의 사랑이다.
중국인들은 최호와 복사꽃 만발한 집 낭자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워 별도의 버전을 따로 만들었다. 문에 적힌 시를 보고 상사병에 빠져 사경을 헤매던 낭자가 그 집을 다시 찾은 최호와 재회하여 기사회생하고 결혼한다는 내용이니 헤피엔딩이다. 먼 훗날 조정호와 미르초유의 이야기에도 해피엔딩 버전이 생겨날지 모르겠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야 한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세상, 아니 만나지 못하게 하는 세상을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며칠 뒤면 청명(清明)이다. 춘분과 곡우 사이에 있는 청명은 24절기 중 다섯번째 절기로, 한식과 날짜가 겹치거나 하루 차이다. 그래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말이 생겼다. 우리는 청명을 그냥저냥 보내지만 중국인들에게 청명절은 4대 명절 중의 하나다. 여기 꽃피는 청명절에 우연히 만난 여인을 연모하였으나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어 아름다운 시 한 수를 남긴 사내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당나라 때 이야기다. 허베이성에 사는 최호(崔護)라는 젊은이가 과거시험을 보기 위해 수도 장안에 왔다. 때는 바야흐로 청명절.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장안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남쪽 마을 어딘가 복사꽃이 만발한 집이 눈에 들어왔다. 마침 갈증이 나 집 대문을 두드리니 복사꽃처럼 어여쁜 낭자가 문을 열고 나왔다. 물 한잔 줄 수 있겠냐는 최호에게 마당에 있는 의자에 앉기를 권한 후 정성스레 물 한 대접을 가져다 주었다. 낭자를 마음에 새겨 두고 있던 최호는 이듬해 청명절에 다시 그 집을 찾아갔다. 그러나 복사꽃은 예전처럼 흐드러지게 피어 있건만 집 대문은 굳게 잠겼고 낭자의 행적은 묘연하였다. 최호는 안타까운 마음을 시 한 수에 담아 집 대문 한쪽에 적어 놓고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렸다.
去年今日此門中, 人面桃花相映紅
人面不知何處去, 桃花依舊笑春風
"지난해 오늘 이 집 대문 안에서 그대 얼굴 복사꽃처럼 붉었네. 그대 얼굴은 어디로 갔는지 알 길 없지만 복사꽃은 그때처럼 봄바람에 웃고 있구나."
훗날 영남절도사를 지내는 최호가 젊은 시절 첫눈에 반하여 마음에 두고 있던 낭자를 다시 볼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쓴 '제도성남장(題都城南莊, 도성 남쪽집에 쓰다)'이란 시다. 이 시에서 '인면도화(人面桃花)'라는 성어가 유래하였다. '인면도화'는 '복사꽃처럼 어여쁜 여인의 모습'을 형용하다가 나중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 경우' 또는 '경치는 예전과 같지만 그 경치를 함께 하던 연인은 곁에 없는 경우'를 비유하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
최호의 사연은 세인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만 최호가 복사꽃 만발한 집 낭자를 연모한 건 짝사랑에 불과할지 모른다. 다시 만나지 못해 애를 태운 것 역시 일방적인 가슴앓이일 수도 있다. 자신을 연모하는 최호의 마음을 그 낭자가 몰랐을 가능성이 더 크니 서로의 마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슬픔에 비할 바 못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6ㆍ25 때 헤어진 남과 북의 이산가족들이다. 휴전선에 가로막혀 서로 만나지 못한 채 70여 년 세월이 흐른 이산가족 문제는 20세기 냉전 체제가 낳은 현대사 최대의 비극이다. 비단 그들뿐인가. 60년대 이후 강제로 납북되어 가족, 친지와 생이별한 어부와 여객기 승무원들도 있다. 남북 분단에 북한 정권의 잔혹성이 더해져 빚어진 이산의 아픔은 비단 한민족에 국한되지 않는다. 생사도 모른 채 북한에 두고 온 남편을 기다리는 한 루마니아 할머니의 사연이 기막히다.
한국전쟁이 끝나자 북한은 전쟁고아 오천 명을 동구권 다섯 나라로 '위탁교육' 보냈다. 20대의 북한 청년 조정호는 인솔교사의 신분으로 아이들과 함께 루마니아로 왔다. 북한 아이들이 생활하고 배우는 부쿠레슈티 외곽 기숙학교에 루마니아 여성 제오르제타 미르초유가 미술 교사로 부임하며 조정호와 만나게 되었다. 두 젊은 남녀는 사랑에 빠졌고 1957년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가혹했다.
김일성을 권좌에서 축출하려 한 '8월 종파 사건'으로 권력 투쟁이 표면화되고 헝가리에서 반소 봉기가 일어나는 등 체제가 불안정해지자 1956년부터 북한은 전쟁고아들을 송환하기 시작했다. 유럽에서 자유의 맛을 본 아이들로 인해 변혁의 바람이 불까봐 우려한 것이다. 송환된 아이들은 북한 전역 각지로 분산 배치되었다. 조정호도 마침내 1962년 소환 명령을 받았다. 남편과 함께 북한으로 갔다가 홀로 루마니아로 돌아온 미르초유는 그후 두번 다시 남편을 만날 수 없었다. 행복했던 결혼생활 5년의 대가는 컸다. 편지 왕래도 이내 끊겼고 기약없는 기다림의 세월은 6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살아 있다면 백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됐을 조정호와 제오르제타 미르초유. 두 사람의 사연은 이승만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을 만든 김덕영 감독의 또 다른 작품 '김일성의 아이들'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보수 논객 조갑제는 이 영화를 "다큐로 만든 '닥터 지바고'"라고 평했다. 러시아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진 후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한 지바고와 라라, 그 슬픈 사랑의 현실판이 조정호와 미르초유의 사랑이다.
중국인들은 최호와 복사꽃 만발한 집 낭자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못내 안타까워 별도의 버전을 따로 만들었다. 문에 적힌 시를 보고 상사병에 빠져 사경을 헤매던 낭자가 그 집을 다시 찾은 최호와 재회하여 기사회생하고 결혼한다는 내용이니 헤피엔딩이다. 먼 훗날 조정호와 미르초유의 이야기에도 해피엔딩 버전이 생겨날지 모르겠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야 한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세상, 아니 만나지 못하게 하는 세상을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유재혁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사회학과 졸업 △제일기획 근무(1985~2008) △'한국산문' 등단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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