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길어지면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2030년까지 신차의 100%를 전기차로 전환하겠다는 전동화 올인 대신 '하이브리드(HEV) 병행' 투 트랙 전략으로 선회하고 있다. 하이브리드차는 기존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장점을 결합한 과도기적 상품이다.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 둔화와 배터리 화재·짧은 주행거리·충전소 부족 등 각종 기술적 문제에 봉착한 업계의 고육지책이란 분석이 나온다.
29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Global EV Outlook 2024'에 따르면 글로벌 친환경차(BEV·PHEV) 판매량은 1380만대(2023년 기준)로 전년(1020만대) 대비 35.3% 성장했다. 전체 판매량 가운데 전기차는 950만대, 하이브리드차는 430만대로 전기차 판매량이 두 배 이상이다. 그러나 성장률로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023년 전기차 판매 증가율은 전년 대비 30.1% 증가한 반면 하이브리드차는 48.3%로 성장세가 더 가파르다. 올해 통계는 아직 발표 전이지만 지난해 포르투갈(리스본), 한국(인천) 등에서 대형 전기차 사고가 잇따랐던 만큼 '하이브리드 > 전기차' 역전 현상은 더 심화됐을 거라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하이브리드차는 내연기관 엔진과 배터리를 각각 주 동력원과 부 동력원으로 활용해 연비가 뛰어나다. 업계 관계자는 "주행거리 제약, 충전소 부족, 대형 화재 등으로 전기차 전환 속도가 더뎌지는 시기에 연비, 가격 경쟁력을 갖춘 하이브리드차가 매력적인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면서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고 신차 출시도 확대돼 소비자들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캐즘이 장기화하면서 징검다리 역할을 할 하이브리드차 출시가 러시를 이룬다. 현대차그룹은 당초 제네시스 전체 전동화 전략을 수정해 G(V)70, G(V)80, G(V)90 등 전 차종에 하이브리드 모델을 도입하기로 했다. 현대차 하이브리드 모델은 기존 7종에서 20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향후 3년간 글로벌 전기차 판매 목표치도 94만대에서 84만대로 낮췄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폭스바겐 등도 2026~2030년까지 신차를 100% 전동화 모델로 출시하겠다는 계획을 2035년 이후로 연기했다. GM은 연내 북미 지역 전기차 100만 생산 계획을 철회했고, 포드도 하이브리드 라인업 강화로 전략을 수정했다. 테슬라 역시 2030년까지 전기차 2000만대 판매 시대를 열겠다는 목표를 삭제했다.
후발 주자인 중국의 도전도 거세다. 브랜드 파워와 기술력을 갖춘 유럽 완성차 업체와 적극적인 기술 제휴를 하며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과도기 상품인 주행거리연장형전기차(EREV)를 출시하고 있다. 유럽 완성차들은 중국향 모델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자본을 줄일 수 있고, 중국은 글로벌 브랜드와의 협업을 통해 세계 시장 진출에 박차를 가하는 양상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하이브리드차로 최대한 시간을 벌면서 전기차 시대에 대비하고 중국에 맞설 가격 경쟁력을 갖춘다는 전략이지만 중국 업체의 추격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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