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율 명지대 교수]

[2025 대한민국 새판 짜기 2] ②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부터 윤석열 전 대통령은 민간인 신분으로 돌아갔다. 민간인이 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파면 선고 약 두 시간 반 후, 변호인단을 통해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에서 윤 전 대통령은 "많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면서 "사랑하는 대한민국과 국민 여러분을 위해 늘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성명에서 아쉬운 점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대한 명확한 승복 의사가 언급되지 않았고, 대한민국 모든 국민이 아닌,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한 국민들에게 감사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다는 점이다. 한때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대통령이라면, 자신을 지지했든 지지하지 않았든, 모든 국민을 향해 퇴임사를 전했어야 했다. 물러나는 순간까지 국민을 갈라치는 방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은 정치적·사회적 분열 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또한, 승복 의사를 분명히 밝히지 않은 점은 대한민국의 제도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 이는 한때 국가를 이끌었던 대통령으로서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다. 게다가 전광훈 목사는 '국민 저항권'을 언급하며 매우 위험한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불안정한 현재 정국을 더욱 우려스럽게 만들고 있는데, 이런 와중에 전직 대통령이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는 것은, 강성 지지층을 더욱 흥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이른바 탄핵 찬성파 의원들에 대한 조치를 요구하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보도가 있다. 이러한 국민의힘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혼란과 당혹감을 줄 수밖에 없다. 국민의힘은 분명한 공당(公黨)이며, 2025년 4월 4일 오전 11시 22분 이전까지는 여당이었다. 그런 정당이라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불만스럽더라도, 제도에 대한 신뢰를 우선시해야 한다. 하지만, 비공개 의총이었음을 감안하더라도, 마치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으로 탄핵 찬성파 의원에 대해 '조치'를 논의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공당의 모습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정말 궁금한 점은, 과연 국민의힘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 정치적 운명을 함께하기로 결심했느냐는 것이다. 국민의힘에는 108명에 달하는 국회의원들이 있으며, 이들은 일반 국민보다 권력의 속성을 더 잘 아는 사람들일 것일 텐데, 일부의 행동을 보면 권력의 속성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속성은 그 '잔상(殘像)'이 오래가지 않는다는 데 있다. 즉, 권력을 잃는 순간 평범한 존재로 전락한다는 뜻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현재로선 윤 전 대통령의 지지층이 매우 견고해 보일 수 있지만, 이런 지지층의 결속력도 오래 지속되기는 어렵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을 강력히 추종하던 '문파' 역시 우리 정치와 사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나, 지금은 이재명 대표의 강성 팬덤이 그 자리를 대체한 것을 봐도, 권력은 한순간에 사라져 영향력도 없어짐을 알 수 있다. 결국 권력을 잃게 되면, 강성 지지층도 소수로 밀려나게 된다는 말이다.
국민의힘은 이제 대선 준비에 돌입해야 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4월 4일부터 제21대 대선 예비후보 등록을 받는다고 발표했다. 따라서 국민의힘은 늦어도 3주 이내에는 대선후보를 선출해야 할 것이다. 대선후보가 정해지면, 당은 그 후보를 중심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다. 물론, 윤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 당원 다수가 대선 승리를 최우선 과제로 삼는다면,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윤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는 묻힐 가능성이 크다. 당원들 다수가 전략적으로 판단한다면, 윤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은 자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당원들이 전략적 선택을 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실제로 2021년 6월, 국민의힘 당원들은 최연소 당대표를 선출함으로써 전략적 결단을 보여준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당원들의 절박감이, 이준석 대표 선출로 표현된 것이라는 말이다. 이번에도 당원들이 유사한 절박함을 느낀다면, 윤 전 대통령과의 단절을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의 정치 환경은 과거 박 전 대통령 탄핵 당시보다 상대적으로 나은 편이다. 국민의힘 당원들이 '이번에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면, 윤 전 대통령과의 결별은 더욱 필요해진다. 상대적으로 지금의 정치 환경이 덜 열악하다고 말하는 이유는, 박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인 2017년 3월 4주 차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23%, 더불어민주당은 42%의 지지율을 각각 기록했던 반면, 2025년 4월 4일 발표된 여론조사(한국갤럽, 4월 1~3일, 전국 18세 이상 1001명 대상, 전화 면접 조사,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나타난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힘 지지율은 35%, 더불어민주당은 41%였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당시 정당 지지율은 당시 자유한국당이 민주당의 반 토막 정도였지만, 지금은 박빙이어서 국민의힘이 충분히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2017년 3월 4주 차 당시 대선후보 지지율을 보면,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6%에 불과했지만, 대선 결과는 완전히 달랐다는 점도 이들에게 희망을 가지게 할 수 있다. 19대 대선에서 문재인·심상정 후보의 득표율 합은, 중도·보수 진영 후보들의 득표율 합보다 적었다. 이런 사례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국민의힘 당원들이 이번에도 '전략적 선택'을 할 여지는 충분하다. 만약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을 계속 감싸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곧 윤 전 대통령의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한 소수 정당으로 전락하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
국민의힘이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려면, 진정한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금 성찰해야 한다. 윤 전 대통령은 보수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보수의 적통을 감옥에 보낸 인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를 말하면서 동시에 윤 전 대통령을 옹호하려 한다면, 그 논리적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먼저 설명해야 한다. 대선은 중도층의 선택을 받아야 승리할 수 있는 선거라는 점을 국민의힘은 잊지 말아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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