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경제·안보 묶어 '원스톱 쇼핑' 시사
9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한국의 대미 수출 품목에 대한 25% 상호 관세 부과는 이날 오후 1시 1분부터 발효됐다. 지난해 최대 무역 흑자국인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가 시작된 것으로 우리 경제에는 당장 경고등이 켜졌다.
정부도 본격적인 협상 테이블을 마련해야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경제와 안보 현안을 묶어 함께 논의하겠다는 '원스톱 쇼핑'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쇼핑 목록에는 대미 흑자와 관세, 미국산 LNG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투자 등 무역·경제정책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포함됐다.
관세와 관련한 구체적인 품목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를 통해 이를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USTR은 대규모 무기 수입 시 기술이전을 요구하는 절충교역,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 제한 문제, 정부가 추진 중인 플랫폼 법안, 원전에 대한 외국인 지분 금지 등을 비관세 장벽을 언급했다. 대미흑자와 관련해서는 대미 최대 수출품목인 자동차 수출 문제를 살폈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관세 장벽 해소 요원·재정 악화 불 보듯…정부 '진땀'
그러나 한국 입장에서 이러한 비관세 장벽 해제를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일례로 소고기 수입 제한을 해제할 경우 생산비 상승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한우 농가가 당장 직격탄을 맞는다. 플랫폼 법안은 미국 기업이 아닌 국내 기업들도 영향을 받는다. 노영진 동아대 국제무역학과 교수는 "비관세 장벽은 국민들이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안이 많다"며 "쉽게 해소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짚었다.
자동차는 이미 미국의 25% 관세 부과로 어려움이 커진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 1기에서 늘었던 LNG 수입을 추가로 확대하기에도 어렵다. 2016년 3만t에 불과했던 미국산 LNG 수입은 2020년 576만t으로 크게 증가했다. 총투자비가 44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투자 역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에서 섣불리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방위비 분담금을 늘리는 것도 재정문제가 걸린다. 한국과 미국은 지난해 10월 방위비분담특별협정을 통해 내년 총액을 올해보다 8.3% 늘린 1조5192억원으로 확정하고 2027~2030년 연간 증가율을 5%를 넘지 않도록 상한선을 설정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연간 100억 달러'는 내년 분담금의 10배 수준이다.
◆전문가 "무역 흑자 줄이고 에너지 협력 키워야"
통상 전문가들은 컨트롤 타워 부재의 현재 상황에서 정부 대응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진단한다. 다만 새 정부 출범 후 협상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미국과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시도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노 교수는 "결국 비관세 장벽을 우리나라에서 어느 정도까지 푸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라며 "지금은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정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줄 수 없다. 협상에는 한계가 있는 만큼 새 정부가 들어선 뒤 본격적인 논의에 나설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우리에게 미칠 영향을 최소화해야 된다. 정부로서 할 수 있는 게 매우 제한적이지만 무역 흑자 폭 감축 등의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며 "한국석유공사라든지 한국수력원자력 등 에너지 분야에서 협력할 걸 찾아보는 것도 좋다"고 내다봤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재 미국의 태도를 보면 19세기 무렵의 고립주의로 가겠다는 생각이 강하다. 우리나라가 양보를 하더라도 협상이 얼마나 잘 될지는 의문"이라면서도 "캐나다나 유럽연합(EU), 중국 등 다 같이 관세 공격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한국만 불리한 상황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먼저 저자세로 나갈 필요는 없다"고 제언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