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 "공공외교, 이제 문화원이 주도할 때"

이일열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 사진주프랑스 한국문화원
이일열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 [사진=주프랑스 한국문화원]


“공공외교의 중심이 보다 자연스럽게 문화원으로 옮겨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일열 주프랑스 한국문화원장은 인터뷰에서 한국문화원이 단순한 홍보 공간을 넘어, 한국의 문화외교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사관에도 공공외교를 담당하는 부서가 있지만, 문화적 감수성이 결여된 외교에는 한계가 있다”며 “이제는 그 역할이 문화원으로 더 많이 넘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적 역량과 공공성도 중요하지만, 민간 전문가들이 지닌 기획력과 감각은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학자로서 오랜 시간 문화관광 분야를 연구해온 그는, 프랑스 사회의 문화적 특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프랑스의 다양한 교육기관을 찾아가 한국 문화를 직접 소개하고, 현지 정서에 맞춘 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문화원이 자연스럽게 시민들과 연결되는 접점을 넓히고 있다.

“프랑스는 질문이 일상이고, 토론이 문화인 나라입니다. 단편적인 정보 전달보다 맥락을 함께 풀어내는 방식이 설득력을 가집니다.”


그가 문화외교의 새로운 모델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난 수십 년간 몸소 경험한 프랑스 내 한국 문화의 위상 변화 때문이다.
 

2024년 4월 프랑스 남서부 옥시타니 지방 툴루즈에서 열린 제2회 툴루즈 한국영화제에서 영화 상영 후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주프랑스한국문화원 제공]
2024년 4월 프랑스 남서부 옥시타니 지방 툴루즈에서 열린 제2회 툴루즈 한국영화제에서 영화 상영 후 컨퍼런스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주프랑스한국문화원 제공]


“프랑스에 처음 온 건 1988년 올림픽 무렵이었습니다.” 유학생으로 파리를 찾았던 그는 이후 약 10년간 현지에 머물며 한국과 프랑스를 잇는 문화적 흐름을 관찰해 왔다. 3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문화원장으로 돌아와 달라진 위상을 실감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K-pop이나 드라마를 넘어서 전반적인 한국 문화 전체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 프랑스 사회 내에서 한국 문화 매니아층도 견고하게 자리 잡았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파리 국립 동양언어대학(INALCO)을 꼽는다. 200년 넘는 역사를 지닌 이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하는 학생 수는 600명을 넘기며, 전임 교수도 10명에 달한다. 30년 전만 해도 소수어였던 한국어가 이제는 주요 전공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문화원 또한 2022년 ‘파리 코리아센터’로 확장되며 활동 범위를 넓혔다. 현재 관광공사, 콘텐츠진흥원 등과 함께 복합공간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엘리제궁에서 불과 500미터 떨어진 샹젤리제 거리 인근에 위치해 있다.

“한국으로 치면 삼청동이나 안국동쯤 되는 곳입니다. 주변에 유명 갤러리와 공연장이 밀집해 있어 자연스럽게 관람객들이 문화원을 찾게 되죠.”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이 2022년 불교문화 특집의 일환으로 마련한 특별전 ‘연등회 빛과 색의 향연’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주프랑스한국문화원 제공
주프랑스한국문화원이 2022년 불교문화 특집의 일환으로 마련한 특별전 ‘연등회: 빛과 색의 향연’에서 관람객들이 전시를 관람하고 있다. [사진=주프랑스한국문화원 제공]


문화원은 프랑스 사회의 문화적 성향을 반영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판소리처럼 언어 장벽이 있는 전통 예술에도 프랑스 관객들은 높은 집중력으로 임하며, 원어 그대로 경험하려는 시도를 보인다.

이러한 문화적 깊이를 담아내는 대표 사례로는 40년 넘게 발행된 문화원 잡지 ‘Culture Coréenne’이 있다. 홍보물을 넘어 학술 자료로 활용될 만큼 심층적 콘텐츠로 발전한 이 잡지는 부산 특집호, 파리올림픽 연계호 등으로 꾸준한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문화원은 프랑스 및 유럽 내 젊은 한국 음악인을 위한 ‘Jeunes Talents’ 콘서트 시리즈를 운영하며, 클래식부터 전통음악까지 다양한 한국 음악의 스펙트럼을 소개하고 있다. 참가자들에게는 한국 작곡가의 곡을 한 곡 이상 포함할 경우 가산점을 주는 제도도 운영 중이다.

“한국 음악에는 K-POP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양한 장르가 존재하죠. 연주자를 통해 한국 음악의 폭넓은 정체성을 프랑스에 알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음식 프로그램 역시 주목받는 콘텐츠다. 프랑스인은 식문화를 통해 정서적 유대를 형성하는 데 익숙하며, 사찰음식이나 나물 중심의 건강한 한식은 프랑스인의 식습관과도 잘 맞아 꾸준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일열 원장은 교육 현장을 공공외교의 핵심 무대로 보고 있다. 프랑스의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직접 찾아가 한류의 기원부터 발전 과정까지 맥락을 전하는 강연을 이어오고 있으며, 단순한 유행이 아닌 문화적 흐름 속에서 한국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그는 “이 친구들이 훗날 프랑스 사회에서 다양한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한국 문화를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은 한국문화원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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