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관리 방안으로 추가 대책 발표가 아닌 금융권의 자율 규제를 택했다. 규제를 위한 규제보다는 금융사의 관리계획 준수를 유도하고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현재 일 단위로 금융권 가계대출 수치를 모니터링하고, 주 단위로 주요 은행 실무자 회의를 소집하는 등 가계대출을 타이트하게 관리하고 있다. 은행권 자율 규제를 전면에 내세워 가계대출 증가세를 꼼꼼히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이에 당국의 눈치를 살피는 은행권은 신규 대출 및 승인 추이 등을 지역별·월별로 촘촘히 관리하는 한편 다주택자·갭투자자에 대한 가계대출을 다시 조이고 있다. 금리 인하기에 접어든 만큼 인위적인 가산금리 인상 대신 다주택자의 신규 주택담보대출 제한, 갭투자 방지를 위한 조건부 전세자금대출 제한 등을 강화하고 필요한 경우엔 추가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도 정했다.
2금융권도 속속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삼성생명, 교보생명, KB손해보험에 이어 삼성화재도 이날부터 서울 유주택자 주담대 취급을 제한하기로 했다. 현대해상은 유주택자 주담대 종료를 검토 중이며, 한화생명은 다주택자 주담대에 가산금리를 적용했다. 상호금융도 대출 영업은 올스톱이다. 한 상호금융 관계자는 "일주일마다 당국에서 점검 전화가 온다"며 "연초부터 현재까지 대출 증가율이 1% 남짓인데 사실상 대출을 막고 있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은행권부터 대출 비중이 크지 않은 2금융권까지 장벽을 높이는 건 당국이 변수가 많은 규제보다 금융권 대출 조절을 통해 가계부채를 관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기 때문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6일 기자간담회에서 "대출이 많이 늘어나면 가능한 모든 조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상황에 맞는 조치를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당국이 언제든 추가 조치를 취할 카드는 갖고 있지만 현재의 가계대출이 관리 가능한 수준이고 침체된 지방 부동산 시장 악화를 막기 위한 조치라는 분석이다.
대출 규제 등 정책적 제한이 본격화되면 지방의 부동산뿐 아니라 건설경기 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초 정부는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맞춰 점진적인 대출 완화 등으로 건설경기를 회복시키고 내수부양을 끌어올릴 계획이었지만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제) 해제 이후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정부가 하반기 달력만 바라보고 있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금융당국은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을 7월으로 못 박고 예고된 일정대로 진행할 계획인데 강화된 DSR이 시행되면 대출 총액이 줄어들어 자연스럽게 서울 부동산이 안정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다만 시장에서는 3단계 시행 이후에도 정교한 추가 정책이 없으면 가계대출과 지방 부동산 시장을 동시에 잡을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금융당국은 현재 수도권과 지방의 DSR 차등 적용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어서 DSR이 일괄 강화되면 지방의 부동산 시장은 더 침체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지난해 2단계 DSR 도입을 한시 유예하면서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줬던 사례가 있어 이번만큼은 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면서도 "금리 인하가 DSR 규제를 상쇄하고 고정금리 대출 등으로 규제를 우회할 수 있어 은행의 자율 규제와 3단계 DSR에만 기댄 미봉책으로는 언제든 가계빚이 튀어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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