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선변호인 청구했는데도 결정없이 선고...대법 "방어권 침해"

  • 항소심, 국선변호인 허가 내리지도 않고 법정 구속

  • "소명자료 제출 안해도 기록상 소명됐다면 선정할 여지"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이 항소심 중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했음에도 법원이 이에 대해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은 채 심리를 진행하고 판결을 선고한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한 위법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최근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3개월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깨고 사건을 인천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배우자와 협의이혼을 하면서 미성년 자녀 2명에게 지급하기로 한 양육비(1인당 월 50만원)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가정법원으로부터 이행명령 및 감치명령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A씨는 감치명령 결정을 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1년 이내에 양육비 채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1심 재판 과정에서 A씨 측은 "중학교를 졸업한 후 배달 업무로 생계를 유지하며 보증금 40만원에 월세 40만원짜리 집에 거주하고 있다"며 생활고로 양육비를 지급하지 못했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8월 A씨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해 징역 3개월의 실형을 선고했으나, 생활고를 감안해 피고인을 구속하지는 않았다.

1심 판결에 불복한 A씨는 항소장을 제출하면서 항소심 법원에 국선변호인 선정을 청구했다. 현행 형사소송규칙 제17조의2에 따르면 피고인이 빈곤 등 사유로 국선변호인을 청구할 때에는 이를 뒷받침할 소명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다만 사건 기록에 의해 사유가 이미 소명됐다고 인정될 경우에는 예외가 인정된다. A씨는 청구 당시 별도의 소명자료를 제출하지는 않았으나, 이후 제출한 항소이유서를 통해 "현재 건강보험료가 체납된 상태고 양육비 외의 다른 채무도 제때 변제하지 못하고 있다"며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A씨의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에 대해 허가나 기각 등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 결국 변호인이 없는 상태에서 심리를 진행한 2심은 A씨의 항소를 기각함과 동시에 판결 선고 직후 법정에서 A씨를 기습적으로 구속했다.

해당 사건을 검토한 대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피고인이 서류상 소명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더라도 사건 기록 전체를 통해 방어권 행사가 어려운 정황이 확인된다면 국선변호인을 선정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법원은 "소명자료가 제출되지는 않았으나 피고인의 진술 등이 담긴 사건 기록에 의해 '가정형편 등으로 사선변호인을 선임하기 어렵다'는 사유가 소명됐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이어 "설령 빈곤 사유에 관한 소명이 다소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기록에 나타난 피고인의 교육 정도와 가족관계, 공소사실 내용, 1심에서 선고된 형의 경중 등 제반 사정을 종합하면 피고인의 권리보호를 위해 국선변호인을 선정해야 할 경우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도 있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국선변호인 선정 청구에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은 원심의 처사가 피고인의 방어권을 침해했다고 결론짓고 "A씨의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가 있으므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 법원에 환송한다"고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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