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돈행 넥스트바이오메디컬 대표 [사진=넥스트바이오메디컬]
의료기기 산업은 임상에서 출발해야 한다. 소화기내과 의사로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 현장에서 끊임없이 마주하는 '미충족 수요'를 계기로 의료기기 개발에 발을 들이게 됐다. 기술이 아니라 필요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였고, 그 아이디어가 회사를 창업하게 만들었다.
의료기기가 글로벌 시장으로 가는 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요즘 전 세계 의료기기 기업들의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유럽 의료기기규제(CE-MDR) 인증이다. 특히 MDR에서는 임상시험평가보고서(CER)를 필수로 요구한다. 기존에 CE 인증을 받은 제품이라 하더라도 추가적인 임상 근거가 필수적으로 필요해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요구한다.
국내 제도도 만만치 않다. 새로운 의료기기는 신의료기술 인증을 받아야만 하며, 이 과정에서 한국보건의료연구원(NECA)은 반드시 게재된 논문을 요구하고 있다. 현장에서 효과를 체감한 제품이라 하더라도 논문으로 입증되지 않으면 인정되지 않는다. 개발자 입장에서는 임상논문 작성 자체가 부담이 되고, 이로 인해 국내 기술의 상용화가 지연되고 있다.
임상 근거는 단순한 규제 통과용이 아니다. 글로벌 기업과 기술이전 협상이나 판권 계약에서도 실사용 데이터와 논문화된 임상 결과는 필수 조건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실제 환자에게 사용된 근거가 없으면 협상 테이블에조차 오르기 어렵다. 따라서 기술개발 지원뿐 아니라 임상 근거를 확보할 수 있는 다양한 임상시험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의료기기 산업은 의약품과 다르다. 기술개발뿐 아니라 전달 방식, 실제 사용 방법, 보험 등재까지 아우르는 복합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기술개발비를 비롯해 식품의약품안전처 인허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치료재료 등재까지의 전 과정을 고려한 통합적 지원 체계를 확대하면 의료기기산업의 저변을 넓히는 효과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은 "제품이 세계 최초나 획기적인 것보다는 임상에서 실제 결과를 통해 제품 가치를 입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투자자들은 거창한 수식어보다는 실질적인 임상적 근거와 결과를 중요시 하므로 전문가들 의견을 많이 들어야 한다. 국외 의사들과의 적극적인 교류도 필수적이다.
창업과 의료기기 개발 도전은 결코 쉽지 않았지만, 그 과정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점은 '신생 기업이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혁신적인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 제품의 가격 경쟁에서는 절대 이길 수 없기 때문에, 새로운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고 임상적으로 우수한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
혁신기술이 세계 시장에서 통하는 브랜드가 되기까지는 끝없는 시행착오와 뒷받침이 필요하다. 한국 의료기기 기술력이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과 현장의 실천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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