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보수로 살아남는 법

2004년 개봉한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미국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다. 입체적 성격의 등장인물과 기존 청소년 영화의 공식을 벗어난 구성으로 흥행은 물론 작품성 측면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유명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10대들을 다룬 유치한 영화들이 넘쳐나는 황무지에서 재치 있고 재미있는 영화"라고 평가했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Mean Girls'로 우리말로는 '비열한 소녀들' '무례한 소녀들'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두 달 전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 선거 경선 예비후보의 '중도 보수' 발언으로 정치권에서는 보수를 두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여당이던 국민의힘에서는 '짝퉁' '사칭' 등 거센 표현과 함께 이 후보에게 입당을 요구하는 우회적인 반발도 나왔다. 소모적인 정쟁의 하나로 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현 국회의 구조 속에서 한 번쯤은 짚어 봐야 할 문제에 대한 공론화 계기가 됐다고도 생각한다. 어느 정당의 보혁(保革)에 대해 자신을 규정하기보다 그 정당의 정책과 역사, 특히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로 규정돼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사전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반대하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전통의 옹호나 현재의 유지 또는 점진적 개혁을 주장하는 주의'를 의미한다. 조금 더 설명을 붙이자면 사회 질서의 안정적 유지, 헌법과 법률이 올바르게 작동하는 법치주의 등이 보수가 우선으로 여기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내용은 새로운 내용이 전혀 아니다. '도대체 보수가 무엇이기에'라는 자문의 기회로 다시금 되짚어 본 내용일 뿐이다. 각 개인의 성향을 떠나 보수는 우리 사회를 지탱해 주는 소중하고, 꼭 지켜야 할 개념인 것은 분명하다. 그 가치가 위협받으면 우리 국가와 사회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3일 헌법과 법률이 정한 실체적 요건을 갖추지 않은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헌법재판관 8인 전원은 "헌법과 법률을 위배해 헌법 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자인 대한국민의 신임을 중대하게 배반했다"고 질타했다. 또 "국가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트리고, 사회·경제·정치·외교 전 분야에 혼란을 야기했다"면서 사회적 안정을 해쳤다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보수 정당임을 자처하는 국민의힘에는 여전히 윤 전 대통령이 1호 당원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보수의 가치를 무시해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 가장 먼저 보수 정당을 대표하고 있다. 다만 국민의힘이 보수 정당임을 인정할 수 있는 명분은 남아 있다. 적어도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에 찬성한 18명,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한 최소 23명의 국민의힘 의원은 보수의 가치를 지켰다고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구분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국민의힘 소속 대다수 의원은 보수의 가치가 아닌 어떤 다른 의도와 목적으로 현 조기 대선 정국을 대하고 있는 것 같다. 보수 정당으로 인정받기 위한 방법은 어렵지 않다. 비상계엄부터 탄핵 선고에 이르기까지 새삼 깨달았던 헌법과 법률 수호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면 된다. 그렇지 않고 과거처럼 간판만 바꾼 채 보수를 자처하며 기득권을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진정한 보수 정당이 아닌 역사의 '비열한 정당' '국민에 무례한 정당'이 될 것이다. 
 
정해훈 정치사회부 차장
정해훈 정치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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