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가 도래했지만 한국 금융산업은 각종 규제를 광범위하게 받으면서 국제 경쟁력을 잃어 가고 있다. 특정 서비스나 사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함에 따라 혁신 동력 자체가 일본, 미국 등 선진국보다 떨어지고 있어 세계적인 흐름에 맞춘 규제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이르면 올 연말 SSG닷컴 쇼핑몰과 파킹통장을 내놓을 예정이다. 양사의 제휴계좌서비스가 금융위의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면서다.
혁신금융서비스는 규제에 막힌 서비스에 대해 한시적으로 규제 특례를 부여하는 제도다. 최근에는 비금융권 선불전자지급수단과 연계한 통장이나 서비스형소프트웨어(SaaS), 생성형 AI가 혁신서비스로 선정되면서 업계는 관련 서비스를 줄줄이 내놓고 있다. 올해 신규 지정한 서비스 145건 중 내부 업무용 단말기의 SaaS 적용이 44건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해에도 클라우드 활용 SaaS 내부망 이용과 생성형 AI 내부망 이용이 각각 59건, 34건 선정됐다.
하지만 비금융 사업 부문에서 신한은행의 배달 중개 서비스와 KB국민은행의 알뜰폰 사업을 제외하고는 은행 본연의 업무를 벗어난 사업 진출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 주로 상품 비교·추천, 페이, 공동대출 서비스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금산분리(금융자본과 산업자본 분리), 포지티브 규제 등 낡은 규제가 성장을 가로막으면서 신사업에 나서는 길이 비좁아진 탓이다. 혁신금융서비스는 △서비스의 지역 △혁신성 △소비자 편의 △규제특례 적용의 불가피성 △금융질서 안전성 등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이 중 금산분리나 은행법에 가로막혀 규제특례 불가피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 은행은 생활 서비스 회사 인수를 원해도 은행법상 비금융 회사에는 15% 이내 지분 투자만 가능해 법적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다. 헬스케어 서비스, 모빌리티, 이커머스 등 진출도 규제로 손발이 묶였다. 서비스 신청에 예상치 못한 조건이 달리는 경우도 많아 아예 심사 문턱을 넘지 못한다는 업계 호소도 이어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혁신성, 소비자 편의는 주관적이어서 실무자 입장에서는 어디까지 준비해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며 "혁신서비스로 지정되더라도 2년 뒤에 규제가 완화되지 않으면 사업을 폐기해야 해 연속성도 없다"고 말했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글로벌 은행들은 내수를 위한 거점 허브만 남겨 두고 금융과 비금융 겸업을 통해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해 나가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단계적으로 규제 완화 효과를 검증해 나가면 고객에게 제공하는 융·복합 서비스와 은행 잠재성장 역량 제고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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