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대항해 시대를 맞아 스페인이 대서양 진출에 정신이 팔린 새 무슬림 해적들이 타리파 섬을 다시 빼앗았다. 이곳을 근거지 삼아 지브롤터 해협을 오가는 무역선을 상대로 통행세 상납을 강요하며 위세를 떨쳤다. 타리파에서 내야 하는 통행세. 관세(Tariff)의 유래다.
"관세는 사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라고 되뇌며 '관세맨(Tariff man)'을 자칭하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어이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 부과 버튼을 눌렀다. 숫자가 무시무시하다. 베트남과 중국에 매긴 관세율은 각각 46%와 34%다. 대만은 32%, 인도는 26%다. 우리나라는 일본보다 1%포인트 높은 '25%'짜리 청구서를 받아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해적질에 나섰다. 각국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우리나라만 해도 지난해 기준 대미 수입품에 붙는 평균 관세율이 0.79%에 불과한데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미국에 50%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무관세 교역이 이뤄지고 있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수치에 온갖 비관세 장벽 이슈까지 다 털어 넣어 '50%'라는 가공의 숫자를 도출해 냈다.
상호관세의 경우 오는 5일부터 10% 관세율이 우선 적용되고 9일부터는 15%포인트 오른 25%가 부과된다. 남은 일주일이 관세율 하향 조정을 위한 골든 타임이다. 미국산 석유와 가스를 더 사든지, 쇠고기·쌀 등 농식품에 대한 수입 장벽을 낮춰 주든지 어떻게든 수를 내야 한다.
성공을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톱다운 방식의 협상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할 카운터 파트가 부재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정부가 제대로 된 정보를 듣고 있는지 의심할 만한 정황이 수두룩하다. 미국이 물 수밖에 없는 미끼를 던지는 '핀셋 전략'이 시급한데 정부 대책 회의는 공전을 거듭하는 중이다.
중세 시대 무역으로 먹고살던 베네치아는 아드리아해에 출몰하는 슬라브계 해적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갈취와 약탈의 수위가 생존을 걱정할 정도였다. 다년간의 고생 끝에 베네치아가 가닿은 해적 퇴치법은 최대한 많은 슬라브족을 선원으로 고용해 해적질을 원천 봉쇄하고 그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사 줘 생계를 돕는 것이었다. 돈이 많이 드는 상생 방안이다.
관세 전쟁에 대미 수출은 물론 글로벌 교역량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가뜩이나 부진한 법인세 수입은 추가로 쪼그라들고 재정 여력이 부족한 정부는 내수 침체 대응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미국인을 더 채용하고, 미국산 제품을 더 구매하는 부담은 오롯이 우리 기업들에 전가될 게 뻔하다. 전임 바이든 행정부 때 워낙 많은 투자를 해 곳간 사정이 여의치 않지만 미국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트럼프의 해적질을 막을 방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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