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호균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명예교수]

12·3 계엄이 초래한 민주주의 위기를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수행 덕분에”(헌재 판결문) 차단된 지금 트럼프발 관세전쟁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바이든식 ‘경제동맹’보다 훨씬 더 일방적인 트럼프식 ‘미국우선주의’에 대해 작금의 대행체제가 행여 자신에 대한 ‘미국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퍼주기’로 응한다면 한국 경제의 성장역량은 약탈당하고 장기 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다.
대한민국 경제의 ‘새판 짜기’는 윤석열 정권이 지난 3년 동안 자행한 ‘경제 무너뜨리기’를 되돌리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탄소중립 2050’ 목표를 부활시켜야 한다. 원전을 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포기했던 이 목표는 에너지 산업만이 아니라 국민경제와 인류 전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사안이다.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세와 RE100의 일정과 필요량을 감안할 때 재생에너지는 생산 속도를 높일 필요가 있으며 이미 과잉생산되고 있거나 생산조건이 유리한 지역에는 가령 ‘RE100전용공단’을 설치하여 재생에너지 소비기업을 유치함으로써 소비속도도 높여야 할 것이다.
둘째, ‘K방산’처럼 수출증대를 빌미로 ‘기업’을 ‘끼워팔기식’으로 수출하는 마케팅에 대해서 대단히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지난 수년 사이에 두드러지게 확산되고 있는 ‘공장’수출을 절제하여 기술은 물론 성장, 고용, 세수가 유출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K9 자주포 수출이 그러하고 국산 전투기 KF21의 생산과 수출을 위한 인도네시아와의 ‘협력’은 납세자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한국은 3년, 중국은 6년, 미국은 7년”이라는 미해군 전력평가에서 나온 구축함 납기비교에서 한국 조선업의 압도적인 경쟁력은 미국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더욱이 미국은 자국 선적의 상선을 10년 이내에 80척에서 250척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 상태이다. 해군역량은 물론 상선단 복원도 시급한 미국에 한국 조선업은 최적의 협력상대이다. 납기만 보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한국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임기 내에 건조되는 ‘트럼프호’를 한 척도 볼 수 없다. 이처럼 한국 내 선박건조가 불가피한 ‘공급자 시장’에서는 기업의 이익뿐만 아니라 고용증대와 같은 국민경제적 이익도 동시에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정부는 국내 산업구조를 ‘대체 불가한’ 고임금 숙련노동 중심으로 옮겨갈 절호의 기회로 삼을 필요가 있다.
셋째, 수출주도성장 전략을 명시적으로 수출·내수 병행전략으로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 수출을 위한 수출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 창출, 생활수준 향상이라는 본래의 인과사슬을 회복하는 것이 “질적 성장”(이재명 전 대표)의 길이다. 작년도 성장률 2% 중 95%가 무역흑자의 효과였다는 사실은 결국 수출주도 성장전략은 저성장 국면에 처한 한국 경제를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었음을 의미한다. 트럼프 1기 당시 무역의존도가 65%였던 중국은 그사이 수출·내수병행전략으로 의존도를 33%로 낮추었다. 맷집을 키운 셈이다. 중국은 방대한 시장을 배경으로 공급망 내재화를 사실상 완성했고 미국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서둘러 공급망 내재화를 실천에 옮기는 사이에 한국만 외로이 수출주도성장을 고수하는 것은 스스로 국민경제의 취약성을 내재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섯째, 연구개발은 복원을 넘어 확충으로 나아가야 한다. 지난 3년간의 ‘카르텔국가론’을 타파하고 ‘인재국가’의 비전을 확고히 수립해야 한다. 국내 인재 유출은 방치 내지 사실상 독려하면서 ‘해외 두뇌’를 유치하겠다는 허황된 탁상행정은 처벌되어야 한다. 연구개발 인재를 대상으로 노동시간을 64시간으로 연장하려는 시도는 두뇌노동에 대한 몰이해를 전 세계에 폭로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인재유출을 부추기는 몰지각한 시도이다.
여섯째, 기업국가를 넘어 주권자국가로서 새로운 국가상을 경제영역에서도 정립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주권자의 이익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주권자의 이익이 최소한 조화를 이루는 경제, 가령 노동시간을 연장하지 않고 오히려 40시간으로 정상화되어도 생산성은 향상되는 경제가 '질적 성장'이 이루어지는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비전이다. 나아가 미래 한국의 경제는 지금처럼 소비자잉여를 축소하면서 생산자잉여를 확대하는 경제가 아니라 소비자잉여와 생산자잉여가 함께 증가하여 사회적 후생이 순증하는 경제이다.
일곱째, 인구소멸은 일자리 창출을 중심으로 하여 지역균형발전(지방소멸 억제)과 에너지전환을 결합하는 전략으로 돌파할 필요가 있다. 인구소멸을 차단하려면 청년 세대를 기준점으로 하여 그전과 후의 생활에서 가족을 구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여건을 다각도로 마련해주는 ‘생애주기형 인구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임신·출산 이전에 청년들의 ‘만남’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여건이 정부 인구대책에서 공백 상태에 있다. 바로 이 만남을 시작하기 위해서 갖추어져야 하는 경제적 여건이 취업이다. 정부의 수수방관 속에 급증하고 있는 기업의 해외투자를 국내로 전환하는 것이 우선 효과적인 방책일 수 있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균형 발전이 병행되면서 에너지전환이 동시에 결합될 때 수도권 집중은 저지되고 지역분권을 달성하는 물적 토대가 강화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일자리 창출은 민간부문의 몫이라는 방관 자세에서 벗어나 “지역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헌법 제123조 ②항)를 지는 국가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여덟째, 산업뿐만 아니라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인공지능(AI)산업에 대한 국가 차원의 육성과 지원이 필요하다. 갈수록 AI 없는 산업생산과 경제활동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산업화시대의 철강산업, 정보화시대의 정보기술(IT)처럼 앞으로는 AI가 기반기술이다. AI는 보편적 기술이기도 하지만 특수성이 결코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 한 나라에 편중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AI주권’에 대한 명확한 목표의식이 있어야 한다. ‘AI주권’ 없이는 문화적 정체성은 물론 영토주권도 위협받을 수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민국 경제 새판짜기는 윤석열 정부에 의해 망가진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고 지속가능한 '질적 성장'을 달성하는 길이다. 더 이상 불가능해진 ‘나 홀로’ 수출주도성장을 수출·내수 병행전략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는 대외적으로 대한민국의 경제안보 강화와 공급망 내재화를 전략적 방향으로 설정하는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일자리 창출을 중심으로 하여 지역균형발전(지방소멸 억제)과 에너지전환을 결합함으로써 인구소멸을 저지하는 전략이다. 이는 동시에 불평등, 불균형, 불안정을 특징으로 하는 파시즘이 경제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김호균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서울대 경제학과 ▷독일 브레멘대 경제학 박사 ▷명지대 경영정보학과 교수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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