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월 3일로 예정된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 인공지능(AI)이 핵심 의제로 떠오르며 뜨거운 논쟁의 장이 되고 있다. 주요 후보들은 AI를 미래 경제의 동력으로 삼아 천문학적 투자와 기술 주권 확보를 약속한다.
공약은 공약일 뿐이라지만 ‘규모 경쟁’에만 매몰됐을 뿐 현실성과 혁신성은 결여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선 레이스의 주요 후보들은 하나같이 AI 산업 육성을 위해 막대한 투자 규모를 내세운다. 50조원, 100조원, 심지어 200조원에 이르는 투자 공약은 유권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GPU 5만 개 확보’나 ‘한국형 GPT 개발’ 같은 구호는 거대한 비전을 상징하지만, 재원 조달 방안은 모호하다. 국가 예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이러한 투자 계획이 세입 증가나 민간 자본 유치 없이 실현될 가능성은 낮다. 2024년 AI 기본법 통과로 산업 지원 기반이 마련됐지만, 법만으로는 천문학적 자금을 감당하기 어렵다. 규모 경쟁은 유권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실행 가능성을 담보하지 못해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위험을 안고 있다.
AI 대선 공약의 규모가 커질수록 혁신적 깊이는 얕아지고 있다. 후보들은 AI를 국방, 의료, 제조 등 실생활에 적용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구체적인 로드맵이나 기술적 실행 방안은 부족하다. ‘한국의 팔란티어’나 ‘모두의 AI’ 같은 비전은 글로벌 경쟁에서 차별화된 위치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 결여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AI 규제 프레임워크를 통해 책임성을 강조하고, 유럽연합(EU)은 AI법으로 산업과 윤리의 균형을 추구한다.
반면 한국 후보들의 공약은 기술개발에만 초점을 맞춰 데이터 프라이버시, 딥페이크, AI 편향 같은 윤리적 문제에 대한 대안이 거의 없다. 이는 AI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중대한 맹점이다. 규모만 강조한 공약은 글로벌 AI 거버넌스 논의에서 한국의 목소리를 약화시키고, 장기적으로 경쟁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규모 경쟁 중심의 대선 공약은 현실적 실행 가능성도 간과하고 있다. AI 산업은 자금뿐 아니라 인재, 인프라, 국제 협력이 필수다. 한국은 반도체 강국으로서 AI 하드웨어 기반을 갖췄지만, 소프트웨어와 데이터 생태계는 여전히 취약하다. 후보들은 AI 인재 10만명 양성을 외치지만 구체적인 교육 시스템 개혁이나 글로벌 인재 유치 전략은 제시하지 않는다. 또 AI 개발의 핵심인 데이터 축적을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와 데이터 공유 동의가 필요하지만, 이에 대한 정책적 접근은 미흡하다.
2025년 대선은 AI를 통해 한국의 미래를 재편할 기회다. 그러나 주요 후보들의 공약은 규모 경쟁에 매몰돼 현실성과 혁신성을 잃고 있다. 천문학적 투자 약속은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고, 윤리와 실행 전략은 뒷전이다. 유권자는 공약의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야 한다. AI 강국으로의 도약은 숫자가 아닌, 균형 잡힌 비전과 체계적 실행으로 완성된다. 이번 선거가 한국 AI의 본질적 도약을 위한 전환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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