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재우 경희대학교 교수]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부터 한국(25%)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 적용하는 상호관세율을 앞으로 90일간 10%로 낮춰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대신 미국의 관세 정책에 반기를 든 중국에 대한 관세율은 125%로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75개 이상의 나라들이 상무부와 미국 무역대표부에 무역과 무역장벽, 관세 통화문제, 비관세 장벽 등을 논의하자고 요청해왔다"고 밝혔다. 우리 정부는 고위급 차원에서 미국 정부와 관세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패키지’ 딜을 통한 해법을 제안 중이다. 최선의 해법을 찾기 이전에 우리가 우선시할 사안은 우리의 국익이다. 트럼프의 고관세 정책에서 우리의 국익 소재를 파악하고, 이를 수호할 효과적인 방법을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 우리 국익의 소재 파악을 위해 트럼프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에 근간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한 본질 파악이 면밀하고 정확하게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하겠다.
지구촌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미국 중심의 이기주의 정책으로 인식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이 정책을 승계한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 우선주의는 전체주의 정권에 맞서고 자유 국제질서 수호에 필요한 미국의 부족한 역량 증강에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역으로 미국의 고충을 담은 정책이다. 미국이 당면한 고충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셈이다. 미국이 곧이곧대로 이를 인정하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1970년대 베트남전쟁과 1차 오일 쇼크 때부터 국력과 위상의 하락을 부인한 이유다. 이제는 더 이상 부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20년 1월 당시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는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에 “미국이 왜 다시 리드해야 하나?”라는 기고문에서 미국의 고충을 간접적으로나마 처음 알렸다. 세계 경제에서 미국의 국가총생산량(GDP)이 차지하는 비중이 냉전 절정기인 1970년대의 42%에서 25%로 하락한 의미를 조심스레 꺼내 들었다. 그럼에도 미국이 자유 국제질서를 동맹과 지켜낼 수 있는 증거로 중국을 제외한 미국의 동맹과 우방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GDP를 합산하면 52%를 선회한다고 자부했다. 그러나 이렇게 초 간단 산술법에는 심각한 함정이 있었다. 현실은 이들의 제조업 역량과 군사력이 이런 책임과 임무를 수행하기엔 역부족했다.
이후 4년 뒤인 2024년 2월 당시 트럼프의 부통령 지명자인 J.D. 밴스가 뮌헨 안보 대화 분과회의 석상에서 '고해성사'했다. 그는 우선 나토 회원국의 자강을 호소했다. 나토 회원국의 방위비 분담 확대뿐 아니라 전후 우크라이나 평화와 안정 유지에도 더 많은 기여를 요청했다. 향후 40년 동안 미국이 중국에 모든 것을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돈이 문제가 아니고 ‘탄알’이 미국과 나토 회원국이 당면한 최대 과제라고 강조했다.
가령, 패트리엇 미사일 시스템은 5년치 주문이 밀려 있으며, 155밀리 포탄은 5년 이상의 주문이 쌓였다고 비유했다. 미국은 2025년까지 월 10만개 이상의 포탄 생산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병력 면에서도 그는 내일 당장 독일이 몇 개 여단을 파병할 수 있는지 반문했다. 아마도 1개 여단에 족할 것이라고 자문자답했다. 따라서 미국의 방위비 압박 등은 나토와 유럽의 포기를 의미하지 않는 대신 중국에 집중하기 위한 일환으로 가해진 것으로 해명했다.
밴스의 발언은 부실한 미국 제조업 현실의 방증이다. 제조업 기반이 취약하다 못해 붕괴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미국의 제조업이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 불과하다. 미국이 유럽과 일본 재건을 도왔던 1950년대의 25%에 비하면 턱없이 낮은 수치다. 이런 미국의 현실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사태, 2020년 코로나 사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됐다. 세계 금융 위기 때는 붕괴한 금융시스템을 내수경제나 제조업으로 회복하지 못했다. 기축통화국답게 국채를 포함한 달러 화폐 발행에만 열중했다.
코로나 사태 때는 마스크, 코로나 검역 키트, 백신과 치료제 생산에 필요한 원료와 재료 자체를 생산하지 못하는 현실을 통감하게 되었다. 이들의 주된 원료와 재료 대부분을 수입(중국)에 의존하는 현실에 맞닥뜨린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과 서구는 총탄, 탄약, 포탄은 물론 군수물자마저 자급자족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트럼프의 대선에 지원하기 위해 집대성된 정책 보고서 ‘프로젝트 2025’에서는 이른바 ‘민주주의 병기창(the artillery of democracy)’이 무너진 현실을 진단하고 이의 회복을 강력히 추천했다. 이를 수용하고 실행한 결과가 오늘날 미국의 MAGA 정책이다.
나토 회원국이 미국의 안전 보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동안 이들의 군사력은 도태하다 못해 거의 존재감이 없어졌다.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 등 전체주의 국가들의 세력 확장과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트럼프의 우크라이나 조기 종결을 위한 노력이 현재 교착상태에 빠진 이유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결을 위한 협상이 문제가 아니다. 전후 우크라이나 안전 보장을 위해 나토 회원국이 동원할 수 있는 군사력 부족이 중대한 이유 중 하나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을 거부한다. 대신 서구가 이를 책임질 것을 종용 중이다. 현실은 나토 회원국이 우크라이나에 약 3~4만명의 병력을 파병할 능력도 없고, 궁극적으로 평화 체계 수립을 위해 투입되어야 할 3~40만명의 군사 인력도 없는 상황이다. 대안이 없는 것이 현재 미국의 최대 고민이다.
이렇듯 미국의 입장에서는 지난 80년 동안 나토는 미국에 ‘무임승차’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트럼프 1기 때부터 상당한 유예기간을 줬다고 생각한다. 미국의 신사적인 주문에도 불구하고 GDP의 2% 이상의 나토 방위비 분담 지급 요청을 수용한 나라는 폴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그리스 등 네 나라뿐이다. 미국으로서 당근 대신 상호주의 관세와 같은 채찍을 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이 앞으로 40년 동안 중국에 ‘올인’하기 위해서는 갈 길이 바쁘다. 국방 분야의 정보분석관도 30만명을 육성해야 한다. 민주주의 병기창(군수 물품과 무기의 자급자족) 증강을 위해 제조업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서 나온 정책이 해외 및 미국의 제조업 투자 유치를 골간으로 하는 ‘리쇼링’이다. 첨단 군사 무기 분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채택된 정책이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다. 동맹과의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중국 견제를 위해 채택된 전략이 인도-태평양 전략이고, 이의 핵심은 동맹의 비용 부담 인상보다 역할 분담의 증대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이 추진하는 MAGA의 본질이다.
우리에게 최선의 대응은 우선 조급하지 말아야 한다. 정치적으로 결정된 정책에는 하자가 있기 마련이다. 당리당략과 같은 정치적 이득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속하다 못해 조급하게 졸속으로 채택된 정책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관세정책의 압박에 미국 내 우리 기업의 현지 공장을 지금 착공해도 정상 가동까지 최소 2~3년은 걸린다. 이 기간 동안 고관세의 대가는 고스란히 미국민의 몫이다. 미국의 리쇼링 정책이 성공해도 미국 내에서 소재, 부품, 중간재 등 이른바 ‘소부장’을 미국 내에서 자체 조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부실한 제조업 기반 때문에 상당 기간 해외 수입에 의존해야 한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트럼프의 상호주의 관세도 수정이 불가피하다. 1기 때 고관세 정책으로 미국 한 가정의 월 생활비 부담은 600~1000달러 인상딘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은 그 부담이 4000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2022년에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법을 경험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치적인 동기로 졸속 통과된 법안이 이듬해인 2023년에 부칙 개정한 바 있다. 즉, 예외조항을 부칙으로 하는 이른바 ‘가드레일’ 조항이 마련됐다. 3월엔 IRA 법안, 10월엔 반도체 법안의 부칙이 발표되는 것을 목도한 바 있다.
둘째, ‘패키지 딜’과 같이 우리의 국익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대응 방안은 다시 검토되어야 한다. 담론으로 제기되는 패키지 딜은 모두 우리의 투자와 협력을 주문한다. 가령, 미국의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의 수입 확대, 우리의 대미 투자 확대 등이다. 이는 우리의 국익을 고려하지 않은 우리의 투자와 구매만 강조한 방안이다. 자칫 트럼프가 비즈니스맨으로 좋아하는 호구로 전락할 공산이 큰 대응책이다. 가령, 지난 3월 현대자동차의 대미 투자 31조원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관세 적용 결정한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그에게 해외 기업의 투자는 그의 정치적 치적에 불과하다. 또한 대미 투자의 확대는 우리의 대미 레버리지를 축소한다. 가령, 우리의 이차전지 산업 해외 생산량이 90%가 넘으면서 중국산 배터리 사용을 금지하는 IRA법안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에서 우리는 레버리지를 잃었다.
셋째, ‘패키지 딜’에서 규제 완화는 우리 정부의 몫이다. 자동차 환경 기준 완화, 첨단산업 제도 협력 등과 같은 제안은 우리나라의 규제 강화 또는 완화를 전제한다. 역대 정부는 규제 완화를 약속해 왔다. 그러나 현실은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4월 2일 미국의 상호주의 관세 결정의 근간이 되는 2025 외국 비관세 장벽에 관한 국가무역위원회의 평가 보고서에서도 지적되었듯, 우리의 많은 규제 항목이 문제시되었다. 육류와 식량 분야를 제외한 조달과 관련된 비관세 장벽을 미국 측은 상호주의 관세 적용의 이유로 들었다. 자동차 환경 기준 완화를 미국과 서구에 요구하기는 어렵다. 우리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트럼프의 무모한 상호주의 관세 적용 결정을 전화위복으로 삼아야 하겠다. 이번이야말로 우리 무역시장의 다변화의 적기라 할 수 있다. 그간 소원했던 중국 시장이 우리에겐 아직 존재한다. EU 시장 진출 확대는 물론 중동, 아프리카, 남미, 중남미, 동남아로 시장을 전방위적으로 확장할 절호의 기회다. 지금껏 탁상공론에 불과했던 무역 시장의 다변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하겠다. 특히 중국 시장은 미국의 약점을 공략할 수 있는 최대의 레버리지라 할 수 있다. 미국 시장을 대신하겠다고 읍소할 필요도 있다. 우리가 레버리지를 가진 반도체, 디스플레이, 조선업 등의 분야에서 미국과의 협력이나 물량 공급 축소로도 압박을 가할 필요가 있겠다. 트럼프는 강강약약의 접근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게 그의 비즈니스 스타일에서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사랑하는 ‘딜’의 함정에 스스로 빠지게 만들어야 할 것이다.
주재우 필자 주요 이력
▷베이징대 국제정치학 박사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중국연구센터장 ▷브루킹스연구소 방문연구원 ▷미국 조지아공과대학 Sam Nunn School of International Affairs Visiting Associate Prof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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