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상호관세를 시행 13시간 만에 전격 유예하기로 한 가운데 그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미국채 금리 급등(미국채 가격 하락)이 꼽히고 있다. 증시 급락에 무덤덤하게 반응했던 그가 채권 시장 혼란에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 눈길을 끌고 있다.
9일(현지시간) ABC,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들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상호관세 유예 이유를 묻는 질문에 "사람들이 조금 지나치게 반응했던 것 같다. 그들은 흥분하고 있었다"며 "그들은 약간 들뜬 상태였고, 조금 겁을 먹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채권 시장이 매우 까다로웠다. 내가 보고 있었는데...사람들이 좀 불안해했다"고 덧붙였다.
그가 불과 사흘 전인 지난 6일, 상호관세 발표일(2일) 이후 나타난 이틀 간의 증시 급락에 대해 "나는 아무 것도 하락하는 것을 원치 않지만 무언가를 고치려면 약을 먹어야 한다"며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던 것과 상당히 다른 반응이다.
실제로 지난주 상호관세 발표 이후 이틀 간 미국채 금리는 하락(미국채 가격 상승)했지만, 이번 주 들어서는 급등(미국채 가격 하락)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지난 4일 4.01%로 마감했던 미국채 10년물 금리는 9일 4.34%까지 올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는 2001년 이후 사흘간 최대 금리 상승폭이다.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던 미국채가 이번 주 들어 약세를 보인 것은 중국 등 주요 미국채 보유국들의 투매 가능성, 헤지펀드의 베이시스 트레이드(현·선물 가격차를 이용한 거래 전략) 청산 및 미국 정책 불확실성에 따른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 약화 등이 꼽히고 있다. 특히 지난 주까지만 해도 증시 하락 시 미국채는 강세를 보이며 정상적 흐름을 보였지만 이번 주 들어서는 증시와 채권이 동시에 하락하면서 미국 금융시장 전반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는 미국채 시장 혼란에 반응하며 지금까지 강행해 온 관세 결정을 유예하기로 결정한 모습이다. 실제로 CNN은 미국 재무부 내에서 채권 시장 혼란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태세 전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3명의 관계자를 인용해 전했다. 그는 이날 오전 소셜미디어에 증시에 대한 글을 올릴 때까지만 해도 아직 상호관세 유예 결정을 내리지 않았으나, 당일 회의에서 월가 출신인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 등으로부터 채권 시장 혼란에 대한 보고를 받고 상호관세 결정을 번복했다고 CNN은 전했다.
이와 관련해 FT는 "부채 활용을 특징으로 하는 부동산 개발업자로서 사업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 미국채 시장에서 경고 신호를 감지했다"고 평했다. 부동산 재벌로 명성을 쌓아온 트럼프 대통령이 부동산 시장과 긴밀한 금리에 민감하게 반응했다는 진단이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로 알려진 제이미 다이먼 JP모건 회장의 조언도 트럼프 대통령이 태세를 전환하는데 한 몫 한 모습이다. 다이먼 회장은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누군가 (글로벌) 무역이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면 완벽할 정도로 합리적"이라면서도 "긴 숨을 들이마시고 일부 무역 딜을 협상해야 한다. 이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정책을 강행할 경우 예상되는 결과는 경기침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다이먼 회장에 대해 "그는 이 문제를 이해했다"며 다이먼 회장을 칭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태세 전환은 최근 인사 기용에서도 두드러지고 있다. 그는 상호관세 결정에서 소외됐던 것으로 알려진 '온건파' 베센트 재무장관을 이번 주에 한국, 일본 등과의 무역 협상 대표로 내세운다고 발표한 반면 '강경파'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은 전면에 나선 모습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트럼프 2기 정부효율부(DOGE) 수장을 맡은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와 나바로 고문 간에 관세를 둘러싼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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