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백순 칼럼] 미국은 '로마제국의 길'을 밟는가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이백순 법무법인 율촌 고문]

거의 20세기 전에 존재했던 로마제국 시대에 로마가 누린 영광과 권력은 2차 세계대전 후 지난 80년간 미국이 누렸던 영광과 권력에 비견된다. 역사상 많은 패권국들이 서양에서 명멸하였지만 대영제국까지 포함해서도 미국만큼 로마제국이 누렸던 압도적 지위를 누린 나라가 없었다. 로마제국이 위대했던 시기인 팍스 로마나(Pax Romana) 시대의 상황을 살펴보면 미국이 위대했던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시대와 유사성이 많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로마제국이 갔던 길을 되짚어 보면 미국이 갈 길을 내다볼 수도 있을 것이다.
 
로마제국이 한창이던 시절 로마는 경제력, 군사력, 문화력, 기술력 등 모든 면에서 다른 모든 민족을 압도하였다. 그래서 당시 모든 열방의 시민들은 로마를 흠모하였고 로마 시민이 되기를 원했다. 로마의 극성기에 로마는 포용적이고 개방적인 정책을 다른 민족들에게 펼쳐 열방의 우수한 인재들이 로마의 시민이 되고 로마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로마 화폐인 데나리우스는 전 세계의 공용화폐가 되었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로마 시민들은 로마의 군대에 복무하는 것을 영광이자 특권으로 여기기도 했다. 전투에서 기여한 실적이 사회적 신분상승에 많은 도움이 되었기에 이민족 엘리트들도 로마 군대에 복무하기를 원하였다. 3세기 무렵 제국의 극성기가 저물면서 로마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로마의 쇠퇴는 먼저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우스의 가치하락으로 나타났고 이 하락은 다른 부작용들을 불러와 로마를 내적으로 더욱 쇠약하게 만들었다. 데나리우스는 처음에 순은 100%의 동전이었다. 이 가치있는 화폐는 로마 제국 내부는 물론 이민족과의 거래에서도 잘 통용되던 국제화폐였다. 그런데 로마 황제들의 정복전쟁이 계속되고 군사비용이 증가하면서 로마는 화폐를 증발하기 시작하였고 데나리우스에 포함된 은의 함량도 계속 줄어들었다. 결국 로마제국이 혼란기로 진입하던 3세기 중반에는 은 함량이 5%까지 감소하였다. 이런 가치 없는 화폐로 군인봉급을 주기 시작하니 로마 시민들은 군역을 기피하기 시작했고 이민족 용병들도 불만 속에 떠나 군대를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급격한 인플레이션은 로마 시민들의 불만을 증폭시켜 사회 불안이 조성되었다. 부족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니 로마 시민들은 도시를 피해 시골로 거처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서 경제가 더 피폐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로마 제국은 외적의 침입이 아니라 내부모순이 쌓이면서 서서히 몰락해 나갔다.
 
약 300년에 걸친 로마제국의 흥망사를 보면 미국이 걸어왔던 길과 미국이 나갈 길이 겹쳐 보인다. 미국도 한때는 패권국으로서 개방적 교역체제를 옹호하고 미국 시장을 열어 다른 나라의 경제발전을 돕기도 했다. 미국의 문화와 기술력은 세계의 표준이 되었고 많은 세계인들은 미국으로 이민을 희망하였다. 소위 ‘아메리칸 드림’이 외국인에게도 큰 꿈이 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미국이 이제 노골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그의 측근들이 가진 세계관은 이전 미국 엘리트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과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소위 민족적 보수주의(Nat-Con)라 불리는데 미국이 전 세계로부터 ‘벗겨먹기(rip off)’를 당해서 미국의 경제가 피폐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이 쇠락한 것은 미국 내부모순 때문이 아니라 다른 나라가 미국의 일자리를 훔쳐갔기 때문이라고 본다. 또한 미국이 강달러를 유지했기 때문에 미국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었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타국에 높은 관세를 매겨야 하고 미국의 달러 가치를 낮춰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간 엄포를 놓던 보편적 관세를 지난 4월 2일 정말 전 세계에 부과하였다. 다행히 3개월 유예를 바로 발표하여 세계는 한숨을 돌리고 있다. 조만간 미국의 달러가치를 낮추기 위해서 다른 나라들의 팔을 비틀어 ‘마러라고 합의’를 강요할 것이라고 예견되고 있다. 사실 미국은 무역적자를 처음 심각하게 겪던 70년대 중반 닉슨 대통령 시절 ‘플라자 합의’를 독일과 일본에 강요한 전력이 있다. 당시 마르크화와 엔화는 단번에 40% 인상되어 양국의 수출경쟁력이 대폭 약화되었다.
 
미국의 경제를 회생시키기 위한 이런 대담한 전략의 기본구상은 현 백악관 경제 수석 자문관인 스티븐 미런이 작년 11월 발간한 소위 ‘미런 보고서’에 그 밑그림이 있다. 이 보고서는 1단계 관세부과, 2단계 환율조정, 3단계 장기물 국채 강매의 과정을 거치면서 미국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를 타국에 전가하려는 대담한 제안을 담고 있다. 1, 2단계를 거쳐도 미국의 무역적자가 개선되지 않으면 무역 흑자국들에게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단기 채권을 100년물 장기채권으로 갈아타라는 압박을 가하라고 주문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정말 국운을 건 심각한 결정을 해야 할 것이다. 미런 보고서는 경제와 안보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하며 미국의 동맹과 우방국들이 미국 정책에 얼마나 잘 따라오느냐에 따라 그 지위를 차등화하고 또 대우도 차등화하겠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 우리가 피땀 흘려 번 40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를 태환 가능성이 의심되는 미국의 장기채권으로 바꿔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심각한 선택을 우리는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때 우리도 경제와 안보를 묶어서 선택해야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설 것이다. 그간의 경제적 이득은 다 포기하고 한·미동맹을 위해서 미국의 강압적 정책을 수용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해야 할 때가 닥친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말대로 이런 대담하고 강압적인 ‘타국 책임 전가 정책’을 통해서 미국이 다시 예전 지위를 회복한 후, 미국이 다시 타국과 공생하는 포용적 정책을 펼치고 미국의 안보우산도 제공할 수 있다면 단기간의 불이익은 감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런 무리한 정책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국운이 계속 기운다는 전망이 선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미래 우리 운명을 정할 결정적 선택의 시간에 대비해야 한다.
 
사실 미런 보고서의 내용은 미국으로서는 현 상황에서 피치 못하게 취해야 할 응급처치로 보인다. 그냥 두면 미국이라는 환자의 상태는 더욱 위중해질 것이기에 강력한 처방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처방이 부작용을 유발하여 환자를 더 심각한 상태로 몰아갈 수도 있다. 왜냐하면 미런 보고서의 처방은 단기적으로 상당한 부작용을 동반할 것이다. 우선 높은 관세는 높은 인플레를 유발하고 이는 로마제국처럼 사회적 동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과 보복 관세 전쟁이 벌어지면 미국의 경제도 위축될 것이다. 이러면 미국의 달러는 약세가 되더라도 수출 촉진에는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고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로서 지위가 손상될 것이다. 미국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리면 미국의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미국이 무역은 적자를 보더라도 기축통화 지위가 있기에 각국은 미국 국채를 사거나 미국에 투자를 하여 달러가 미국으로 환류되게 만든다. 그러나 이 지위가 약화되면 미국으로 들어오는 돈줄이 막히게 되면서 미국 경제는 급격히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그래서 데나리우스의 가치하락이 로마제국의 몰락을 재촉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다. 무시무시한 진실의 순간이 다가올 수 있다. 정말 냉철한 국가경영 경륜이 필요한 때이다.
 
 

이백순 필자 주요 이력 

△서울대 독문학과 △주미얀마 대사 △국회의장 외교 특임대사 △주호주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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