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세 면제에서 25% 이상의 고율 관세 부과까지. 예측이 불가능해 모든 시나리오별 대응 전략을 짜고 있다."
한국 정부가 최근 미국을 상대로 자동차·반도체에 대한 관세 면제를 공식 요청하면서 산업계가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다. 앞서 미국 정부가 최소 25%에 달하는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한 가운데 업계는 '최악은 피하자'는 전략부터 '관세 면제'라는 희망적 시나리오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긴밀한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의 정책 변동성에 실시간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시나리오별 전략을 수립 중이다. 동시에 글로벌 고객사들과도 관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고객사 수요 조정, 조기 출하, 물류 재편 등 다각적 대응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현재 국내 산업계는 사실상 '시계 제로' 상태에 놓여 있다. 최근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2+2 통상협의'를 통해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지만 확실한 방향성은 안갯속이다. 한국 정부는 7월 8일까지 '패키지 합의'를 목표로 미국과 통상 협상을 본격화했고 관세·비관세 조치, 경제안보, 투자협력, 환율정책 등 네 가지 분야를 중점 안건으로 삼았다. 협상 테이블이 마련됐다는 점은 긍정적이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관세 리스크가 기업 실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주 예정된 1분기 실적 발표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단순히 1분기 성적표가 아니라 향후 가이던스에서 관세 충격을 어떻게 반영했는지가 관건이라서다.
삼성전자는 30일로 예정된 실적 발표에서 어떤 내용을 담은 전략과 전망을 제시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SK하이닉스에 비해 범용 메모리(모바일 D램 등) 매출 비중이 높은 만큼 관세 부과나 글로벌 경기 둔화에 더 민감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SK하이닉스는 최근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관세 정책 불확실성을 인정하면서도 글로벌 메모리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다고 강조했다. SK하이닉스는 AI 서버용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가 2028년까지 연평균 50% 성장할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을 내놓으며 관세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고객사는 관세 리스크를 우려해 수요를 앞당기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미국 내부 사정 또한 복잡하다는 분석이다. 관세 정책을 둘러싼 정치적 혼란과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미국 정부의 요구 사항이 명확하지 않고 오락가락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은 섣부른 양보보다는 충분한 여지를 두고 협상에 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와 기업이 '한 팀'이 되어 움직이는 것이다. 정부는 통상 협상에서 가능한 한 관세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해 다층적인 시나리오와 협상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 역시 개별 대응을 넘어 정부와 긴밀히 공조해 민관 합동으로 실질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이번 통상 협상은 단순한 관세 문제를 넘어 한국 수출산업 전체의 명운을 좌우할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관세 면제의 희망은 남아 있지만 고율 관세의 위협도 더 가까워졌다. 마지막 기회의 문 앞에서 정부와 기업이 힘을 합쳐 한국 반도체의 위상을 다시 한번 증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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