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는 원자력 발전 의존도가 높은 국가로 전력의 약 70%를 원자력에 의존한다. 표준화된 원자로 설계를 기반으로 프랑스 전력공사(EDF)라는 단일 사업자가 원전을 운영하며 프랑스 원자력 안전국(ASN)과 방사선 보호 및 원자력 안전 연구소(IRSN)라는 독립된 규제 기관이 존재한다. 특히 주기적 안전성 평가(PSR)는 법적으로 명시되어 있어 가동 중인 원전의 안전성을 주기적으로 검토하며 이를 계속운전의 기반으로 활용하고 있다.
900㎿e(메가와트 일렉트릭)급 원자로 32기의 계속운전을 위해 프랑스는 2014년부터 EDF와 ASN 간 협의를 시작했다. EDF는 설계 수명 40년을 초과해 추가로 20년 운전을 목표로 의향서를 제출했으며 ASN은 IRSN의 기술 검토 결과를 토대로 이를 체계적이고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이후 2021년 ASN은 32기의 원자로에 대해 일괄적으로 추가 10년 운전을 승인했다. 하지만 개별 원자로의 계속운전 승인은 2021년 트리카스텡 1호기를 시작으로 각 원자로에 대해 종합 검사를 거쳐 최종 확정됐다.
한편 EDF는 PSR에 따른 10년 단위 검토 주기가 지나치게 짧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이에 따라 ASN은 20년 이상의 계속운전 승인 절차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이 과정은 안전성과 경제성을 조화롭게 고려하면서도 규제기관과 사업자가 협력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ASN은 PSR-4 과정에서 설비 개선뿐만 아니라 지진, 홍수, 폭발과 같은 극단적 외부 사건에 대비한 설계 보강도 요구했다. EDF는 이에 따라 설비 내구성을 강화하고 사고 발생 시 작업자의 대응 능력을 높이기 위해 사고 관리 시스템 개선과 훈련을 병행했다. 특히 이번 PSR-4에서는 최신 원자로 설계 기준을 참조하면서도 현실적인 접근 방식을 채택해 모든 요건을 강제하지 않고 중대사고 방지와 사고 확산 방지에 초점을 맞췄다.
프랑스의 사례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프랑스는 원전 계속운전을 넷제로 달성이라는 국가적 목표와 연결 지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독립 규제기관과 고위 논쟁 조정위원회가 주도해 수년간 공론화를 진행했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 노력은 대국민 수용성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했으며 이는 지역 주민 대상 공청회를 사업자가 직접 진행하는 우리나라와는 대비되는 점이다. 또한 프랑스는 규제기관과 사업자의 협력 속에서 각자의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하면서 주기적 안전성 평가와 설비 개선을 통합해 규제 체계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였다.
프랑스의 사례는 안전성 강화와 경제적 실현 가능성을 조화시키면서 규제기관의 독립성과 투명한 절차, 그리고 국민적 신뢰를 이끌어낸 점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이제 우리도 이러한 협력적 접근과 체계적 절차를 통해 원전 계속운전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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