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초만 하더라도 서울 아파트 시장을 상저하고(上底下高)로 예상했다. 상반기에는 국내 정치와 미국 트럼프 불확실성으로 약세를 보이다가 하반기부터 기준금리 인하 효과와 입주물량 부족 영향으로 강세를 보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틀렸다. 생각하지도 않았던 토지거래허가제(토허제)가 부동산 시장을 흔들면서 상반기부터 초강세가 된 것이다.
지난 1월 오세훈 서울시장이 강남권에 적용된 토지거래허가구역(토허구역) 해제를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하자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식었던 투자심리의 온도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후 2월 13일 전격적으로 잠·삼·대·청(잠실·삼성·대치·청담동) 주택에 대해 토허제를 풀자 지금까지 보지 못한 집값 폭등이 일어났다.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서울시는 급기야 해제 35일 만에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 전체 아파트를 토허구역으로 확대 재지정하는 악수(惡手)를 두고 말았다.
송파구 거여동과 마천동처럼 집값이 크게 오르지도 않았음에도 강남 3구와 용산구라는 이유만으로 날벼락을 맞은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확대 재지정 발표 후 효과가 발생하는 3월 24일 전까지 규제를 피하기 위한 급매물이 쏟아지기는 했지만 24일 이후에는 거래가 급감해 시장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풀었다 묶었다 뒤집기를 한 토허제의 부작용은 생각보다 크다. 자신이 없으면 2월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하지 말아야 했고, 이왕 해제를 했다면 적어도 3개월 정도는 기다려야 했다. 한 달 만에 해제와 재지정을 반복하면서 정책에 대한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거래량이 줄어들고 상승률이 낮아지는 것을 집값 안정이라 생각한다면 당분간 목표 달성은 할 수 있다. 강제 매물 잠김 현상이 발생하면서 매물이 감소하고 거래량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급등한 집값은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기준금리는 내려가는 추세이고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물량은 올해 대비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 지금까지 안 팔고 기다린 집주인들이 크게 아쉬울 것이 있겠는가? 토허구역 해제로 급등한 가격은 고착화되고 강남 3구와 용산구 매물은 더욱 희소성이 높아질 것이다. 토허구역으로 지정됐음에도 계속 신고가가 나오는 압·여·목·성(압구정·여의도·목동·성수)을 보면 토허제로 집값을 잡을 수 없음은 이미 입증됐다.
그럼에도 토허제에 집착을 하는 이유는 이미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 투기지역 등 규제지역으로 지정된 강남 3구와 용산구를 규제할 카드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2023년 초 금리 인상으로 집값이 떨어졌을 때 규제지역과 토허구역을 풀었더라면 집값이 오를 때 다시 지정이라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불안한 마음에 규제를 풀지 못했던 결과 '똘똘한 한 채' 현상이 강해지면서 강남 선호도만 더 높아졌다.
9월 30일까지 6개월 한시적으로 지정을 한다고는 했지만 이 말은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강남 집값이 크게 떨어지지 않는 한 토허구역을 풀기는 어렵다. 지난 2월 이후 한 달간 악몽을 경험한 서울시가 과연 무슨 배짱으로 6개월 후 풀 수 있겠는가? 아마 아주 무서운 트라우마로 남아 괴물의 목에 감히 누가 방울을 달 수 있겠는가. 실수요자들만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하는 별것도 아닌 토허제 괴물이 된 것이다.
사실 강남 집값은 토지거래허가제 때문에 오른 것은 아니다.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가 최근 강남 집값 급등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맞지만 근본원인은 따로 있다. 다양한 사회현상들이 모여 서울 강남 선호사상이라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진짜 괴물인 강남 선호 사상을 정책 1~2개로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오만이다.
한양을 제외하고는 원시시대에 가까웠던 조선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강남 만능주의는 궁극적으로 대한민국의 멸망을 의미한다. 단기적으로는 다주택자 규제를 폐지하고 지방 미분양 규제를 파격적으로 풀어 서울로 향하는 돈이 지방으로 흘러갈 수 있게 해줘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 동력을 다시 살리는 동시에 지방에 양질의 일자리를 늘려 굳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지 않아도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모든 정책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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