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종 칼럼] 美 ' 문화 전쟁' …남 이야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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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입력 2025-04-0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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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美미
디즈니의 클래식 만화영화 백설공주를 보고 자란 사람이라면 최근 개봉한 실사 영화가 다소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원작의 백설공주는 하얀 피부를 가진 서구 여성으로 묘사되었지만 실사판에서는 구릿빛 피부의 라틴계 배우 레이첼 지글러가 주인공을 맡았다. 또한 공주는 더 이상 왕자의 구원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악당 여왕과 정면으로 맞서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는 강인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이유로 이 영화는 지금 미국 사회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일부는 인종적 다양성을 강조하고 성 고정관념을 깨는 긍정적인 변화라고 평가하는 반면 다른 이들은 원작에서 너무 벗어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지나치게 집착한 결과라고 비판한다.
이 논란은 미국 내 심화하는 문화적 양극화를 보여준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진보적 행보는 이러한 갈등을 더욱 부추긴다.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강조하는 트럼프는 다양성(diversity), 형평성(equity), 포용성(inclusion), 즉 DEI를 촉진하는 이른바 ‘각성 문화(wokeness)’에 맞서며 문화 전쟁을 주도해왔다. 그는 취임 이후 진보적 정책을 되돌리는 여러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대표적으로, 여성 스포츠에서 트랜스젠더 여성의 출전을 금지하겠다고 위협했으며, 미국 헌법이 보장하는 ‘출생 시민권’을 폐지하고 불법 이민자의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하지 않겠다는 방안을 추진했다.
트럼프의 이러한 조치는 미국 내 정치적 올바름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는 보수층의 공감을 얻고 있다. 예를 들어 백설공주에서 왕자가 공주에게 한 입맞춤이 공주의 동의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성추행’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많은 사람들은 이를 지나친 해석이라 여긴다. 또한 여성 스포츠에 출전하는 트랜스젠더 선수들이 신체적 우위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공정성 논란을 초래한다. 이와 더불어 일부 여성들은 출산 직전에 미국으로 입국해 자녀에게 시민권을 부여받는, 이른바 ‘출산 관광(birth tourism)’을 활용하고, 이후 자녀를 통해 가족 이민을 추진하는 부작용도 있다.
그러나 트럼프의 정책은 미국의 근본적인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미국은 이민자들에 의해 건설된 나라이며, 초기 영국 이주민들 또한 당시 기준으로 보면 ‘불법 이민자’였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인종적·문화적 다양성이 국가의 성장과 번영을 이끌어왔다고 믿으며, 트럼프의 배타적 이민 정책이 미국의 역동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이민자들의 대규모 추방 정책은 농업과 건설업 등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하는 산업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문화 전쟁은 비단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가 발전하면 다문화화가 불가피해지고, 이에 따른 내부 갈등이 발생한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미국이나 유럽에 비하면 여전히 인종적으로 동질적인 사회이지만 외국인 노동자와 국제 결혼 증가로 인해 점차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저출산과 인구 감소가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더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한국 내 외국인 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 전체 인구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4.9%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2021년 3.8%에서 빠르게 증가했다. 올해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정한 다문화 사회 기준인 5%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며, 2040년대 초반에는 7%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 5년 동안 한국 전체 인구는 약 50만명(1%) 감소했으며, 이민자 유입이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경상북도 영양군은 이러한 인구 감소 문제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이 지역에서는 신생아가 매년 약 25명 태어나는 반면 사망자는 300명에 달한다. 그 결과 지난 20년 동안 인구가 25% 감소해 현재 1만5000명 수준으로, 전국 군(郡) 단위 지역 중 가장 낮은 인구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영양군 당국은 최근 미얀마 난민 40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한국이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면서 사회적 갈등도 커지고 있다. 대구에서는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주민 반발이 극심해 반대 시위에서 돼지고기 바비큐 파티를 열고 돼지 머리를 전시하는 등 종교적으로 심한 모욕을 하기도 했다. 또한 국제결혼을 한 외국인 여성들은 언어와 문화 차이로 인해 가정 내 갈등을 겪으며 높은 이혼율을 보이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직장에서 차별과 열악한 노동 환경을 겪는 경우가 많다.
한국 사회의 문화적 갈등은 인종과 이민 문제를 넘어 젠더, 세대, 지역, 종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심화되고 있다. 특히 20·30대 젊은 여성들은 진보적인 민주당을 지지하는 반면 젊은 남성들은 보수적인 국민의힘을 선호하며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또한 진보 성향이 강한 전라도와 보수 성향이 강한 경상도 간 지역 갈등은 여전히 크다. 종교적으로도 기독교 신자들이 비기독교인보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이며, 이로 인한 갈등도 존재한다.
여러 측면에서 한국은 미국과 점점 닮아가고 있다. 정치적·이념적 대립이 문화적 분열을 더욱 심화시키는 양상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을 둘러싼 최근 시위에서도 이러한 분열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반(反)탄핵 세력은 기독교인, 젊은 남성, 경상도 출신이 중심을 이루었으며, 탄핵 찬성층은 그 반대의 인구 집단을 대표했다.
이미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 속에서 내부 갈등까지 심화한다면 한국 사회의 통합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앞으로 한국이 변화하는 정체성을 어떻게 조정하고 통합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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