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국무조정실에 따르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8일 밤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고 관세 문제를 비롯해 한미동맹 강화, 북핵 문제 등을 논의했다. 한·미 정상 간 통화는 올 1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번이 처음으로, 미국의 상호관세 발효를 앞두고 통화가 이뤄졌다는 점에서 사실상 양국 간 무역 협상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정상 간 통화에서 상호관세 문제와 관련해 즉각적인 합의는 도출하지 못했지만 관세율을 낮추기 위한 미국 측의 구체적인 요구조건은 확인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 직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게시글을 통해 조선(造船),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방위비 분담금을 관세 협상 테이블에서 한꺼번에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또 그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무역과 관세에 포함되지 않은 다른 주제들도 함께 꺼내 협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며 "'원스톱 쇼핑'은 아름답고 효율적인 절차다"라고 주장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양국 간에 어떤 협상 카드를 갖고 있는가에 따라 (협상 기한이) 달라질 수 있다"며 "비관세장벽, LNG 프로젝트 등은 구체화하기 위해 상당히 시간이 걸리는 문제"라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9일부터 미국으로 수출하는 한국산 제품에 25%의 관세 부과가 시작된 만큼 협상에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관세부과로 대미 의존도가 높은 자동차, 철강 업종 등에 수출 악영향이 크고, 가전·디스플레이의 경우 베트남 등의 해외생산이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정부는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에 보내 관세율 인하를 위한 협상에 나서는 한편, 관세 영향이 큰 자동차와 관련 부품 업종 등에 대한 특별 정책금융 프로그램 등 지원 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관세 폭탄을 떠안은 주요국이 미국과의 협상테이블 마련에 나서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우리나라와 일본 등 동맹국을 협상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는 방침이다. 동맹국을 우대한다는 취지로 보이지만 다른 국가와의 협상 사례 등을 학습할 수 없다는 점에서 협상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전문가들은 빠른 타결에만 초점을 두고 미국 측의 무리한 요구조건을 수용할 경우 실익을 놓치는 협상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금 미국을 보면 적극적으로 협상을 한다기보다는 고립주의 수준으로 강경하게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열심히 노력해도 미국 기조 자체가 이상하게 잡혀있으면 내줄 건 내주면서 얻을 건 별로 없을 수 있다"며 "(미국의 상호관세가) 팬데믹 위기처럼 그냥 맞아야 하는 위기일 수 있으니 잘 버티고 적응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영진 동아대 국제무역학과 교수도 "정인교 본부장의 방미 등은 확실한 결론을 얻기보다는 추후 협상에 대한 기반을 담기 위한 것으로 본다"며 "우리 정부가 해야 될 것과 기업이 해야 될 것을 토털 패키지로 묶어 미국과 협상하는 전략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미국의 관세 조치가 시행되면서 환율과 증시가 출렁였다. 이날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0.9원 오른 1484.1원에 주간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9년 3월12일(1496.5원) 이후 약 16년 만에 최고치다. 코스피 지수도 전 거래일 대비 40.53포인트(1.74%) 내린 2293.70에 거래를 마감하며 1년 5개월만에 2300선을 하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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