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준의 지피지기] 관세 던졌더니 …용이 날아올랐다

  • 피터 나바로는 중국을 과소평가했다

박승준 논설주간
[박승준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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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새판짜기 II] ⑬

 
“관세전쟁에는 승리자가 없습니다. 세계와 맞서 싸우면 스스로 고립될 뿐입니다. 지난 70년간 중국의 경제발전은 시종 자력갱생한 결과이지 누구의 은사(恩賜)에 의지한 결과가 아닙니다. 어떠한 무리한 압력도 두렵지 않습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일 베이징(北京) 조어대(釣魚臺) 국빈관에서 중국을 방문한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에게 한 말이다. 시진핑은 미국을 겨냥해서 작심한 듯 “중국과 유럽연합은 글로벌 경제와 자유무역의 지지자로, 전 세계 경제총량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으며, (미국의) 일방적인 패권 행위를 공동으로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산체스도 시진핑의 말에 동조하면서 “스페인과 유럽도 일방적인 관세 부과에 반대하며, 중국과 협력을 강화해서 국제무역 질서를 잘 지켜나갈 것”이라고 했다.
시진핑은 사흘 뒤인 14일 베트남을 시작으로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 3개국 순방에 나섰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베트남 다낭 발로 “시진핑의 이번 동남아 순방의 목적은 최근 베이징에서 (산체스 스페인 총리에게) 한 ‘관세전쟁에는 승리자가 없다’는 말을 확산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국 지도자가 미국과의 무역 전쟁이 진행되는 가운데 베트남을 ‘court(환심을 사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은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였던 1979년 2월 17일 20만명의 병력을 동원해서 당시 소련을 지지하던 베트남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베트남 국경도시들을 공격했다가 2만300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한 달 만에, 교훈을 주기는커녕 교훈을 받고 철수하는 치욕의 기록을 남겼다. 베트남의 현재 지도부인 베트남공산당은 1955년부터 1973년까지 20년 가까이 진행된 베트남 남북 전쟁에서 남베트남과 남베트남을 지원하던 미군을 패퇴시킨 승전 기록을 역사에 남겼다. 역사가 흐르다 보니 그 후 50여 년 만에 트럼프가 시작한 관세전쟁 때문에 중국공산당과 베트남공산당 지도자가 다시 하노이에서 미국을 헐뜯는 구도를 연출했다.
세계 질서와 국가 간 분위기를 근본부터 바꿔놓고 있는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누가 기획한 것일까.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제조업 수석고문(Senior Counselor for Trade and Manu –facturing) 피터 나바로(Navarro·76)가 바로 그라고 미국과 국제사회에 알려져 있다. 트럼프 대통령 1기 때에도 백악관 무역과 제조업 담당 책임자(Director of the Office of Trade and Manufacturing Policy)였던 나바로는 중국에 대한 가혹한 관세 부과로 중국의 미움을 받았다.
나바로에 대해서는 아마존에 지난 11일 출판된 <피터 나바로와 경제적 파괴의 기술 : 트럼프의 관세 전략가의 전기 (Peter Navarro and the Art of Economic Destruction: The Biography of Trump’s Tariff Strategist)>라는 책이 올라있다. 나바로의 일생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모조리 수집해서 담은 이 책의 저자는 ‘Aven Keldric’으로 되어있으나 이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미국 검색엔진에서 찾을 수 없다. 챗 GPT에는 “피터 나바로와 트럼프 행정부 국방장관 피트 헤그세스의 상세한 인적 사항을 담은 전기를 쓴 저자”로만 소개돼 있다.
아마존에는 피터 나바로가 쓴 책 가운데 중국 관련으로는, <다가오는 중국과의 전쟁 (Coming China Wars : Where They Will Be Fought and How They Can Be Won ; 2006년>, <웅크리고 있는 호랑이(Crouching Tiger: What China's Militarism Means for the World · 2019년>, <치명적인 중국(Death by China 중국어판 · 2022년)> 등이 올라있다. 나바로가 트럼프 관세 정책을 기획한 책사이며, 트럼프 관세 정책의 핵심 대상이 중국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책들이다. 이 가운데 2012년에 출간된 <치명적인 중국>의 영어판은 나바로 자신이 감독을 맡아 제작한 유튜브에 ‘중국에 의한 죽음 : 미국은 어떻게 제조업 기반을 잃었나(Death By China: How America Lost Its Manufacturing Base)’라는 제목으로 올라있다.
9년 전 처음 제작됐다는 유튜브 ‘Death by China’에는 나바로가 “넷플릭스에서도 많이 열람되고 있다”는 설명이 있은 뒤, 미 성조기 무늬에 ‘JOBS(일자리)’라는 글씨가 새겨진 구슬이 천안문 마오쩌둥(毛澤東) 초상화 아래 문 뒤로 사라지고, 천안문 바로 뒤에 검은 연기를 내뿜는 공장 굴뚝들이 나타난다. 곧이어 이런 내레이션이 나온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5만7000여 개의 미국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2500만명의 미국인들이 제대로 된 직장을 찾을 수 없었고, 미국은 세계 최대의 독재국가에 3조 달러의 빚을 지게 됐다.”
‘Death by China’의 중국어 번체(繁體)판에는 “중국이 조성하는 죽음의 여러 가지 증거로 작자(나바로)는 불량상품, 환경오염, 정치부패, 환율 조작, 광적(狂的)인 군사 확장, 식민지의 권리를 박탈하는 제국(帝國) 외교, 그런데도 강권을 휘두르는 정치에 대한 관영매체들의 사탕발림 등, 이런 중국의 면모를 아는 사람들은 드물다”는 책 소개를 붙여놓았다. 중국어 번체자는 대만과 홍콩에서 주로 사용되고, 대륙 본토 중국에서는 획수를 줄인 간체(簡體)가 사용된다. ‘Death by China’를 ‘치명적인 중국(致命中國)’이라고 번역한 나바로의 책의 판매 대상이 중국이 아니라 중국 밖의 대만, 홍콩과 유럽의 차이나타운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 “이런 중국을 2001년 WTO(세계무역기구)에 가입시킨 클린턴 대통령은 큰 실수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관세전쟁을 시작한 1기(2017~2021) 때 트럼프 대통령은 보수적인 싱크탱크 허드슨(Hudson) 연구소의 마이클 필스버리(Pillsbury · 80)가 쓴 <백년의 마라톤(Hundred Years’ Marathon)>을 가장 높이 평가했다. 이 책에는 ‘슈퍼파워 미국을 대체하려는 중국의 비밀전략(China’s secret strategy to replace America as the global superpower)’이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필스버리는 <백년의 마라톤>의 ‘100년’을 중국공산당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수립한 1949년부터 2049년까지의 100년간이라고 설정했다. 중국공산당의 100년 전략은 손자병법의 삼십육계 중 제1계인 ‘만천과해(瞞天過海 · 천자를 속이고 바다를 건넌다)’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중국공산당은 1980년 빠른 경제발전을 시작하면서 ‘화평굴기(和平崛起 · Peaceful Rise)’를 전 세계를 향해 외쳐 미국을 속였다는 것이 필스버리의 진단이었다.
트럼프 1기 때의 필스버리나, 2기 때의 나바로 진단을 보면 적어도 트럼프 집권 기간에 미국과 중국이 화해할 가능성은 원천적으로 별로 없어 보인다. 그 배경에 “미 트럼프 행정부의 중국에 대한 과소평가가 자리 잡고 있다”고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 겸 NSC(국가안보위원회) 인도 태평양 조정관(Coordinator)을 지낸 커트 캠벨(Campbell)이 지난 10일 발행된 포린 어페어즈 5-6월 최신호 기고문에서 경고했다. 캠벨은 조지타운 대학의 중국전략위원회 책임자 러시 도쉬(Dosh) 교수와 함께 쓴 ‘과소평가 된 중국(Underestimating China)’ 기고문에서 “중국은 불과 몇 년 전의 코로나 팬데믹과 높은 청년실업률,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현재 GDP 수치에서 미국의 70%를 넘어섰고, 해군 규모에서 미국의 200배가 넘는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캠벨과 도쉬는 “중국은 세계에서 제일 빠른 극초음속 전투기 제조 능력을 바탕으로 군 현대화를 빠른 속도로 추진 중”이라면서 “미국의 중국에 대한 평가는 미국에 대한 과신(Over-confidence)에서 출발해서 중국에 대한 과소평가의 오판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을 오래 연구해 온 우리 국제정치학자들은 “요즘 중국 정부가 한국, 일본, 필리핀과 동남아시아 일원의 싱크탱크 연구원들을 광범위하게 접촉 중”이라고 전하고 “접촉 과정에서 중국 측 인사들은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미국을 ‘America First’가 아니라 ‘America Last’로 만들어 놓을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귀띔했다. 안전보장은 미국에, 경제의 많은 부분은 중국에 걸어놓고 있는 우리에게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필수적이다. 중국 경제를 오래 연구해 온 우리 학계의 한 원로 학자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고민 중인 한국은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과 아시아태평양 15개국이 참여하는 RCEP(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 등 지역 내 협력 강화를 통해 활로를 찾아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했다.

 
  

필진 주요 약력

▷서울대 중문과 졸 ▷고려대 국제정치학 박사 ▷조선일보 초대 베이징 특파원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초빙교수▷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 ▷아주경제신문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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