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증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공세로 롤러코스터 장세를 보이는 가운데, 국내 인공지능(AI)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도 찬바람이 불고 있다. 벤처캐피털(VC) 업계는 장기화된 경기 침체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여파까지 겹치며 AI 관련 모험자본 투자가 더욱 위축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벤처투자 정보 플랫폼 ‘더브이씨’가 최근 발표한 ‘2025년 1분기 한국 스타트업 투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AI 스타트업 투자는 총 41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67건) 대비 39% 감소한 수치다. 투자 금액도 1949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118억원)보다 37% 줄었다.
AI바이오, AI보안 등 AI와 기존 산업을 결합한 기업들이 투자 시장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이들 역시 감소세를 피하지 못했다. AI 엔터프라이즈 분야 투자는 지난해 1분기 18건에서 올해 11건으로 줄었고, 같은 기간 AI바이오 부문도 15건에서 8건으로 감소했다.
최근 2년 동안 엔비디아 등 미국 빅테크발 강세로 국내 투자 시장 역시 AI 기업 위주로만 자금이 쏠렸다. 이러한 투자 시장 양극화 현상에 많은 기업들은 투자 유치를 위해 AI를 주요 키워드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 같은 AI 투자 열풍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투자 시장 위축으로 유동성 축소도 계속됐지만, 트럼프발 관세 전쟁으로 인한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도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언 여파로 글로벌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고환율, 고금리 여파로 국내 기업금융 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기업금융 시장이 전반적으로 흔들리면서 투자금 조달이 쉽지 않아졌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은 금융시장 내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어, 투자자 입장에서는 모험자본보다는 보다 명확한 투자처, 안전한 곳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VC업계는 안정적 수익을 위해 이미 검증된 기업 위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있다. 해당 업계 관계자는 “스타트업 투자는 단순히 상장만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면서 “요즘처럼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는 때에는 펀드 존속 기간을 단축하되 이들의 투자 재원은 마련해주는 방향으로 돕고 있다”고 부연했다.
그럼에도 AI 스타트업 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한국인공지능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공식 집계된 AI 기술 기업 수는 2354개에 달하며, 이 중 70% 이상이 초기 성장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늘어나는 기업 수와 달리 투자 시장에서는 이미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되고 있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AI 기술에 대한 불확실성과 미·중 갈등 심화로 인해 투자 결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에 따라 AI 스타트업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진단했다.
투자처를 잃은 국내 AI 스타트업은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AI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브이씨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에 본사를 둔 K스타트업은 186곳으로 2020년(139곳) 대비 34% 증가했다. 지난해 미국의 AI 민간 투자 규모는 672억 달러(약 96조원), 중국 77억 달러(약 11조원)였다.
반면 한국은 민간 투자 기준 약 2조원 수준으로 여전히 낮아 글로벌 AI 투자 트렌드를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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