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이건 아편전쟁과 같습니다.” 내가 최근에 만난 중국 사람들은 트럼프의 대중 관세 압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중국이 치욕스럽게 생각하는 아편전쟁. 18세기 산업혁명을 일으킨 영국이지만 19세기에 인구 대국 청나라의 면직물에 밀려 무역수지 적자의 대가로 대량의 은을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영국은 이를 역전시키고자 값싼 인도산 아편을 중국에 대량 밀수출하였고 이를 저지한 청나라를 무력 침공하였다. 전쟁 준비가 안 된 패전국 청나라는 1842년 난징조약을 체결하여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게 되고 150여 년이 지난 1997년에야 영국은 홍콩을 중국에 반환한다.
홍콩 반환 당시 장쩌민(江澤民) 주석은 “빈약하고 낙후된 중국”이 “열강의 야만적인 침략”의 결과로 “매를 맞고 굴욕과 고난”을 겪게 되었고 “불평등 조약인 난징조약”을 체결했다고 하면서 각고의 노력과 성취 끝에 중국의 국제적 지위가 높아져 홍콩을 되찾게 되었다고 연설하였다. 중국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벌이는 통상전쟁은 영국이 벌인 아편전쟁과 같고 중국에 대해 굴욕적인 항복을 요구하는데 절대 받아들일 수 없고 어떻게든 견뎌 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국가 간 통상협상은 3단계 게임(three level game)으로 전개된다. 첫째 게임 마디(nod)는 국내 정치적 지지(domestic political support)다. 통상협상 과정과 결과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낮으면 협상 동력이 떨어진다. 정치적 성과를 토대로 지지표를 얻는 정당들은 협상에서 얻는 표와 잃는 표를 계산한다. 수출입업계의 손익, 일자리, 물가 상승과 소비자 반응, 무역수지 등이 표 계산에 주로 포함된다, 얻는 표보다 잃는 표가 크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게 된다. 정치인들에게 집권이 최우선 목표이므로 첫 번째 게임 마디가 가장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둘째 마디는 상대방에 대한 통상교섭 수단(negotiation tools)의 확보다. 누가 상대방을 압박하고 설득할 수 있는 수단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통상협상이 장기 소모전으로 갈 경우 벙커에 재어둔 식량과 총알 등의 물량이 중요하다. 셋째 마디는 다자간 통상협상에 출연하는 전략적 동맹국(strategic alliances)들이다. 나를 응원하는 동맹국의 수가 많을수록 상대방에 대한 교섭 압박은 커질 수 있다.
미국은 어떤가. 도저히 당선되지 않을 것 같았던 그 트럼프를 다시 대통령으로 뽑아준 미국인들. 그들은 트럼프가 공약에서 내걸기로 한 통상전쟁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단기적 부작용으로 미국 주식과 국채 시장의 변동 폭이 커지고 피해 보는 기업들이 반발하고 있다. 휴대폰 가격은 오르고 있지만 트럼프가 내건 통상전쟁의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대미 투자가 이루어지고 일자리가 만들어지기까지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미국은 내년 11월에 상원 의석 100석 중 35석, 하원 435석 전부, 주지사 50석 중 36석을 놓고 중간선거를 치러야 한다.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미 공화당의 상·하원 우위가 깨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치명타가 될 수 있다. 한편 2023년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주석은 대미 항전이 국내 지지로 이어지기 때문에 중국 경제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상대적으로 덜 힘들게 2028년 4연임에 나설 수 있다(미국 0.5: 중국 1).
둘째, 동원 가능한 수단은 어떤가. 두 나라의 동원 가능한 수단을 모두 카운트할 수는 없지만 미국이 중국보다 유리한 상황이다. 미국과 중국은 서로 끝까지 간다고 공언하면서 상대방에 대한 압박 수위를 올리고 있다. 먼저 뛰쳐나오는 측이 지는 치킨게임이니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하려 들 것이다. 최근 양측은 관세전쟁을 넘어서고 있다. 미국은 엔비디아 칩의 대중 수출허가제 도입, 중국 선박에 대한 입항 수수료 부과를 결정하였고 미국에 상장된 300개 내외의 중국 기업의 퇴출과 중국인 유학생 비자 발급 금지 등도 논의하고 있다. 중국도 반격하고 있다. 중국은 희토류 수출 중단, 보잉사 항공기 인수 중단, 미국산 대두 수입 중단 등 트럼프 1기 때 사용했던 카드를 다시 꺼내 쓰고 있다. 미국은 며칠 전 지재권 침해 문제 등 8대 비관세 부정행위 문제까지 거론하고 있다. 중국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역에 한정되고 무역만을 보아도 중국의 대미 수출액이 미국의 대중 수출액보다 크고 큰 폭의 대미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서 양국 간 무역 중단에서 잃는 것이 더 많은 쪽은 중국이다. 더 나아가 미국은 환율 등 무역 외 카드, 대만 문제 등도 사용할 수 있다(미국 1: 중국 0.2).
셋째, 전략적 동맹국의 문제이다. 미국이 중국보다 동맹국 확보에서 유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EU 등이 중국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지만 러시아 문제, NATO 문제 등을 고려하면 EU가 미국을 떠나 중국과 협력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이 동남아 외교를 하는 등 우방국 확보에 나서고 있지만 필리핀, 베트남 등은 중국과 영토분쟁 등을 겪고 있는 나라들이고 ASEAN은 중국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결성된 것이기도 해서 중국 두려움(China phobia)이 있는 동남아의 대중 동맹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계 각지에서 일부 친중 행보를 보이는 국가들이 있지만 미국과의 여러 관계를 생각하면 본격적인 반미 노선을 취하기 어렵다. 세계 각국의 비판이 트럼프가 진행하고 있는 통상전쟁의 수행 방식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전략 자체의 수정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 같다(미국 1.0: 중국 0.2).
통상협상에서 유리한 패를 쥐고 있는 미국. 트럼프는 상호관세와 품목별 관세를 무기로 상대국들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관세 조치를 오래 끌면 국내 정치는 물론 대외적 임팩트가 약해지기 때문에 단기간에 성과를 얻어낸 후 관세 조치를 끝내려고 할 것이다. 미국은 성과를 쉽게 낼 수 있는 우선 협상 대상들로 안보 쿼드(Quad) 국가인 일본, 호주, 인도를 포함하고 비교적 동맹의 고리가 강하고 무역도 많은 한국, 영국 등을 선택했다. 이들을 시작으로 협상 성과를 내면서 최종 타깃인 중국을 압박하여 협상을 멋지게 마무리하려고 할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 몇 가지 이유로 절대 서두를 필요가 없다. 첫째, 먼저 맞는 매가 더 아플 수가 있다. 트럼프는 초기 협상에서 협상 성과를 올려 과시하려고 들 것이기 때문에 “먼저 협상하면 유리하다”는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 둘째, 대통령의 탄핵과 조기 대선 국면은 우리에게 유리한 협상 포지션을 주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대선 국면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로 협상을 압박하려 들 것이라는 예상도 있지만 우리 협상단은 국내 정치적 상황을 이유로 협상을 늦춰야 한다. 셋째, 미국이 칼자루를 쥔 상황에서 어떠한 결과든 좋은 협상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대규모 투자와 장기 회임기간이 필요한 알래스카 개발 문제 등이 좋은 사례이다. 트럼프가 4월 9일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하였기 때문에 7월 초까지는 시간이 있다. 새 대통령이 6월 3일 선출되고 나서 한 달 정도 기간이 있으므로 그 이후에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관세협상은 1라운드에 불과하다. 2라운드에서 트럼프는 우리나라의 비관세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 미국 소고기의 광우병 문제 때문에 온 나라가 엄청난 홍역을 앓았고 30개월 미만인 미국 소고기 수입으로 결론을 맺었다. 다시 이 문제가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어디 소고기 문제뿐이겠는가. 우리가 먼저 드러내놓고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미국이 쓸 수 있는 수단은 더 있을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이후에도 미국이 우리를 압박할 것이고 그렇다고 우리가 새삼 친중 노선을 취하기도 어렵다.
최근 트럼프 이슈가 모든 문제를 덮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이슈가 가시면 무엇이 남을까. 무엇보다도 주력품목조차 중국에 밀리고 있는 제조업 경쟁력의 회복이 중요하다. 더 나아가 젊은이들의 일자리 부족 문제, 저하되는 생산성, 서비스의 낮은 경쟁력, 경제력이 집중된 분야들의 독과점 문제, 시장의 합리성을 찾기 어려운 에너지산업 구조 개편, 지속 가능성이 의문시되는 포퓰리즘적 정책 등은 새 정부가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단숨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통상이 산업을 주도하는 시대에 새 정부가 정말 경제개혁을 원한다면 중단한 한·일 FTA의 재개, 한·중·일 FTA, CPTPP 가입을 진심으로 추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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