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벚꽃연금' '장마연금'이라는 말이 있다. 벚꽃이 피는 시기나 장마 시기에 노래가 자주 나와 저작권료가 연금처럼 들어온다는 의미다.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판에도 '연금'이 있다. 바로 입주를 마치고 조합을 해산한 이후로도 소송 등을 이유로 수년간 조합을 청산하지 않고 청산인과 사무장 등이 매월 급여를 받아 챙겨가는 '청산연금'이다.
최근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교통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 347개 미청산 조합의 해산 당시 1조3880억원 규모이던 잔여 자금이 올해 1월 기준으로는 4867억원으로 청산 과정 중 9013억원이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서대문구에서는 무려 10년째 청산작업을 진행 중인 곳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입주까지 마친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청산 과정에서 조합원에게 돌아가야 할 막대한 유보금이 청산인 월급과 운영비 명목으로 줄줄 빠져 나가고 있는 것이다. 조합원 몫이 줄어드는 것은 자명하다. 일명 ‘청산연금방지법’으로 불리는 도시정비법 개정을 통해 지난해 6월부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관리 사각지대의 재건축·재개발 청산 절차를 감독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서다.
정비사업에서 조합원 돈은 ‘눈먼 돈’이나 다름 없다는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비단 청산연금뿐만이 아니다. 올해 총회를 개최한 서울 지역 A재개발정비사업조합은 책자 인쇄비 3000만원, 홍보(OS)요원 용역비 8000만원 등 총회를 한 번 여는 데 1억6000만원을 투입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비사업은 조합 설립부터 분양, 입주, 해산, 청산까지 길게는 수십 년 걸리는 장기프로젝트이면서 조합원 자산이 걸려 각자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밖에 없는 민감한 사업이다. 수천억 원~조 단위 사업비가 투입되지만 조합 임원 중심의 불투명한 운영과 조합원 소외 문제가 여러 사업장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등 투명성에 대한 문제도 끊임없이 지적돼 왔다.
이에 국토부와 서울시가 사업 투명성 강화와 신속성을 위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전자투표 활성화다. 정부와 시가 시범사업 등을 통해 도입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여전히 일부 조합과 지자체는 제도 혼란 등을 이유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정비업계에서는 전자투표 도입에 따른 일선 현장의 혼란보다는 오히려 득이 되는 부분이 많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현행 OS요원을 통한 서면결의 방식의 부작용 원천 차단이다. 서면결의서를 핑계로 OS요원이 조합원을 일방적으로 설득 및 회유하거나 극히 일부이긴 하지만 서류를 조작하는 등 부정의 소지를 막고, 자신의 이름으로 제출한 결의서가 내가 낸 게 맞는지 의심할 필요도 없어지는 것이다.
지난해 전국 최초로 ‘재개발·재건축 가이드 백서’를 통해 정비사업 조합의 부정사례를 담아낸 서대문구도 부정을 막기 위한 해결 방안 중 하나로 전자투표 활성화를 통한 OS요원 활동 금지 등을 제시한 바 있다.
조합 입장에서도 전자투표 도입은 시간·장소에 대한 제약 없이 조합원들이 손쉽게 총회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어 총회 참석요건을 충족하기 수월하고, 수억 원에 달하는 총회 개최 비용 또한 크게 경감할 수 있는 데다 총회 결과도 전산으로 보관돼 조합의 행정부담까지 낮출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택 공급 부족 우려와 주택 노후화 등으로 전국 곳곳에서 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사업 투명성 및 진행 속도를 한꺼번에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는 곳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 2월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정비사업 전자투표 활성화 시범사업 결과 조합원 만족도는 98%에 달했다. 조합원 개개인이 자신의 권리를 가장 확실하게 행사할 수 있고,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전자투표 활성화에 정부와 정치권, 지자체, 조합이 함께 전향적인 자세로 나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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